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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말 Oct 21. 2016

소선 대악 대선 비정(3)

나는 왜 요동하지 않는 걸까.


어쩌면. 정말로 어쩌면 당신이 떠날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당신을 그동안 간병해 왔던 이유란 떠나기 직전까지의 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라기 보다는, 당신이 떠나는 순간을 놓치는 것이 너무도 두려웠기 때문이라고 본다. 가끔은 각오를 잊고 당신에게 소홀한 나날들도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루하루를 마음 졸여가며 소비했다. 그런 하루의 끝자락에서 나는 또다시 내일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그 두려움의 홍수에서 나는 당신과 가장 가까이,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 시간 속에서 비록 내가 내일을 두려워할지라도 떠남을 인정하지는 않았다. 애쓰고 애써서 무시했다고 보는 편이 더 옳겠다. 그 떠남의 순간을 가장 마지막으로 인정해야 하는 사람이 나 이어야만 한다고 그렇게 생각하며 떨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생각의 아래에는 이미 일찍이 인정해버린 허탈과 미운 침착이 있었다.


그러나 그 인정은 남을 통해서가 아니라, 온전히 나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나는 주변인이 던지는 염려에도 몸서리치게 싫은 반응을 보였는지도 모른다. 병의 어떠한 판단이든 그것은 내가 판단하고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라 여겼으니 말이다. 당신이 가진 병에 대해서 애써 낙관적이고 싶어 했던 것도 사실이며, 그들의 염려가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을 정도로 나는 냉정하기도 했다.


당신을 거치고 나서 그 염려는 나에게 향했다. 그 염려가 진실이든 혹은 아니든, 더 나아가 대악이든 비정이든 나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실 나를 쏟아붓는 시간과 노력이 염려를 부른다는 것은 어쩌면 그 간병이 나에게 굉장한 부담이라 타인에게 해석되어질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석되도록 놓아두기 싫었다. 그렇게 놓아둘 수가 없었다. 당신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이제는 나보다 당신을 더 잘 아는 흰 가운을 입은 사내가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때가 오고 있다고 내게 말했다. 난 그때 내 안의 어떤 벽이 한 번에 무너져 내림을 느꼈다. 그리고 타인에게 애써 숨겨 왔던 사실, 더 나아가 내가 끝끝내 거부한 어느 사실이 그 무너진 벽을 넘어 내게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흰 가운을 입은 사내의 말을 들은 또 다른 타인은 내게 '그동안 너무 수고 많았다, 고생 많았다'라는 말을 건넸다.


그동안 여태 단 한 번도 흐르지 않았던 눈물. 그 눈물이 어디서 나는지 모르도록 많이도 흘렀다. 차마 어찌 막을 수 없도록 흘렀고, 막을 힘도 없이 흘려보냈다. 그렇게 일찍이 알았음에도 힘써 무시했던 거대한 좌절에 무너져 내림을 체감했다. 이제는 정말 막을 수가 없구나 생각하며, 내게 날아들었던 수고와 고생이라는 단어가 너무도 잔인하고 참혹하구나 되새겼다. 아직 당신이 채 떠나지 않았음에도 그렇게 무자비하도록 서두른 판단을 내린 타인이 미운 동시에, 속절없이 무너져내리는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가혹한 선택의 시간이 너무도 가까이 와버렸음을 기어이 인정해버린 꼴이 된 상황이 너무도 서러웠다.


이제 내일은. 내일은 당신이 내 곁을 떠나갔음을 신고해야 하는 날이다. 당신이 떠나고부터 지금까지 길고 길었던 하루를 오직 후회로만 자책하며 지내왔다. 거짓된 감정을 끌어올려가며 지냈던 순간에도 나는 항상 쓰디쓴 과거를 곱씹으며 후회했다. 당신을 공식적으로 보내야 하는 내일 이후에는 어쩌면 더 큰 후회 속에서 살지도 모르고, 더 깊은 과거를 들쑤시며 괴로워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신을 위해서라도 나는 끝까지 꿋꿋한 모습을 보여야만 한다. 어렵지는 않은 일이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일찍이 인정해버렸기 때문이다. 또 그래서 내가 더 포기하기가 너무도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당신과 보낸 시간을 가치 있게 증명해내기 위하여, 나는 요동할 수 없다. 요동하는 모습을 보일 수 없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이자 노력임을 믿는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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