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만난 오징어 튀김
폴란드의 바르샤바에서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로 이동하는 날.
탑승하는 비행기가 꽤나 이른 시간이었던 터라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서 준비를 마친 뒤 출발했다. 하필 라이언에어였는데, 시간대가 괴랄하거나 탑승 공항이 마이너 하면 보통 얘네더라. 물론 저렴한 게 장점이긴 하지만 라이언에어는 절대로 다시 타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결국 또 이러고 있네.
내 여정은 바르샤바에서 비엔나를 경유한 뒤 두브로브니크로 이동하는 루트였고, 중간에 5시간 정도의 짧지 않은 대기시간이 있었다. 그래도 이동하는 날은 업무에 전혀 손대지 못하는 날도 많았던지라 내게 있어서 일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긴다는 게 꼭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렇게 밀린 업무처리하며 정처 없이 기다리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흘러 금세 다가온 탑승시간. 이번 여행 중 처음으로 창가 좌석을 배정받았는데, 스무 살부터 시작한 유학생활에 딱히 어떤 좌석이든 로망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오랜만에 가지는 소소한 행운이라 느꼈다. 물론 그 낭만을 즐겨보긴커녕 이륙과 동시에 창문 가려두고 냅다 잠이나 자버렸지만.
도착하자마자 느껴지는 따듯한 공기... 정말 이거 하나 바라고 북유럽의 다양한 국가를 포기한 채 남부로 내려온 만큼, 방금 막 도착했지만 이게 여행이지 싶었다.
공항에서 도심으로 어떻게 이동할까 고민하다가, 여정이 나름 피곤하기도 했고 버스 기다리기도 귀찮아서 택시로 이동했다. 두브로브니크는 유명한 휴양도시라 물가가 타 동유럽권 도시에 비해 꽤나 비싸긴 했지만, 결과적으론 시간대비 꽤나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해.
별 탈 없이 숙소에 도착해 짐을 푼 뒤 도시를 둘러보니 바로 근처에 해변이 있는 데다 곧 일몰 시간대라 마침 잘됐다 싶어서 부랴부랴 해변가로 이동했는데, 서둘러 움직인 게 너무 잘 한 선택이었다고 생각될 만큼 아름다운 장면을 마주했다. 따듯한 색감의 노을과 잔잔하고 맑은 바다, 이 장면을 보자마자 나중에 두브로브니크는 무조건 다시 오겠구나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아직 이 도시에 도착한 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말이야. 그만큼 낭만적인 풍경이었다.
저녁은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마침 근처 식당에 그것을 판매하는 걸 보고 고민도 없이 들어가 바로 주문했다. 바로 지금까지 그렇게 찾아다녔던 오징어 튀김!! 사실 오징어 튀김이야 한국에도 없는 건 아니지만 지중해 바다 근처에서 먹는 맛이 또 있다. 레몬즙을 뿌리고 마요네즈 기반의 소스를 찍어 맥주와 가볍게 즐기는 이 감성이 너무 그리웠어! 도착하자마자 아주 좋은 일만 펼쳐지고 있구나.
다음날 아침, 추웠던 이전 여행지와는 달리 따듯한 날씨를 만끽하며 창문을 활짝 열어둔 채 테이블을 끌고 와 업무 처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래도 어제 공항에서 남는 시간 동안 일을 많이 해두었던 터라 가볍게 맥주 한잔 즐기며 여유로운 시간을 가졌다.
낮에는 해수욕을 다녀왔는데, 아무래도 수영할 거라 허기가 많이 질듯해서 들어가기 전에 샌드위치도 하나 먹고 들어갔다. 아주 더운 날씨는 아니었기에 몸 담그기 전엔 차갑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괜찮아서 혼자 둥둥 떠다니며 잘 놀았다.
이번 여행에서 직접 바다에 몸을 담가보는 건 두브로브니크가 처음이었는데, 지금까지 다녀본 여러 유럽의 휴양도시들 중 가장 수영하기가 좋다고 생각될 만큼 파도도 매우 잔잔했다. 다만 아무래도 혼자 왔다 보니 크게 할 건 없어서 해변에 앉아 친구와 연락도 나누고 물수제비나 몇 번 하다가 그냥 숙소로 돌아왔다. 조금 심심하긴 했지만 혼자서도 너무 좋은 시간이었어!
