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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아 Mar 07. 2024

파리, 이곳은 나의 파리였어

잘 있어, 나의 파리

파리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


내가 이번 여행에서 다닌 곳 중 날씨가 제일 별로였던 파리조차 오늘만큼은 구름 한 점 없이 아주 맑았다. 물론 그전에 이미 한바탕 소나기가 쏟아지긴 했었지만, 아무튼 마지막 날엔 맑은 하늘을 바라볼 수 있었다.


센강 주위를 쭉 따라 걸었다. 이젠 확실히 겨울에 더 가까워지는 건지 바람이 좀 차긴 했지만, 그래도 햇살만큼은 정말 따듯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프랑스인들도 삼삼오오 모여 일광욕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더라. 평범하면서도 참 특별한 풍경이었다.


한동안은 다시 못 볼 풍경이겠지. 하지만 나는 또 올 테니까 그때도 기쁘게 마주하자.




잠깐 시간이 떠서 들른 숙소의 로비에 레몬나무가 있는 걸 발견했다. 까맣게 잊고 지냈는데, 파리에서 살던 시절 나 역시 집에서 조그만 레몬나무를 키웠었다. 비록 우리 집은 햇빛이 잘 드는 편이 아니었던 데다 관리도 잘해주지 못했던 터라 열매가 맺혀도 금세 떨어지곤 했지만, 그럼에도 끝없이 꽃을 피워가며 생각보다 많은 위안을 주었던 나의 레몬나무.


당시 키우던 레몬나무에 맺힌 꽃망울! 사진이 남아있었네 :)


언젠가의 누군가가 내게 건넸던 말이 생각난다. 어떻게 혼자 유학생활 하는 집에서 레몬나무를 키울 생각을 했냐고. 어쩌다 그런 조그만 나무에서 행복을 찾을 생각을 했냐면서, 나의 감성을 좋게 바라봐주곤 했다. 현재는 기억에서조차 흐려진 인연이지만, 그 말은 아직까지도 내게 좋은 선물로 남아있어.  


많은 것이 멀게 느껴지는 날이다. 좀 더 풀어서 말해보자면, 모든 감정이 많이 가라앉았다고 말하고 싶은 것 같다. 파리에 처음 도착했을 때 느꼈던 아릿함도 열흘이란 시간이 지난 지금엔 꽤나 멀게 느껴지네. 앞으로는 더욱 이렇게 되겠지.




내가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역시나 몽마르트. 정말이지 수백 번은 넘게 오갔을 그 산책길을 혼자 천천히 걸었다. 이제 몽마르트는 관광객들이 정말 많지만, 조금만 뒤로 와도 사람이 없는 길이 있다는 걸 여행객들은 모를 것이다. 화려한 앞부분의 전경을 보느라 뒤편엔 걷기 좋은 한적한 산책길이 있다는 걸 그들은 절대 모를 것이다.  


심지어 늘 앉던 그 자리에서 마주한 나의 마지막 식사 :)


마지막으로 들른 몽마르트의 내 단골식당. 이곳도 어느샌가 한국사람들에게 많이 유명해졌지만, 예전부터 내가 참 좋아했던 식당이다. 더 이상 나를 알아보고 반겨주는 직원은 없지만, 그 맛은 한결같았다. 정말이지 이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특별하면서도 내게 많은 행복을 주었던 식당.


식사를 마친 후엔 밤의 몽마르트를 한번 더 마주했다. 날씨가 추워진 만큼 바람이 많이 불긴 하지만 그래도 이 시간에 이곳을 올라와서 다시 한번 볼 수 있었다는 것 만으로 너무 기뻤다.


분명히 언젠가 이곳에 또 올 거야. 그때까지 잘 있으렴. 나한테 있어서 파리의 가장 마음 편한 곳으로 늘 있어줘.




내 파리에서의 여정은 이렇게 마무리. 파리에 머무는 동안 쓰인 글에는, '여행'이 끝나기 전 정리했던 마음보다 조금 더 이별이란 것에 의미를 담아 한 문장 한 문장을 적어나갔다.


여정이 마무리되는 만큼, 이제는 슬슬 모든 걸 다 내려놓아야 할 때인걸 받아들이며 내가 느끼는 감정보다 조금 더 후회를 담아 적고, 조금 더 미련을 담았다. 이제 이 여행기가 끝나면 더 이상 내가 이 후회를 담아둘 공간은 없다는 것을 나는 안다.


갑작스레 마주한 지하철역의 거울, 우리는 여기서 같이 사진을 찍었었지.


이 길거리를 걷는데 비가 와서 손잡고 얼른 뛰었었어.


잊고 있던 식당. 네가 좋아하려나 기대하며 데려갔던 곳인데 생각보다 더 좋았어.


아직 파리에 도착하기 전 내가 우려했던 것. 우리의 추억이 많이 묻어있는 만큼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그녀의 흔적을 마주했을 때 오는 감정을 감당 못한다면 어쩌나 걱정했었다. 그리고 역시나 그런 상황을 수없이 마주했었지.


날이 추워지면, 이 가게 덕분에 몽마르트는 늘 뱅쇼 향이 가득했었어


하지만 그런 상황들은 생각보다 무겁지 않은 마음으로 지나갔다. 파리에서 보낸 열흘의 시간은 걱정보다 행복으로 지나갔다. 비록 짧았더라도 그녀와 함께했던 시간은 파리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이곳은 우리의 기억보다 나의 기억으로 충만한 곳이었어.


내가 왔다고 시간을 내서 반겨주는 많은 친구들. 여행에서 만나 친구가 된 새로운 인연, 내가 좋아하는 길거리와 식당. 늘 마주하던 풍경 하나하나까지 나의 추억이 깃들어있는 곳.


파리, 이곳은 나의 파리였어.




이젠 나의 파리를 떠나 그녀의 도시로 갈 차례가 왔다.


누군가는 내게 뭐 하러 그 도시를 다시 가냐고 물어봤지만, 별로 대단한 이유는 없다. 그렇게 해야만 이 관계를 끝낼 수 있을 거 같다느니, 좋은 마무리를 하고 싶다느니 하는 거창한 이유가 아니라 그냥 이젠 내가 그러고 싶어서 가는 거야.


처음 이 도시를 방문하는 게 어떨까 생각했을 땐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참 아팠었지만 이제는 오히려 그곳을 다녀오는 게 마음이 편할 것 같아.


내일이면 마지막 여정이 시작되겠네. 스페인으로 그녀를 만나러 가자.


잘 있어, 나의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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