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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아 Mar 16. 2024

말라가에 와서 다행이야

바다에 모두 두고 갈게

말라가를 떠나는 내 여행의 마지막 날,


계속 잠을 설치던 밤이 지나,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그녀에게 온 연락을 확인했다.


답변은 역시나 생각한 대로. 하지만 그렇다고 나의 일정이 변하진 않았다. 우엘린 해변의 일출을 보러 갈 채비를 마친 뒤 길을 나섰다.


우엘린에 가는 길은 생각보다 춥진 않았다. 어제는 바람이 많이 불었던 탓인지 조금 쌀쌀하게 느껴졌는데, 오늘은 온도가 더 낮음에도 불구하고 바람은 더 잔잔했다.


그렇게 10분 정도를 걸어 도착한 우엘린. 그때와 같은 그 길을 걸어, 그때와 같은 그 장소에 도착했다.  




해변가에 걸터앉아 떠오르는 해를 쳐다봤다. 1년이, 10년이 지나도 해는 똑같은 모습으로 떠오르겠지. 처음 우엘린에서 바라보았던 일출도, 이렇게 모든 걸 끝내고 바라보는 일출도, 그리고 평생 동안 이곳의 일출은 같은 모습일 것이다.


물론 그때와 다른 점도 있었다. 해변에는 청소차가 돌아다녀 꽤나 산만했고, 사람이 한두 명씩은 보였다. 일출이 거의 오전 8시에 가까웠기 때문인가 보다. 전에는 몇 시였더라? 확인해 보면 알겠지만 딱히 기억이 나진 않네.


착각일까, 아니면 그때와 다르던 것들이 있기 때문이었을까. 오늘의 일출은 처음 봤던 그때보다 예쁘진 않았다. 그래.. 그때는 애정과 그녀를 향한 관심이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고, 오늘은 이별과 마지막을 받아들이기 위한 방문이기에 그렇겠지.  


어제 가판대에서 구매했던 꽃다발을 가져왔다. 어차피 가져가지도 못하고 건네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구매했던 나의 마음. 그 꽃다발을 바다에 띄워 보냈다. 정말 잔잔하고 조용한 파도였지만 꽃다발은 천천히 멀어지더라. 파도에 떠밀려 다시 돌아올 듯하면서도, 그렇게 아주 조금씩 멀어져 가더라..



그게 다였다. 굳이 해가 떠오르는 걸 다 보지도 않은 채, 이 정도면 됐다 싶어서 숙소로 다시 들어가기로 했다. 그 길에서 그녀에게 우엘린의 사진과 짧은 메시지를 보냈다.


그녀는 사진을 보내주어서 고맙다고 말해주었다. 나 역시 고맙다고 답장을 했다. 이게 나와 그녀가 나눈 마지막 연락이었다.

  



숙소는 체크아웃이 오후 12시로 꽤나 넉넉한 편이기에 한숨 자고 다시 일어난 뒤 나갈 채비를 마쳤다.


출국까지는 꽤나 여유가 있는 만큼 간단한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센트로에 위치한 햄버거 매장으로 향했다.


이전에도 분명 와본 곳이지만 아무래도 혼자다 보니 주문하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메뉴를 받아보기까지 음료가 셀프인 것도 몰랐고, 감자튀김 찍어먹을 소스도 없길래 그냥 그런 구성인가 보다 싶었는데 나중에 쟁반을 반납할 때 보니 매장 내부에 셀프로 가져가는 소스통도 따로 있었더라. 외부 테라스에 앉아있던 터라 전혀 몰랐다. 말라가에서만큼은 참 어쩔 수 없네.  



무슨 바람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식사를 하며 그녀의 어머니께 연락을 드렸다. 이제와서는 조금 뜬금없는 걸까 싶기도 했으나 그냥 그러고 싶었다. 안부를 전하고 행복을 기도드리는 연락에, 그분 역시 내게 안녕을 바라주셨다.


저와 따님의 관계를 좋게 봐주셔서 감사했고 죄송했어요.




