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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아 Mar 28. 2024

인스턴트 여자친구 (1)

한 달도 채 가지 못하고

전작인 '이별이 가져다준 세계여행'이 끝난 뒤, 바로 시작하는 글이 또 연애 얘기라니.


하물며 새로운 사랑을 알리는 내용도 아닌, 제대로 시작도 하지 못한 채 벌써 끝나버린 얘기라니.




그녀는 참 예쁜 아이였다.


말 그대로 예쁜 아이였다. 성격도 발랄하고 활기찼으며, 연애의 시작이란 게 늘 그렇듯 연락하는 모든 시간들이 좋았던 터라 서로의 매일을 공유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녀와 나는 롱디였다.


마냥 가깝지만은 않은 거리가 조금 염려되긴 했지만, 연애를 시작하기에는 그다지 문제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나는 프랑스와 한국의 롱디도 경험해 본 만큼, 국내에서의 거리차이는 쉽게 극복할 수 있을 일이라 믿었다.


그녀는 성격이 불같았다.


화낼 때는 화내고, 짜증 날 때는 짜증 냈다. 다만 가족에게는 나름 상냥한 것 같았다. 내게도 그런 모습을 보인적은 없다. 만남이 짧아서였을 수도 있겠지만, 가까운 사람을 막 대하는 아이는 아닌 듯하여 괜찮았다.


그녀는 내게 모든 것을 얘기하진 않았다.


사귀자는 말을 통해 연애를 시작한들, 그 관계가 곧바로 깊어지는 건 아니므로 이해한다. 그녀는 혼자 짊어질 것이 많았고, 그것을 나와 나누고 싶지 않아 했다. 미안함이었을까, 부담이었을까, 아니면 다른 이유였을까. 하여튼 연인이 힘들 때 무조건적인 도움이 되고 싶던 나와 성향이 달랐다.




이것이 내가 한 달도 채 사귀지 못하는 동안 알게 된 그녀의 모습이다. 이 짧은 만남을 연애라고 부를 수 있을까? 하면서도 그녀와의 이야기를 굳이 굳이 적어가는 이유가 있다.


그녀가 나와 정말 비슷한 사람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우리는 깊은 감정 교류도 하지 못했고, 서로에 대해 다 알지도 못했으며, 어떤 걸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앞으로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제대로 얘기하지 못한 것투성이다.


하지만 그녀와 사귄 그 짧은 순간동안, 내 모습이 무수히도 많이 겹쳐 보였다. 특히 연인을 대하는 모습이 과거의 나와 거의 흡사했다.


불같은 성격과 말투는 그렇다 치고, 굳이 연인사이더라도 모든 걸 공유하진 않아도 된다는 생각. 나에 대한 질투라고는 하나도 없어 보이는 자유로움. 사랑한다는 말에도 슬쩍 넘어가는 인색한 애정표현. 연애가 인생에 있어 1순위가 아닌 것이 느껴지는 태도.


저런 마음가짐이 어땠느냐면, 매우 놀라웠다. 누군가는 상처받을법한 연애의 방식이지만 내게 있어선 아주 이상적인 가치관이었다. 나와 비슷한 사람이 또 있었다니!


이렇게 이번의 연애에 기대하는 바가 정말 컸지만, 그럼에도 한 달을 채 가지 못한 채 마무리지었다.




이십 대에 스쳐 지나갔던 몇 번의 연애. 그들은 연애에 있어서 다양한 요구조건을 걸곤 했지만 당시의 나로서는 정말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았기에 이렇게 반문하곤 했다.


"질투를 해달라고? 꼭 질투심이 있어야만 그게 사랑의 표현이야? 나는 너를 믿기 때문에 질투가 없는 거야."


"사랑한다는 말에 '나도'라고 말하는 게 그렇게 서운한 거야? 똑같이 '사랑해'라고만 말해야 하는 거지?"


"연인이라고 모든 걸 공유할 필요는 없잖아. 이건 내가 풀어나가야 할 일이야."


"어차피 내가 이 시간에 무엇을 하고 있는지 뻔히 알고 있는 거 아니야? 그럼에도 또 얘기를 해야 해?"


나의 이런 대답에, 결국 몇몇은 내게 이런 말을 하며 날 떠나가더라.


"너는 너랑 똑같은 사람을 만나봐야 해. 나는 너한테 사랑받는 느낌을 받지 못했어."




정말 이해가지 않는 말이었다. 나는 한 번도 사랑에 최선을 다하지 않은 적이 없는데, 상대방은 사랑받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니.


생기지도 않는 질투심을 억지로 자아낸다 한들 그게 사랑인 것도 아니고, 굳이 '사랑해'라고 하지 않아도 널 사랑한다. 모든 걸 공유하지 않는 이유는 나의 힘듦을 네게 토로함으로써 걱정시키고 싶지 않기 때문이고, 적어도 네게 있어선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거짓말을 한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아니었다.


나와 너무나 닮았던 그녀. 그렇기에 굳이 어떠한 노력을 하지 않아도 너무나 잘 맞을 것 같아 이상적이라고 느꼈던 그녀는, 알고 보니 나와 닮지 않았었다.


그녀는 나보다도.. 더욱 독립적인 아이였다.


그 짧은 만남에서, 그녀를 통해 얼마나 많은 과거의 내 모습이 보였던지.


이제는 알 것 같다. 과거 지나간 연인들이 나의 어떤 부분에서 상처를 받았고, 왜 저런 말을 했는지.


고작 한 달도 채 만나지 못하고 헤어진 그녀에게 사랑의 감정을 바라는 건 욕심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의 감정이 어떠했든 간에, 참 매력 있는 아이였음에도 내게 애정이 있었던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기에 이번의 이야기를 풀어본다. 짧디 짧은 연애를 마친 나의 인스턴트 그녀가, 그 찰나의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내 과거의 모습을 돌아보게 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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