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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아 Mar 05. 2024

내가 왜 결혼이 하고 싶었냐면..

여행을 시작했던 진짜 이유

파리에서의 보낼 시간도 거의 마무리된 어느 날,


일주일에 서너 번씩 늘 함께 술 마시고 놀 정도로 가깝게 지낸 몽마르트의 이웃이자, 파리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던 나의 음악가 친구들을 만나 술 한잔 하는 시간을 가졌다.


마치 전 날 그랬던 것과 같이 어색함이라곤 단 하나도 없이 늘 만나던 동네의 익숙한 술집에서 함께 술잔을 기울이는데, 오랜만에 돌아왔어도 한결같이 포근한 공간에서 나를 반겨주는 좋은 사람들과 예전처럼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운인지.



내가 이 여행을 시작하기 전, 그들이 잠시 한국에 방문했던 시기에 함께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다. 아직 이별에 대한 슬픔에 푹 젖어있던 당시의 나는 그들을 마주하며 나누었던 대화가 이 여행을 시작하기로 다짐한 원동력이 되기도 했던 만큼 그 얘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이십 대의 대부분을 프랑스에서 보낸 나.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여느 친구들과 다름없이 고등교육까지 한국에서 마쳤다곤 하지만, 그 후의 삶은 쭉 프랑스에서 이어진 만큼 알게 모르게 내 가치관은 내가 살아가는 곳에 맞게 변한 부분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귀국했을 당시만 해도 나는 내가 여느 한국인과 그다지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나고 자란 곳이 한국이었던 데다 가끔씩 귀국할 때마다 만나는 내 오랜 친구들과도 지속적인 연락을 하고 사는 만큼 그들과 나의 마인드 차이는 크게 다를 바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아니 적어도, 내가 한국의 삶에 대해 모르진 않는다고 생각했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이십 대 후반이 되어 귀국한 후의 삶은 그다지 재미있진 않았지만 그러려니 하고 살았다. 나에게 한국은 그런 곳이었다. 재미없더라도 남들과 똑같이 일하며 살아야 하고, 튀지 않고 평범하게 사는 게 제일인 곳. 이것이 내가 미디어를 통해, 혹은 국내의 친구들을 통해 보고 들은 '한국의 삶'이었다.




이별을 겪은 후에도, 너무 힘들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꾸역꾸역 하루하루를 소화해 냈다. 그게 내가 아는 '한국의 삶'이었으니깐. 사실 난 아직도 연애 하나에 일희일비하면서 슬퍼하는 사람이지만 내 또래의 다른 친구들은 더 이상 그러지 않는 것 같길래, 나 역시 그냥 아무런 티 내지 않고 매일을 이겨내며 보냈다.


그렇게 헤어진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잠시 귀국을 하여 만난 내 프랑스의 음악가 친구들. 그들은 1년이 넘는 시간만에 만나는 만큼 너무나 반가웠고, 나의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들어주었다.


다만 그들에게 감사했던 건, 단순히 내 얘기를 들어줬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내가 프랑스에서 살던 1년 전의 모습을 고스란히 가져와주었다는 것이다. 나는 참 꿈이 많고 자유로운 사람이었다던 그때의 내 모습을.



하지만 불과 1년 만에 나의 그런 모습은 많이 없어진 채 내가 처한 현실에 적응하느라 급급한 사람이 되었다. 한국에서의 삶은 이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다시 말하지만 그게 내가 유일하게 알고 있는 이곳의 삶에 익숙해지기 위한 방법이었으니까.




사실 나는 한국에서의 정체성도, 프랑스에서의 정체성도 가지지 못한 이도저도 아닌 사람이었을 수도 있겠다.


나는 늘 강한 사람이고 싶었고, 완벽한 사람이고 싶었다. 내게 프랑스가 자유였다면 그중에서도 더욱 자유로워 보여야 하는 인간, 한국이 안정이라면 그중에서도 더욱 안정감 있게 살아야 하는 인간. 다만 내가 위치한 현실은 이상과 늘 차이가 났던 만큼, 결국 남들 보기에 훨씬 자유롭고 안정되게 보이기 위해 늘 가면을 쓰고 살았다. 비록 실제로는 그런 삶이 아니었더라도 말이다.