나름의 계획은 있었다. 식사를 마친 후 약 오후 1시 정도였고, 내 출국은 오후 8시로 시간이 꽤 남는 터라 마지막으로 도시의 전반적인 모습을 슥 훑으며 다녔다.


말라게타 해변을 한번 더 다녀왔다. 다른 지역은 겨울이 다가오는데도 한결같이 따듯한 이곳. 많은 이들에게 계속 행복한 장소겠지.


다시 돌아온 센트로. 방문한 기념품샵에서 예쁜 마그넷을 몇 개 구매했다.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여행에 짐을 늘리지 않기 위해 이전의 여행지에서는 오로지 엽서만 구매했었지만, 이번에는 뭐 어때. 어차피 여기가 마지막 여행지인걸.



마지막으로 눈에 담은 우엘린. 이곳에서도 많은 시간을 보내진 않았다. 그늘가에 앉아 땀을 좀 식히며 느긋하게 풍경을 구경하다가 금세 일어났다.


그럼 잘 지내, 이 바다에 모두 두고 갈게.




생각했던 것보다 시간이 더 남길래 갈까 말까 고민했던 말라가의 쇼핑센터인 라리오스까지 방문했다.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쇼핑몰이지만 그래도 나름의 추억이 있는 곳이니까.. 그래, 여기 앞에 로터리랑 신호등이 꽤나 번거로웠어. 저녁으로 먹었던 우동은 나름 나쁘지 않았었지.   


잠브라노역에서 기차를 타는 건 처음이다. 말라가에서 이동했던 모든 곳, 네르하와 그라나다는 버스를 타고 이동했었고, 공항은 늘 택시를 탔다. 아무래도 초행길이다 보니 신경을 좀 썼는데 막상 가보니 뭐 걱정할 것도 없이 쉬운 길이라 별문제 없이 도착했다.  


공항에 조금 이르게 도착한 만큼 수속을 빠르게 마친 후 간단한 식사에 맥주 한 잔 하며 쌓여있는 업무를 처리했다. 좋은 소식이라면 긴 여행으로 인해 거의 신경 쓰지 못했음에도 내 사업체에 대한 대한 수익이 점점 더 증가하고 있다. 갑작스레 일이 확 밀려드는 터라 당황스럽기까지 할 정도인데, 결론적으로는 아주 기쁜 일이지 뭐.




앞으로 몇 시간 정도 후면 나는 다시 파리에 돌아간다. 그곳에서 짧은 하루를 보낸 후, 다음날 아침 바로 한국으로 귀국하는 일정이다.


말라가에 왜 다시 가느냐는 말에 사실 별로 대단한 이유는 없다고 앞서 적은 적이 있지만, 사실 뚜렷한 이유 하나가 존재한다.


앞으로 다시 올 일이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새로운 관계를 시작한다면, 이전 연인과 추억으로 얼룩진 이 도시를 어떻게 새로운 연인과 방문할 수 있겠어? 난 그 정도로 미친놈은 아니다. 하하.


그러니깐, 내 인생에서 더 이상 방문할 생각이 없는 말라가를 아직 곁에 아무도 없는 이 기회에 마지막으로 혼자 와보고 싶었을 뿐이다. 그래도 지금까지 가졌던 연애 중 가장 따듯함이 머물렀던 곳이니깐.


이 기억조차 언젠가 또 새로움으로 잊히고, 추억은 점점 풍화되어 갈 것이다.


이 도시에 더 이상 보고 싶은 것이 없다. 보고자 한다면 모든 것들을 눈에 담고 싶지만, 아니라 생각하면 한없이 아닌 이곳은 더 이상 내게 궁금하지 않은 과거가 되겠지.


그렇기 때문에, 정말 사랑했던 도시인 말라가에 다시 한번 올 수 있었어서 참 다행이야.


이 감정을 마지막으로 말라가는 더 이상 특별한 곳이 아닌 스페인의 어느 한 도시로서 모든 의미를 지워가자.


이별을 건네며, 이제는 정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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