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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낭이 Feb 11. 2023

상사에게도 할 말은 해야겠습니다

삼성전자, 퀄컴에서의 상사와의 이야기

나는 상사를 대할 때, 가장 순종적인 사람이 된다. 

내가 생각하는, 상사에게 내가 취해야 할 기본적인 태도는, 

'나의 상사의 말은 무조건 맞고, 나는 그의 말을 따라야 한다.'이다.

그는 나보다 경력이 많고, 지식이 많고, 나를 위해 해주는 피드백은 오로지 나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무조건 나는 그것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나는 상사를 대할 때, 내가 해야 할 말을 반드시 한다.

그리고 내가 이 일에 대해 이 정도 노력을 들였고, 이 부분은 실수가 있었지만, 

개선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으며 상사가 내가 생각하는 내 노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때에는 

나는 반드시 상사에게 그것을 알려줘야 한다.


또한, 상사가 어떠한 행동을 했을 때, 혹은 어떤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도,

나는 그들이 듣기 좋은 말만 해주려 하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당신이 고쳐야 할 점. 당신이 개선해야 할 점을 더 솔직히 말해주는 편이었다.

상사가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오히려 이런 나의 태도를 더 좋게 바라봐 주었던 것 같다. 



삼성전자에서 일하던 시절, 

나의 상사는 내가 생각하기에 기술적으로 이 분야에서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와 논의할 때, 기술적인 측면에서 한 번도 그의 이야기에 반기를 든 적이 없었다.

그가 제안하는 방식, 생각하는 방향을 최대한 베끼고, 따라가려 노력했던 것 같다.


그런데 가끔 나의 상사는 팀을 이끌어 가는 데 있어, 

주니어, 시니어 사원 간의 밸런스와 때로는 느껴지는 각 직급별 세대 차이에 대한 고민이 많은 분이었다.

우연히도, 나의 존재는 당시에 정확히 그 중간 지점에 있는 사람이었고,

가끔 진행되었던 1 on 1에서, 그분은 나에게 지나가듯 고민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에, 내가 생각하는 매니저로서의 본인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소위 MZ 세대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 가에 대해 같이 논의를 했던 것 같다. 


매니저 본인에게 아랫사람으로서 피드백을 주는 그 과정은, 

아슬아슬한 선을 지키기 위해 상당히 많은 노력이 필요했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그 과정을 통해 나 스스로도 많이 배웠고, 그분의 관계도 더 좋아졌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퇴사를 한 몸이 되었지만, 그 이후에도 여러 번 만나 조언을 듣거나, 가끔 조언을 드리기도 한다.


나에게는, 정말 감사하게도 회사 생활의 은인과도 같은 분이다.




퀄컴에서 일하는 지금의 상사는 조금 더 프로젝트 매니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는 상당히 젠틀하고, 때로는 확고한 워딩으로 내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알려준다.


최근에, 벤더 업체와의 커뮤니케이션 문제로 나는 내 상사와 논의를 한 적이 있었고,

그 이후로도 크게 개선이 되지 않아 여러 번 피드백을 받았다.


그런데 특히 이번에 커뮤니케이션 적으로 큰 문제가 발생한 적이 있었다.

벤더 업체의 불성실한 태도, 몇 달이 지나도 개선되지 않는 프로젝트

여러 번 자세히 설명해 줘도 돌아오는 단답형 메일 답변 등.. 


나의 상사가 보기에 이 과정이 매우 시간 낭비 같아 보이고 또 일부 측면에서는 나의 실수를 지적하면서

그가 나와 더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얘기해 왔다.


그의 말에 동의하는 측면도 있긴 했지만, 나는 한편으로는 너무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나의 실수가 전체 과정을 뒤덮는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치 모든 문제가 나 때문에 발생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그에게 부족한 영어 실력으로 장문의 답변 메일을 보냈다.


"먼저, 나에게 발생했던 실수는 인정합니다. 나의 잘못입니다. 이 프로젝트에 대해 아직 완벽히 숙지하지 못했으며 그 과정에서 그러한 실수가 발생했습니다. 차후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나의 이 실수가 이 커뮤니케이션을 악화시킨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더 큰 문제는 벤더의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벤더에게 충분히 자세히 전달하였음에도 그는 전체 내용을 이해하려 하지 않습니다. 또한 그는 답변을 때때로 무시하기도 합니다. 또한 그는 이런 행동을 통해 이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더 키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나는 매우 길을 잃은 것처럼 느끼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나에게 당신의 조언을 주십시오"


이 메일 이후 그는 나와 2시간 가까운 회의를 진행했고, 

그는 역시 매우 친절하고 젠틀한 어조로 벤더의 잘못을 지적함과 동시에, 

그럼에도 내가 그 프로젝트의 'owner'이기 때문에 해내야 할 일들에 대해 상세히 알려주었다.


그는 내가 봐온 매니저 중에 가장 매니저 다운 매니저였으며, 프로페셔널했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내가 느낀 솔직한 감정을 공유한 것을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는 그것을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이고, 

그 과정을 통해 내가 어필한 나의 노력을 이해해 주는 한편, 내가 개선되어야 할 부분을 놓치지 않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많은 일잘러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는,

"당신의 상사를 잘 이용하세요. 당신의 상사는 당신을 위해 존재합니다"이다.


아직 회사 경험이 적은 내가, 이제야 이 말을 조금씩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때로는 상사라는 존재가 매우 불편할 수 있지만, 

상사는 나의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연락하고, 부탁하고 조언해야 할 사람, 

내가 필요할 때는 해야 할 말을 해야 하는 사람, 그리고 그 말들을 차분이 들어줘야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우리는, 할 말은 해야 한다. 그것이 비록 나의 상사일지라도.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한 단계 더 성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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