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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미안 Apr 29. 2020

아내의 생일, 꽃을 샀다.

선물을 고르는건 여전히 어렵다.

정말 갖고 싶은 것 없어?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세네 번을, 그것도 며칠에 걸쳐 은근지게 물었다. 선물을 받는 사람에게 스스로 받고 싶은 선물을 물어본다는 건 사실 낭만과는 거리가 먼 일이다. 선물 받는 사람이 부모님이나 직장 동료가 아니라 아내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실패를 줄이기 위한 효율적인 방법임에는 분명했다. 나는 낭만을 조금 덜어내더라도 이번만큼은 아내에게 마음에 드는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꼭 좋은 선물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기억에 남을만한 생일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얼마 뒤면 아내의 33번째 생일이다. 나는 이번 생일은 정말 잘 챙겨야겠다고 생각한 참이었다. 그런 고민을 하게 된 것도 생일날이 거의 근접하고 나서였으니, 어쩌면 이미 첫 단추부터 잘못 낀 것일지도 모르겠다. 최근에는 크고 작은 이유로 머리 아픈 일이 많아 생일이 다가오는 것도 제대로 신경 쓰지 못했다. 물론 모두 핑계다. 나도 이런 류의 핑계는 숙제를 안 해온 성실치 못한 학생들이나 하는 거란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에게도 할 말은 있다. 특히, 인스타그램에서 팔로우하고 있는 어느 연예인의 피드를 넘기듯이 무심하게 넘어갔던 작년의 생일에는 내가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일이 있었다.

작년 꼭 이맘때쯤이었다. 바이러스 대신 미세먼지를 걱정했던 겨울의 끝자락에 미국 출장을 다녀왔다. 2달이나 되는, 출장치고는 정말로 긴 기간이었다. 확인해보기로는 2달이란 시간은 파견이나 주재원이 아닌 출장으로서는 가장 길게 갈 수 있는 시간이라고 했다. 대부분의 직장일이 그렇듯 당사자인 나도 잘 모르는 새 급작스레 출장이 결정되었다. 그 당시 나는 1월부터 고작 두 달도 안 되는 기간 비행기를 왕복 여섯 번이나 타는 바람에 몹시 지쳐있었다. 미국으로, 파리로, 또 스페인으로, 모두 10시간이 넘는 비행을 다녀왔다. 그러니까 나는 쌓여가는 마일리지만큼 머릿속도 정신없이 복잡해져 아내의 생일이 출장의 중간에 껴 있게 된 줄은 미처 신경 쓰지도 못했던 것이다.

바쁘다면 바쁜 미국 적응 기간 동안 나는 아내의 생일을 기억하고 늦게라도 전해 줄 선물을 골랐다. 주말을 빌어 방문한 아울렛에서, 나름 한국에서도 비싼 브랜드의 니트를 큰맘 먹고 구매했다. 그런데 한국에 가져와 펼쳐보니 하필 불량품이었다. 니트의 팔 안쪽에 올이 풀려 있었는데 꼼꼼히 살펴보지 않은 탓에 알아채지 못했던 것이다. 겨우 겨우 수선을 하고 난 뒤, 아내가 그 옷을 입게 된 건 지난겨울 다녀온 대만 여행에서였다. 처음 선물한 날에서 거의 8개월이 지난 후였다. 아내는 싫은 내색도 없이 항상 그 선물이 고맙다고 내게 말한다. 물론 제대로 보지도 않고 불량품을 사 온 것이 정말 꼭 오빠 같다고 농담처럼 덧붙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결혼 후 고작 2번째 맞는 생일날, 곁에 있지도 못하면서 제대로 쓰지도 못할 선물을 사 온 남편의 마음은 무거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정말로 갖고 싶은 것이 없다는 말이지?


내 질문에 아내는 가지고 싶은 것이 없다고 대답했다. 생각해보면 한 번도 가지고 싶은 것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 본 적 없는 아내다. 선물은 그 자체보다 선물을 고르는 시간이 가치 있기 때문에 의미 있다고 했던가. 나는 그런 점에서 꽃이야 말로 좋은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점심시간을 빌어 회사 근처 양재 꽃 시장에 들렀다. 회사 생활 8년째 처음 가보는 곳이었다. 이름을 알고 있는 꽃들을 모두 지나쳐 한참을 고민하고 나서야 그날 처음 알게 된 이름의 꽃을 골랐다. 4월엔 프리지아가 한창이라 했지만 왠지 고르고 싶지 않았다. 대신 오니소갈룸이라는 주황색 꽃과 알스트로매리아라는 노란색 꽃을 골랐다. 각각 일편단심, 그리고 새로운 만남이라는 꽃말을 지니고 있는 꽃들이었다. 나는 그 의미가 지금의 내 마음은 물론, 우리의 상황과도 꼭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 날을 위해 집 근처 인기 좋은 스시 오마카세 집을 예약했다. 아내가 며칠째 스시를 먹고 싶다고 한 말을 기억했기 때문이었다. 집에는 앞으로 며칠 동안은 자그맣고 소박하게 꽃이 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내는 분명 그걸 아이처럼 좋아할 테다. 나는 그 꽃이 지고 나서도 지금의 웃음이 계속되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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