물론 내가 가진 고민과 스트레스는 남들한테 보여줄 수 없는 영역이었고, 그건 그녀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나와 늘 붙어있던 그녀가 당연히 그걸 느끼지 못했을 리가 없었겠지? 결국 언제 한 번은 그녀가 나한테 펑펑 울면서 얘기를 하더라. 왜 자신에게도 내 본모습을 한 번도 보여주지 않느냐고.


그날은 연인이 즐거워야 할 크리스마스였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녀의 눈물 앞에서도 나의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모를 만큼 내가 쓴 가면을 벗지 않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단순히 이별로서 이 여행을 떠나온 건 아니다. 당연하게도 고작 쌀국수 한 그릇의 설움이 내가 여행을 시작하는 이유의 전부였을 리는 더더욱 없지. 그건 그저 지금까지 쌓이고 쌓인 마음이 터지는 기폭제였을 뿐, 내 여행에 대한 생각은 이미 음악가 친구들과의 대화로 인해서 싹트고 있었다.


대체 나는 그곳에서 어떤 삶을 추구했기에 그렇게 아무런 눈치 보지 않고 천방지축으로 살았을까. 한국에선 어떤 삶을 목표로 했기에 나 자신을 깎아가면서 그리도 안정감을 추구했을까. 그 위에 있는 목표는 무엇이었길래 늘 스스로에게 만족하지 못해 자신을 늘 가진 것보다 더 그럴듯해 보이게 포장하며 살던 걸까.


이젠 나 스스로도 별로 이상함을 못 느끼는 가면을 쓰고 사는 삶에 처음으로 의문이 생겨 떠난 여행. 그리고 나는 그 의미를 조금이나마 찾았다. 나는 강한 사람이고, 완벽한 사람이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자유롭고 싶던 것도, 안정감을 갖고 싶던 것도 아니었어.


나의 목표는 행복하고 싶던 거였나 보다.




다만 내가 바라는 행복은 잘못됐었다. 행복하지 않아도 늘 행복해 보이기 위한 가면을 쓰고 살았던 나는, 프랑스에서 적응을 잘하고 자유롭게 사는 모습이 행복해 보일줄 알았고, 현재를 깎아서라도 돈을 무조건 많이 벌어서 가정을 이루는 게 행복해 보일줄 알았다. 그렇게 찾은 해답은, 결국 내게 있어서 결혼을 하고 싶던 이유의 해답이 되기도 했다.


나는 '그녀와 결혼'을 하고 싶던 게 아니라, 그냥 '결혼'이 하고 싶었던 거였다.


여행이 마무리되는 이 시점이 되어서야 알았다. 그녀와 결혼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나. 하지만 그저 결혼을 하면 행복할 것 같았기에 준비했던 결혼. 비록 나는 자각하지 못했지만 그녀는 내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지 않고 내 행복을 추구하던 모습을 어렴풋이나마 알아챘기에 이별을 말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스스로가 조금 더 똑 부러지고 생활력이 강한 사람이라 생각했던 만큼 결혼을 준비하며 내가 그녀에게 했던 모든 요구.


'낭비하지 말라, 좋은 취직자리를 알아봐라, 자기 관리를 해라..'


이 모든 것들은 내가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필요했던 것이 아니라, 내 결혼이 남들에게 '행복해 보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란 걸 창피하게도 이제야 깨달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연애와 이 여행이 다 끝나고 난 뒤에야 '결혼'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닌, '그녀와 결혼' 하고 싶었던 이유를 잔뜩 찾아버렸지만 이제는 모든 게 늦었을 뿐이다.


프러포즈는 다시 한번 파리에 함께 방문해서 해달라고 말했던 너였지만, 결국 혼자 이곳에 방문해 버린 내 모습을 돌아보며 그저 술 한잔을 털어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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