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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아 Feb 23. 2024

크라쿠프, 그리고 아우슈비츠

평범하게 흘러가는 내 여행

크라쿠프에서 보내는 두 번째 날.


보통 오전 7~8시면 눈이 떠지던 평소와는 달리 10시까지 잔 걸 보면 그간의 일정이 확실히 피곤하긴 했나 보다. 아침에 일어나니 북유럽 특유의 쌀쌀한 찬 공기가 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느지막이 준비한 뒤, 오늘도 동행 약속이 있는 D를 만나러 갔다. 웬만한 곳은 어제 모두 둘러보았기에 비슷한 경로를 간단히 돌며 구경하기로 했는데, 분명 많은 여행객들이 크라쿠프가 너무 좋았다며 장기간 묵었는데도 아쉽지 않았다고 하는 내용을 적지 않게 봤는데 대체 어떤 걸 즐겼던 걸까..? 물론 따지고 보면 나한테 부다페스트도 그런 느낌이긴 했지만, 거기는 휴식의 목적이 있기도 한 데다 도시 규모가 이곳보다 커서 그런지 개인적으론 훨씬 나았던 듯.     




조금 더 돌아다니다 결국 컨텐츠가 모두 떨어져 버린 우리는 더 이상 할 게 없어 관광지중 한 곳인 유대인 지구로 향했다. 그래도 이 동네에선 이곳이 젊은 친구들도 많이 오고 나름 힙한 느낌의 장소라더라.


D와 함께하는 여행은 좋았지만, 추위로 인해 피로감이 쌓이는 데다 생각보다 도시가 지루하길래 여기서 하루 일정을 중단하고 슬슬 숙소로 복귀하여 일이나 할까 싶었다. 도심 근처에 전망대가 있길래 택시 타고 방문해 보았는데 그곳에서 바라보는 도시의 전경도 생각보다 너무 멀게 느껴져서 그다지 예쁘다고 생각되지도 않더라. 정확히는 예쁘지 않았다기 보단, 내가 원하는 느낌이 아니었다는 게 더 맞겠다. 게다가 이 와중에도 추위는 계속 누적되고 있었는데, 초반 여행을 시작할 때 더운 건 더운 대로 힘들다고 느꼈지만 추운 건 정말 몸에 힘이 쭉 빠지고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예쁘지 않은 건 아니지만 풍경이 너무 멀어 :(


결국 마지막으로 간단히 저녁식사만 한 뒤 해산하기로 했는데, 그래도 식당 내부가 따듯한 데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음식이랑 맥주도 꽤 맛있었기에 조금은 피로가 풀리는 듯했다. 결국 이쯤에서 헤어질까 싶다가 아무래도 마지막 동행날인만큼 펍에서 가볍게 한잔만 더 하기로 했는데 그 자리가 이 날 가졌던 시간 중 가장 즐거웠던 것 같다. 밖은 춥고 황량하지만 내부는 따듯함과 잔잔한 어수선함이 감도는 펍의 분위기가 상반되는 게 꽤나 포근한 느낌을 가져다주었다.




아 그리고, 내 앞으로의 여정을 '또' 바꾸기로 했다. 원래는 바르샤바를 거쳐 폴란드 여행이 끝난 후 발트 3국을 넘어 북유럽까지 치고 올라갈 예정이었는데, 그 계획을 중단하고 튀르키예에서 헝가리로 급 이동하느라 지나쳤던 발칸반도 지역의 남쪽 국가에 가는 걸로 결정했다. 이 결정은 오로지 날씨의 영향이었는데, 나는 원활한 이동을 위해 짐을 최대한 간소화하여 가져왔던 만큼 이렇다 할 방한용품이 없는 상태였다. 갖고 있는 옷들로 앞으로의 여행도 어떻게 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아직 초입 부분인 폴란드의 크라쿠프는 솔직히 북유럽이라 하기도 애매한데 더 올라가면 추위에 답도 없을 것 같더라.


이미 바르샤바는 예약을 마쳤기 때문에 그곳으로 이동한 뒤,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라는 도시가 좋다는 얘기를 하도 많이 들어 그곳으로 이동할 생각이었다. 그 후엔 원래 가고자 했던 발칸반도를 방문할까 싶긴 한데 오늘도 이렇게 대대적인 계획수정이 있던 만큼 아직까지도 내 여행이 어떻게 흐를지 종잡을 수가 없기에 그 이후의 일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이틀간 만난 여행자 D와도 즐거웠고, 비록 날씨가 도와주진 않았지만 담백한 추억도 많이 쌓아간다. 그리고 바깥은 춥고 매서 안락함이 느껴지는 이곳의 숙소는 잊지 못할 것 같다. 이번 크라쿠프는 심적으로도 그렇고 참 여러모로 아늑함이 느껴졌던 곳이네.




다음날, 바르샤바로 이동하기 전 유대인 집단 수용소였던 아우슈비츠 방문을 예약해 두었다. 지금까지는 예약한 뒤 관광하는 컨텐츠를 그다지 즐긴 건 아니지만, 이곳은 역사적으로도 큰 사건이 있던 곳인 만큼 폴란드에 방문했을 때 꼭 한번 가보고 싶더라.


