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아집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짓말 Feb 20. 2017

소선 대악 대선 비정(9)

누군가의 빈자리를 느끼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누군가가 필요한 상황이지요. 당신이라는 존재는 항상 우리에게 필요한 존재입니다. 그저 당신이 항상 필요한 자리에서 필요한 역할을 해주었기에 우리는 당신의 빈자리에 대해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또 그렇기 때문에 이런 날이면 당신의 빈자리가 더욱 두드러져 보입니다. 오늘은 당신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많은 이들이 수고해준 날이기도 합니다. 그 수고가 헛된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그 빈자리는 당연하게도 채워지지 못했습니다.


오늘은 졸업식이 있었습니다. 당신의 자녀가 바래왔던 그 졸업식에서 당신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순간순간이 있었습니다. 어느새 날 선 겨울의 숨이 물러서고, 순리처럼 찾아온 봄볕이 있었습니다. 그 볕 아래 서서 당신과 이 계절의 변화를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체감하였고, 친구들과 즐거이 이야기를 나누며 사진을 찍고 있는 당신의 자녀에게 당신과 같은 따스한 눈길을 건넬 수는 없었습니다. 그저 이 자리에 당신이 있었더라면 하는 그런 마음이 있었을 뿐입니다.


졸업식에 함께 발걸음 한 주변 친지들이 당신의 자녀를 사진을 찍고, 꽃다발을 챙기고, 웃으며 바라볼 때. 그런 정성 어린 순간이 나에겐 그리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소선인지 대선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그저 졸업식까지만이라도 여기에 있어주기를 바랬던 작은 바램마저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 바램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자리에서 그렇게 나는 빈자리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사진이 찍히는 그 피사체에 당신이 함께 하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그럼 마음이 들었습니다.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학사모를 쓰고 친구들과 뒤섞여 사진을 찍는 모습, 가족들이 모여서 축하해주는 모습 등을 보았습니다. 그 모습에 당신이 더 입혀졌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 작은 바램의 순간이 그리움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냥이 아닌 그냥의 마음으로 당신을 그리워했던 날입니다. 많은 이들이 아직도 관심을 기울이며 우리들을 잘 대해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런 날이었습니다. 그들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것도 무위로 돌아간 것도 아닙니다. 그저 나는, 그저 나는 작은 바램이었던 미래가 이루어지지 못한 현실이 아주 조금은 슬퍼졌던 것일 뿐입니다. 때로는 사무치게 그리기도 때로는 다른 일에 열중하기도 하면서 그렇게 지내고 있습니다.


현실을 판에 박아 멈춘 그 사진에 당신이 있었으면 좀 더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많은 후회의 파편들이 아직 차마 흩어지지 못하고 있고, 세상과 시간은 당신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자들을 위해 지금도 돌아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많은 순간들에서 이렇게 당신을 원할 때가 찾아오리라 생각합니다. 아직도 많은 순간이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잘 지내고 있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배려. 그 이기적인 이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