숙소에서 조금 휴식을 취한 뒤, 새로운 동행인 E와 F를 만나 근처의 일몰포인트로 택시를 타고 함께 방문하기로 했다. 약속 장소가 숙소에서 약 40분 정도의 거리길래 어차피 할 것도 없고 도시 구경도 할 겸 천천히 걸어갔는데, 이 평화로운 도시에서 가장 좋아하는 플레이리스트를 켜두고 천천히 걸어가며 마주하는 장면의 매 순간이 모두 소중했다.
약속장소에서 동행을 만났으나 우리가 시간 계산을 약간 잘못했던 터라 일몰을 보러 간 스르지산이라는 스팟에서는 타이밍이 조금 어긋나 노을을 보진 못했다. 물론 굳이 그 풍경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예쁜 곳은 맞았지만, 나는 어디서든 노을 보는 걸 참 좋아하는 만큼 일몰까지 아직 시간이 좀 남았길래 동행들과 함께 전 날 내가 혼자서 노을을 보았던 해변으로 함께 돌아왔다. 근데 그들이 말하길, 내가 노을 보기 좋다고 말했던 이 해변 이름이 선셋 비치였더라? 심지어 꽤나 유명한 스폿이라던데 어쩐지 이 해변은 노을이 되게 예쁘게 진다 싶었어.
그 아름다운 풍경을 멍하니 마주하며 좋은 시간을 보낸 후 그들과 함께 간단한 식사와 펍을 방문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마침 당일이 크로아티아의 축구 경기가 있는 날이라 펍에서 함께 보며 응원도 하고, 많은 여행자들과 그랬듯 각자의 삶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도 풀어나갔다. 요즘 나의 여행은 혼자서도 나름 잘 보내고, 누군가랑 같이 있을 때도 또 그대로 즐겁게 잘 보내고 있다.
나는 이렇게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사람 만나는 것도 즐겁고, 여럿이 있을 때 더 즐거워하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행들과 오늘의 자리를 가지는 도중 스쳤던 생각.
'내 이런 모습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전 연인은 나랑 참 맞지 않는 사람이었구나.'
서로가 맞지 않던 부분들을 암묵적으로 알고 있었음에도, 그대로 준비하여 결국 우리가 결혼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물론 세상 모든 이들이 다 완벽히 맞는 사람이랑 결혼하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어땠을까. 양보하며 잘 살게 되었을까, 아니면 지금보다 더 아프게 끝이 났을까?
어쨌든 중요한 건, 이제는 연애가 끝나고 난 후 이런 생각도 할 줄 알게 되었구나 싶은 것이었다. 마음이 참 아프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나랑 그 아이는 맞지 않았던 사람이었나 봐..
보고 싶었다. 이렇게 좋은 곳들을 돌아다니면서 그녀가 함께였다면 어땠을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른 생각이 더 많이 든다. 다음번에 나와 이곳을 올 사람은 누굴까. 이젠 과거보단 미래가 더 맴돈다..
문득 프랑스에 살며 파리의 디즈니랜드를 처음 방문했던 날의 기억이 났다. 날 보러 한국에서 놀러 왔던 가족과 함께 갔던 그곳에서 가졌던 생각.
'이렇게 좋은 곳은,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그때 꼭 또 와야지.'
나는 그 약속을 지켰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관계를 이어나가던 당시의 연인과 디즈니 랜드를 방문했었고, 비록 현재는 끊어진 인연이라 한들 혼자 다짐했던 소망이 이뤄졌을 때의 기쁨은 아직도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러니까 언젠가 나타날 새로운 인연을 위해, 혹은 나 스스로를 위해 디즈니랜드에서 그랬던 것처럼 두브로브니크에도 약속을 하나 남기고 가야겠다.
이렇게 예쁜 곳을 알았으니, 다음번에는 꼭 사랑하는 사람과 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