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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미안 Aug 06. 2020

커피 다시 내려 드릴께요

 주문한 드립커피가 나온 건 한참이 지나고 나서였다. 그 사이 아내가 주문한 레몬에이드가 먼저 나왔다. 편한 복장의 바리스타는 쭈뼛쭈뼛 다가와 "죄송한데 드립커피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다시 내리고 있습니다.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네요"라고 말했다.

 그러면 내 마음은, 오래 기다리지 않고 바로 커피를 마시고 싶은 내 마음도 있는데 그건 어쩔셈이냐고 물어보고 싶은 기분도 잠깐이었다. 이미 갈린 원두에 물을 부으며 내렸을 뿐인 커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니 그게 무슨 소린가 했지만 나는 그러려니 했다.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일들이 많고, 커피를 만드는 일도 그 중 하나였다.
 
 바리스타가 저 멀리서 두 손으로 커피를 들고 온다. 아니, 애초에 바리스타가 맞긴 한건가. 알바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알바생이라면 커피가 마음에 안드는 일 따위 있을리 없다라고 생각했다. 평소라면 단숨에 몇 모금 들이켰을 커피를, 나는 조금씩 홀짝이며 최대한 여러번 나누어 마셨다. 마치 소믈리에라도 되는 것처럼 향을 음미했다. 왠지 그래야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만들어낸 사람의 마음에 쏙 든 커피를 나는 마시고 있다. 나는 그 마음을 정확히 이해하고 싶었다.

 커피는 평범했다. 나는 코스타리카산 원두를 주문했는데, 메뉴에 써진 것처럼 플로럴, 다채로운 과일향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건 누구의 탓도 아니다. 바리스타는 적어도 두 번의 최선을 다했고, 나는 최고의 커피를 마시고 싶어 이 곳에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평범한 커피를 마셔도 괜찮은, 그래도 상관없는 주말이었다. 오늘만큼은 내 기분을 내가 결정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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