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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말 Mar 06. 2017

소선 대악 대선 비정(10)

왜 과거는 쉽사리 바스라지고야 마는 것일까요. 시간이 지나고 나면 왜 깎이고 깎여 둥그스레한 모습으로. 그렇게 본래의 형태를 잃어버리고 마는 것일까요. 그것을 더듬어야 그것을 더 잘 느끼는데. 그것을 더듬을수록 왜 닳아버리게 되는 것일까요.


오늘로 5개월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저는 부엌과 집안일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제법 하는가 싶기도 하고, 그러나 문득 예전의 당신처럼 실패한 반찬을 아쉬움에 몇 번 내본 적도 있습니다. 별다른 일이라고는 없는 그런 평범함 속에서 시간은 이렇게 지나 있었습니다. 지남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개성 없는 일상에서 당신이 없다는 건 때로는 많이 아쉽습니다.


점점 부엌일이 익숙해지는데 조금이나마 더 빨리 익숙해졌더라면 또 어땠을까 싶습니다. 이제는 이런 것도 도전해 볼 수 있는데 좀 더 나은 대접을 해주지 못함에 마음이 아파오기도 합니다.


많은 상차림이 있었습니다. 그 상차림을 꾸리기 위해서 수저통에 손을 넣어 무작위로 수저를 꺼냅니다. 신기하게 당신의 수저가 딸려 나온 적은 매우 드물고 드뭅니다. 이런 일상의 무작위에서도 당신과 닿는 횟수가 줄어드는 것만 같아서 내심 아쉽기도 합니다. 내가 가진 종교에 따라서 그저 잘 지내고 있겠지 라는 생각만 할 뿐입니다.


어느 날인가. 저는 꿈을 꾸었습니다. 원래 저는 꿈을 꾸지 않고, 꿈 내용도 기억하는 것도 어려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 날의 꿈은 너무도 생생했습니다. 온 가족이 집안 정리를 하는 꿈이었습니다. 너무도 생생해서 정말 꿈인가 싶었습니다.


정리가 끝나고 가족이 모여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도란도란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사뭇 낯설었음에도 포근했습니다. 내가 잊고 있던 따스함을 다시금 되찾은 기쁨과 행복감을 이루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앞서 말한 낯섦의 감각은 지금이 꿈이라는 것을 깨닫게 했습니다. 평범한 가족의 시간이 아니라, 오랜만에 만난 이들과 만나 그동안의 일을 즐겁게 정리하고 알리는 것만 같았습니다.


꿈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과 동시에 많은 눈물이 흘렀습니다. 회한인지 기쁨인지 안타까움인지 번민인지 아쉬움인지 그리움이었는지 모르는 그런 눈물이 많이도 흘러내렸습니다. 당신은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습니다. 아픈 모습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잘 쓰지 않는 표현으로 내게 여러 말을 건넸습니다. 우는 나를 앞에 두고서도 당황한 기색이 없이 그렇게 여러 말을 건넸습니다. 눈물이 차올라서 흐려진 눈물을 밀어내려, 눈을 잠시 감았다가 뜨는 순간에라도 당신이 사라지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렇게 뜬 눈으로 당신을 계속해서 주워 담았습니다.


꿈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은 너무도 서러운 일이었습니다. 잊지 않아야 할 모습인데, 나는 꿈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데, 그리고 언젠간 알람이 울려버릴텐데. 당신과 이제 곧 헤어질 거라는 야속한 계산이 너무도 서러웠습니다. 그렇지만 너무도 고마웠습니다. 그렇게라도 나에게 와주어서. 그리고 말을 건네주어서. 좋은 모습을 보여줘서 너무도 고마웠습니다.


이제 많은 시간이 지나고 지나고 또 지나면 언젠가 온 가족이 다시 만나게 되는 그런 순간이 오지는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찌 살았는지 꼭 이야기하고 싶고, 듣고 싶어 지기도 합니다. 안녕하겠습니다. 꼭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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