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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미안 Apr 27. 2020

예술을 즐기는 방법

아내와 전시회를 다녀오다.

  어떤 종류의 것들은 충분히 즐기기 위해 일정 수준을 요구한다. 즐기기 위해 잘 알아야 한다는 건 누군가에게 조금은 가혹한 일일 테다. 내겐 예술이 꼭 그렇다. 나는 예술은 무언가를 표현하는 방법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날이 많았다. 작가는 하고 싶은 말이 있어 글을 쓰고, 화가는 그림을 그린다. 댄서는 몸짓을 만들고, 래퍼는 소리를 뱉는다. 표현되기 전의 예술에도 형태가 있다면, 분명 모두가 똑같은, 어떤 생각의 집합체의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곤 했다.

  영화 평론가들이 감독의 숨은 의도를 알아채고, 연출 방식에 대해 밤을 새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처럼, 나 역시 좋은 관람자라면 작가의 메시지 정도는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게 바로 수준 높은 관람객의 조건이라고 믿었다. 맞다. 내가 예술을 충분히 즐기지 못하는 이유는 분명 이 때문이다.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법보다 외우고 해석하는 법을 먼저 배웠던 내 학창 시절 때문이다.

  예술은 분석하고, 공부해야만 즐길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나는 아내를 통해 배웠다. 디자인을 전공한 아내는 나와 달리, 거칠게 흩날리는 눈발 속에서도 아름다운 순간을 발견할 수 있는 마음을 지닌 사람이었다. (눈이 아니라 마음이다.) 그리고 그 순간을 조금 더 자세히 보고, 또 기억하기 위해 발걸음을 멈출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한강진 역을 거닐다 갑작스러운 눈을 만났을 때, 나는 눈을 피할 수 있는 안전한 곳을 찾아 걸음을 재촉했고, 아내는 도리어 걸음을 늦추었다. 그리 싫지만은 않았던 그 찰나의 어긋남, 잠시 여유롭고자 했던 그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는 아내의 그런 낭만적인 모습이 좋았다.

  일상이 지루해져 충전이 필요하다 생각되면 일부러 전시회를 찾는다. 쏟아지는 영감 속에서 전시의 의도를 찾아 해석하고, 분석하며, 또 이해하려 했던 것이 나의 방식이었다. 가끔 인사이트 비슷한 깨달음이 찾아올 때면, 마치 작가의 의도를 찾아내는 수능 언어영역의 문제를 풀어낸 것 마냥 신이 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그렇게 전시를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그냥 좋은 것을 좋다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잘 몰라도 괜찮다고 사뭇 다정하게 이야기해 주곤 했다. 나는 여전히 머리로 이해하는 데는 익숙하지만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영 잼병이라 그때마다 괜히 머쓱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 나는 작가의 메시지를 알아챌 수 있는 수준 높은 관람객이 되기보다는 좋은 순간 그 자체를 즐길 수 있는, 내 감정에 솔직한 관람객이려 한다. 예술을 즐기기 위해 필요한 건 남보다 조금 더 예민한, 여유로운 마음일지도 모른다. 굳이 표현하자면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미식가 보단 음식을 먹을 때 몰려오는 행복감, 그 놓치기에는 아쉬운 잠깐의 순간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이 맞겠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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