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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말 Dec 06. 2016

소선 대악 대선 비정(7)

병원에 있을 때, 당신이 잠든 것을 확인하고는 복도 끝 창가로 가 야경을 바라보곤 했습니다. 어쩔 때는 그 창가에 이마를 대고선 한숨을 쉬기도 했습니다. 오롯이 나로부터 나온 한숨은 밖을 나가지 못하고 유리에 가로막혀 매달렸습니다. 숨을 힘내어 마셔도 풍선 바람 빠지듯 나오는 한숨. 그 한숨이 유리창에 뿌옇게 달려있는 동안, 그리고 그것이 자연스레 사라질 동안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구멍 뚫린 풍선에 바람을 집어넣는 것처럼 숨을 쉬는 것 말고는 가능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 숨결의 우울한 박자가 당신의 그것과 닮은 것만 같아서. 털어놓을 수가 없는 속내와 걱정은 저녁이 되면 걷잡을 수 없이 자라났습니다. 그것을 통제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을 알았기에, 그저 이 고통의 시간이 어서 지나가 버렸으면 하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의 고통은 곧 당신을 위한 투쟁이었기 때문에 저는 감내할 수 있었습니다. 내심 그것을 감내하는 것도 기뻤습니다. 사실 감내를 감내라고 붙이고 싶지 않을 정도로 당신의 존재를 위해서라면 그런 것은 견딜 수 있었습니다.


오늘로 두 달이 되어갑니다. 이제 당신은 없고, 여기 곳곳에 남겨진 당신의 흔적은 버려지거나 잊혀지고 있습니다. 나는 당신을 어디까지 버려야만 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사소한 영수증이 그때의 사진과 다름없다고 생각하기도 하는 등, 당신과 연관된 여러 물건들이 점차 우상이 되어갑니다. 그 모든 것을 남긴다고 한들 기억이 없으면 그 모든 것에서 당신을 발견해내기가 어렵기 때문에, 아무리 노력해도 어느새 슬며시 옅어져 버린 기억의 흔적을 발견하면 할수록 점점 조급해집니다.


당신의 부재를 체감하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살아가는 것이 때로는 마음 아프게 쓰립니다. 다른 이들은 그것이 곧 의무라고 합니다만, 거대한 상실과 의무를 같이 짊어지는 것은 감내하기 어렵습니다. 이 감내의 끝에 어떤 형태의 보상이나 행복 같은 건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설령 그것이 진정 보상이나 행복이라 한 들, 저는 그 끝에서 그 따위 것들을 받을 이유도 없습니다.


저녁이 되고 주변이 어두워짐에 따라 시야는 좁혀지고 좁혀져 비로소 나에게로 향합니다. 힘써 구하고자, 보호하고자 했던 존재를 잃은 내가 보입니다. 다시 한숨은 시작되고 힘겨운 들숨과 쉬운 날숨을 반복하며 과거를 끊임없이 되새기고 반성합니다. 내일 계획대로라면 저는 장지로 가겠지요. 그곳에 가는 것이 나의 최선이 되어버린 지금, 최선의 최선도 아무런 변화와 소용이 없다는 것은 너무도 슬프고 힘든 발버둥이 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아무런 의미도 되지 않고. 아무런 변화와 소용이 없다고 한들. 저는 오래도록 발버둥 쳐 보겠습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전할 수 없는 사랑만 가득 안은 채, 우리가 함께한 짧고도 아쉬움 가득한 과거를 추억하고 반성하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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