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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아 Mar 19. 2024

이별이 가져다준 세계여행

안녕.

말라가에서의 2박 3일은 정말 방문하길 잘했다. 하루는 모든 걸 털어냈다는 후련함의 눈물을, 하루는 내가 준 상처를 되돌아보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마지막 날엔 찡해지는 마음조차 그곳에 모두 내려두고 이렇게 돌아간다.


이제는 내가 왜 이별을 겪었는지 확실히 안다. 이별뿐만인가? 이제는 나 스스로를 조금 더 안다. 이 세 달간의 여행이 정말 많은걸 내게 알려주었지.


어쨌든 말라가를 떠나면서 하고 싶은 말은, 이 여행을 마치며 나는 나를 용서하기로 했다. 그녀에겐 이기적인 말일수도 있겠지만, 내가 상처 주고 아프게 했던 말들을 이젠 잊어갈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결국 돌아서게 한 나를 미워하고 자기혐오하는 걸 그만두겠다는 뜻이다. 이미 물은 엎질러졌고, 나의 이번 연애는 끝났다. 자책에 빠져 나를 계속 묶어두지 말고 이제는 마음을 풀어줘야지. 또 새롭게 나아갈 수 있도록, 다른 누군가를 만나더라도 같은 실수를 절대 하지 않도록 늘 조심하고 신경 써야지.


다시 한번 말하지만, 역시나 이별의 감정은 그저 이겨내기만 하고 마무리지을 일이 아니었어. 이 경험으로 인해 난 이전보다 더욱더 나은 사람이 될 거야.




말라가에서 출발해 파리의 샤를드골 공항에 내린 건 밤 11시. 늦은 시간이긴 하나 아직 대중교통이 멈출 시간은 아닌데 어찌 된 이유에서인지 이미 전철운행은 중단되어 있었다. 프랑스가 늘 그렇지 뭐.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탔는데, 평소에도 얘기하는 걸 좋아하는 나는 시내에 들어가는 동안 운전사 아저씨와 의외로 좋은 대화 시간을 가졌다. 전 연인을 처음 만났던 도시를 혼자 방문하여 마무리하고 오는 길이며, 이번 여행이 시작하기까지의 과정과 오늘이 그 모든 것의 끝이라는 나의 여행기를 허심탄회하게 풀어놓았다.


"나는 내가 맞는 줄 알았어요.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그녀를 통제하려 했고, 결국 나 스스로의 여유도 잃은 채 점점 더 예민해지면서 그녀가 사랑받고 있지 않다고 느끼게 했어요. 적어도 내 마음은 그게 아니었지만, 그녀에겐 이미 사랑이 아니었던 거예요."


결혼. 행복이라 함은 무조건 내게 돈의 유무였고, 그게 나의 가장 큰 우선순위였다. 하지만 이제는 후회한다고 하는 나의 대답에 그가 건넨 한마디.


"행복은 별게 없단다. 비록 나도 하던 일이 잘 되지 않아 결국 택시 일을 하지만, 그럼에도 아내를 보면 늘 행복해. 결혼한 지 22년이 되었는데도 아직까지 그녀를 볼 때마다 처음처럼 좋고, 같이 웃고, 농담하고, 안아주는 것. 그것들은 돈이 들지 않아. 하지만 그게 서로의 행복인 거야."


뻔하다면 뻔한 이 대화였지만, 마침 여행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날 가지게 된 이 대화는 나에게 있어서 얼마나 큰 위안과 위로가 되었는지. 그저 스쳐가는 손님 중 하나였음에도 좋은 말과 마음을 잔뜩 담아준 그에게 정말 큰 감사를 가졌다.




내 여행은 이렇게 끝이 났다. 새벽에 숙소에 도착하여 잠깐 눈을 붙인 뒤 해가 뜨기도 전에 다시 공항으로 돌아왔고, 한국으로 가는 귀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는 동안 출국 전 보았던 영화인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를 다시 한번 감상했다. 여행이 시작되기 전 이 영화를 우연하게 접했다는 건 두고두고 행운이야. 내가 떠나오기 전 생각했던 것들은 모두 성공적으로 이루었다. '잘 먹고, 조용히 명상하며, 마침내 받아들인 이별.'


어딜 가도 맛있던 현지의 음식들. 처음 먹어보는 음식도 많았고, 그리웠던 음식을 다시 먹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잘 먹고 잘 쉬는 것의 기쁨은 나의 여행을 한층 더 기분 좋게 만들어 주었었지.


시간이 될 때마다 혼자서 갖던 명상의 시간. 원체 이런저런 잡생각이 많은 사람이라 처음엔 쉽지 않았지만, 가면 갈수록 스스로의 마음을 덜어내고 편안히 하는데에 너무 좋은 습관이었어. 내가 나를 한층 더 잘 알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해.


이별, 마침내 이별. 온갖 방어기제를 내세우며 한껏 강한 척하며 사는 사람이었지만, 나는 이별에 약한 사람인 걸 다시 한번 크게 인정한 뒤에야 가진 이별. 이제는 정말 괜찮을 거야. 새롭게 만나게 될 인연에게는 더욱 있는 그대로 잘 표현해 주고, 더 솔직하자. 내 행복을 위해 사랑하지 말고, 사랑하니까 행복해야지.




아무 의욕이 없던 여행 전과 달리 이제는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할 것도 많다.


여행 중 계속 신경 썼다곤 하나 어쩔 수 없이 점점 쌓여간 일도 귀국하면 모두 처리해야 하고, 나를 찾기 위한 여정이었던 만큼 지출도 꽤나 컸으니 다시금 착실히 자금을 모아야지.


오랜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 한 이후엔 늘 그녀가 있었지만 이제는 완전히 혼자네. 성인이 된 후 한국에서 처음으로 경험하는 솔로 생활인데, 나는 또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까? 새로운 인연이 찾아오더라도 좋은 모습으로 마주할 수 있도록 그때까지 나를 더욱더 열심히 갈고닦아야겠다.


모든 것에 의욕이 샘솟고, 하고 싶은 것들이 막 떠오른다. 이번 여정은 마무리 지었음에도 새롭게 다가올 하루하루에 대한 기대감이 아직도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것 마냥 느껴진다.




여행을 마치면서, 가장 큰 문제라면 문제가 생겨버렸다.


또 이렇게 여행 다니고 싶다. 이번처럼 혼자여도 좋고, 누군가와 함께여도 너무 좋을 것 같아. 다른 건 몰라도 내가 앞으로 만날 사람은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좋겠다. 이렇게 정처 없이 발 닿는 대로 다니는 여행에 살짝 중독되어 버릴 것 같다.


내 '이별이 가져다준 세계여행'은 결국 '세계여행'이라는 타이틀을 달기엔 조금 민망하게도 대부분 유럽국가만 방문하며 마무리되었다.


그러니까 또 떠나야지. 다음번의 내 세계여행은 또 어떤 타이틀을 앞에 두고 있을까? 아직은 알 수 없지만, 또다시 떠날 여행에서 찾을 행복을 기대하며 지금은 잠시 일상으로 돌아가 또 열심히 살아가자.


내게 이런 여행을 선물해 줘서 고마웠어.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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