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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아 Feb 27. 2024

사랑했던 건 나야, 파리야?

익숙하고 아픈 장소

내 여행이 모두 마무리된 후, 정든 프랑스의 파리로 떠나는 날.


아테네에서 파리까지는 항공편으로 약 3시간 반정도 걸리는데, 내 이십 대의 대부분을 보낸 익숙한 장소임에도 막상 가려니 왠지 모를 긴장감이 느껴지더라. 한국으로 귀국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 연인과 늘 함께하긴 했지만 따지고 보면 그녀는 내 프랑스의 삶에 있어서 극히 일부분을 관여했을 뿐인데 참 아이러니하다 싶었다.


그렇게 나름의 복잡한 심정으로 가까워지는 파리는 비가 오고 있었다. 이번에 여행했던 대부분의 지역은 날씨가 매우 좋았는데 파리는 우중충하고 쌀쌀한 날씨였다. 이곳은 정말 여전하구나.


내가 도착한 공항은 오를리. 문득 생각이 났는데 우리가 유럽에서 마지막으로 서로의 모습을 마주했던 장소가 바로 오를리 공항이었다. 인연을 맺은 뒤 서로가 스페인과 프랑스를 오가며 짧지만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가, 내가 한국으로 완전히 귀국하기 전 마지막으로 스페인에 돌아가는 그녀를 바라본 곳이 이곳이었다.


이제는 관광객이 너무나 많아져버린 오를리


잊고 있던 기억이었다. 그 후 몇 달 뒤 다시 한국에서 마주했지만 당시의 헤어짐이 마냥 짧지는 않은 기간이었던 만큼 결국 눈물로 그녀를 보냈었다. 더 이상 모습이 보이지 않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그 모습을 눈에 담다가 결국 아쉽게 돌아섰지만, 집으로 향하는 전철에서도 눈물이 차올랐었다.


그래, 이런 것들이 문제야. 잊고 있었다가 갑작스럽게 마주하는 순간들. 아직 코로나로 인한 제재가 있었던 그때보단 사람도 훨씬 많아졌고, 올림픽 준비를 위해서인지 새로운 서비스도 많이 생겼더라. 조금 씁쓸하네.


분명 특정 지하철 역에선 인터넷도 끊기는 곳이었는데 이제는 와이파이도 잡히는 걸 보고 프랑스도 변화라는 걸 하는구나 놀라워하며 시내로 이동했다.




파리는 도착 전 미리 잡아둔 숙소가 있었으나 호스트의 실수로 인해 내 예약이 일방적으로 취소당했던 터라, 어쩔 수 없이 열흘정도 간 아는 친구의 집에서 신세를 지기로 했다.


오랜만에 보니 반갑기도 하고 갑작스러운 부탁도 들어줘서 고마웠던 내 친구. 간단히 대화를 나누다가 함께 마트에서 장 봐온 뒤 술을 곁들이며 이전과 같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나의 터전이자 삶이 있던 곳인 만큼 친구들에 대한 얘기가 정말 많이 나올 예정이다. 그중 한 친구는, 내가 여행을 시작하기 전 마침 그가 한국에 잠시 들어왔을 때 만났던 적이 있다.


아직 직장도 관두기 전이었던 데다 이별한 직후 정말 많이 힘들어했던 그 시기. 그때의 내 모습은 어땠는지, 그로부터 불과 몇 달이 흘렀을 뿐이지만 지금의 내 모습은 어떤지 그의 시선으로 본 나의 모습이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그때는 그랬다더라. 내가 입으로는 계속 괜찮다고 말하는데 하나도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고. 차라리 내가 힘든 걸 인정하고 이렇게 여행을 다닌 순간이 스스로에게 너무 좋게 작용하게 된 것 같아 다행이라고 얘기해 주었다.


그래, 이겨내고 싶지 않은 감정에 이겨낸다고 무슨 소용이 있었겠니. 그 친구가 해준 말은 내가 여행을 시작할 때의 마음가짐이 틀린 건 아니었구나 싶었어서 참 고마운 말이었다.




오후에는 몽마르트를 다녀왔다. 여행기에 몇 번이나 언급했지만 이곳은 내가 파리에서 거주했던 곳이며 가장 사랑하는 장소이다.


혼자서, 때로는 누군가와 함께 수없이 다녀간 곳. 어떤 날은 혼자만의 시간을 정리하기 위해, 어떤 날은 왠지 모르게 슬프거나 혹은 기뻐서, 또 어떤 날은 단순하게 식사 후 산책이 하고 싶어서 수십 수백 번을 오르내렸던 곳.


가끔씩 답답하고 힘들게 느껴졌던 파리의 삶 속에서 이렇게 탁 트인 전망이라도 바라보며 힘을 내지 않았다면 내 삶은 어땠을까. 모르긴 몰라도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아니 적어도, 다시 돌아오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을 것 같다.      


이곳은 정말 그대로더라. 물론 1년이란 시간이 그다지 길다고 볼 순 없지만, 그럼에도 그대로인 이곳은 정말 반가웠다. 그때보다 관광객도 훨씬 많아지긴 했지만 내게 있어서 가장 마음이 편한 곳이란 건 변하지 않았다.


이 곳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는지


늘 그랬던 것처럼 난간에 앉아 멍하니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두고, 해가 져가는 것도 모르는 채 30분이고 1시간이고 멍하니 앉아있던 시간. 몽마르트는 내게 있어서 그것만으로도 참 좋은 곳이다. 프랑스의 어느 한국인보다도 나만큼 몽마르트를 좋아하는 사람은 정말 없을 거야.


이 날 이후로도 나는 몇 번이나 몽마르트를 더 방문했다.




파리는 어디를 걸어도 대부분의 장소에서 에펠탑이 보인다. 그만큼 상징적인 조형물이자, 누군가에게는 지극히 낭만적이고 사랑스러운 곳.


아직 연인과 잘 지내던 시절, 농담으로 그런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녀는 본인이 에펠탑에 속은 거라고, 그 앞 잔디밭에 단 둘이 앉아 조명이 켜지는 그 순간에 고백을 하는데 어떻게 안 받아 줄 수 있겠냐는 말에 나는 그때부터 넌 함정에 빠진 거라고 웃으며 넘어가곤 했었다.


그러게, 정말로 에펠탑의 마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한국에서의 현실에 부딪혔을 때의 내 모습은 네게 있어서 그다지 좋은 모습은 아니었잖아. 프랑스에 있을 때보다 더 예민했고, 짜증도 많고, 현재보다는 미래만 추구하며 너를 옥죄었었지.


정말 좋아하던 장소중 하나


언젠가 그녀가 나와의 데이트 전 20만 원짜리 원피스를 구매했던 날, 그냥 예쁘다고 칭찬해 줄걸. 이제부터 진지하게 결혼을 준비해야 하는데 왜 매번 그렇게 낭비가 심하냐고 뭐라 하지 말고 기쁘게 같이 넘어가줄걸.


네가 사랑했던 건 나였을까, 파리였을까? 이제는 대답을 들을 수 없겠지만, 적어도 서울에서의 나는 그녀가 원하던 모습이 아니었을 거라는 걸 지금은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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