사실 출발하기까지도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일단 역에 도착한 뒤 내 짐을 코인로커에 맡겨야 했다. 하지만 코인로커 사용은 오로지 폴란드 화폐인 즈워티, 그것도 동전으로만 입금이 가능했기에 여러모로 난처했던 데다 버스 시간표도 내가 미리 찾아보고 온 계획이랑 달라서 일정이 꼬이기 시작했다. 창구에 있는 직원에게 정보를 물어봐도 한결같이 폴란드어로만 대답하는 그는 도저히 내 말을 들어줄 생각이 없어 보였고.


이쯤에서 내가 늘 했던 생각, 굳이 내가 여행을 스트레스받아가며 다닐 필요는 없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다 포기하고 다시 숙소 가서 조금 쉰 다음 아직 크라쿠프에 남아있는 D와 만나서 간단히 카페나 갈까 싶었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서 마지막으로 다른 창구 직원에게 동전 교환과 내가 원하던 시간대 버스를 말하니 흔쾌히 도와주더라. 역시 사람은 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야. 그래도 다행히 계획한 대로 아우슈비츠 가이드 투어에 잘 도착할 수 있었다!     




가이드 투어는 한국어가 없어서 프랑스어로 들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절반정도만 이해했는데, 사실 이건 언어의 문제보단 외부적인 요인이 더 컸다. 처음엔 나름 집중해서 들으며 이해에 큰 무리가 없었지만, 오늘의 날씨가 매우 추웠던 데다 계속해서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고만 있다 보니 막바지에는 집중력이 거의 떨어져서 그냥 그 장소들을 눈에만 담은 채 설명은 거의 하나도 듣지 않았다. 출발 전 정신이 없었다 보니 코인로커에 짐 맡길 때 우산을 꺼내지 않았던 게 나의 실수였다. 심지어 투어는 얼마나 긴지 4시간 동안 비에 젖은 채 추위와 싸우며 오들오들 떨었다..


당시 희생자들의 안경을 모아둔 모습


아유슈비츠에 대한 간단한 소감도 적어보자면, 역시나 끔찍함 그 자체였다. 그 당시의 옷가지나 사용한 도구들도 많이 남아있지만 그중 가장 끔찍했던 건 잘려있는 머리카락들... 희생자들의 머리카락만 합쳐도 2톤이 된다고 하는데, 보는 순간 소름이 돋더라. 유쾌한 볼거리는 아니었지만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은 장소인 만큼 설명과 장면들을 최대한 눈에 담았다. 그래도 와보길 잘한 것 같아.


투어를 마친 후엔 다시 크라쿠프에 돌아온 뒤 맡겨둔 짐을 찾고 바르샤바로 향했다. 이제 5시간 정도의 이동은 아무렇지도 않다! 물론 심심하고 재미없긴 하지만 그냥 그러려니 한다. 이럴 때면 종종 유학생활 때 친하게 지내던 중국 친구들이 해줬던 말이 기억난다. 중국에서는 기차로도 최소 20시간 이동하는 곳도 많기에 프랑스의 여정은 늘 가벼울 편이라고 말하던 내 그리운 친구들. 미안, 조그만 한국에 사는 나는 사실 이것도 마냥 쉬운 일은 아니긴 해..




늘 그랬던 것처럼 멍 때리고, 잡생각 하고, 간간히 잠을 자다 보니 도착한 바르샤바. 도착하니 이미 어둑어둑한 밤이라 얼른 숙소로 이동해서 간단한 식료품을 구매한 뒤 짐 풀고 쉬었다.


이번 폴란드의 숙소는 다 성공적인 편인데, 이곳은 유럽 치고는 꽤나 고층인 13층에 위치한 데다 벽 두 개가 통유리나 다름없어서 야경이 너무 예뻤다. 이곳도 2차 세계대전 때 많이 부서지고 대부분 다시 지은 거나 다름없다는 얘기를 듣긴 했는데, 확실히 다른 유럽 도시들과는 다르게 빈티지한 느낌보다는 세련된 현대도시의 느낌이었다.


세탁기와 건조대도 잘 구비되어 있고, 샤워기 수압도 센 데다, 발코니에서 병맥주 하나 두고 조금은 쌀쌀한 바람맞으며 바라보는 도시의 풍경도 아름다웠던 만큼 뭐 하나 부족한 게 없었다. 비슷한 값으로 이스탄불에서 벌레 이슈에 스트레스받았던 숙소를 생각하면 행복하기 그지없는 곳이었다. 바르샤바는 정말 경유지로만 생각하고 다음날 바로 크로아티아로 내려가버릴까 고민했는데 이 숙소 하나만 보고 2박 3일 동안 머물기로 결정했다.


조금은 투박하지만 아름다운 야경


이곳에서는 혼자 시간 좀 보내며 그간의 여행을 정리할 예정이라 따로 동행 구할 생각도 없고, 크로아티아 넘어가기 전에 푹 쉬다 가야지. 며칠간 이곳저곳 바쁘게 돌아다닌 나 자신에게, 수고 많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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