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회사에서 사람을 뽑는다니!
2022년 3월.
그날도 그저 그런 날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귀찮고, 지루하고, 누군가의 빛나는 일을 위한 뒤치다꺼리 수준의 일.
그런 부류 중 하나인 일을 하는 날이었다.
하나 다른 점이라면,
대학원 시절 알게 되어 지금까지 인연을 맺고 있던 우리 파트 J수석님께서,
본인의 박사 과정 업무를 마치고 회사로 복귀한 첫날이라는 것 정도랄까.
사실, 내가 속해있던 조직은 조금 특별했다.
내가 있던 연구실의 연구 분야 특수성 때문일지는 몰라도,
우리 조직의 대부분의, 아니 모든 senior engineer들이 전부 다 우리 연구실 소속이었다.
이번에 복귀하신 J수석님도,
나보다 훨씬 오래전에 우리 연구실에서 석사를 마친 후에 회사에 입사하셨고,
10년 이상 근무 하시다가, 다시 우리 연구실로 박사를 하러 오신 것이었다.
그리고 수년간의 박사 과정 기간을 거치고, 오늘이 바로 다시 회사로 복귀를 하는 날이었던 것이다.
여하튼,
오랜만에 복귀하는 그분을 만났다는 설렘 때문인지,
아니면 다들 그냥 왠지 모르게 그날은 일을 하고 싶지 않아서인지,
그날은 다들 업무보다는 같은 연구실 출신 사람들끼리 모여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 데 시간을 더 많이 쓴 것 같다.
그동안 잘 지내고 살았는지, 요새 회사 분위기는 어떤지, 파트 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등
오랜만에 다시 만났다는 반가움과 설렘으로 시작한 그 대화는
예상할 수 있는 질문과 예상할 수 있는 답변이 오가는 와중에,
그날의 지루했던 업무를 잠시나마 잊게 해 주기 적합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뻔할 뻔했던 그날의 그 대화는,
복귀하신 J수석님의 한마디로 내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게 되었다.
"그런데 너희 예전 우리 파트장이었던 K수석님 알지?
지금 Qualcomm에서 일하고 있는데 지금 자기 팀에서 채용 중이라고
혹시 미국에서 일하는 게 관심 있는 사람들은 지원해 보라고 하더라?"
그 이야기를 들었던 그 순간의 나는,
아마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사람들처럼 정말로 별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미국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그전까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그 순간에, 미국에서 일하고 싶다는 욕망을 내비치는 것 자체가 다른 사람들에게
'네가 감히?' 혹은 '그래서 여기서 우리랑 일하는 게 싫어?'라는 인상을 줄까 봐 더 조심스러웠을지도 모른다.
"Qualcomm 가면 우리 회사 고객님이 되겠는 걸, H야 네가 가서 우리 회사 실적 좀 올려줘라~"
"아 무슨 소리예요~ 저는 한국에서 일하는 게 좋아요~ 미국은 갈 생각 없어요~"
"왜~ 미국 가면 좋지~ 요새 미국이 반도체 엄청 밀어주잖아~"
다들 궁금해 하지만, 실제로 나와는 큰 상관없는 일이야 라고 생각하는 정도의 수다가 오간 후에,
그 이야기는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 이야기가 조금 달랐던 것 같다.
마치 고요한 마음속 호수에 던져진 작은 조약돌이 만들어낸 파동처럼,
계속해서 무언가 설레는 감정을 숨길 수 없었다.
그렇게 그날의 회사에서의 하루가 끝이 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스스로에게 정말 많은 질문을 했던 것 같다.
'미국에서 일하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한국이 아니라 미국에서 일하면 정말 더 많은 커리어 성장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
..
.
'근데 정말 내가 미국에서 일할 수 있을까?'
그러다 문득 고3 시절이 생각났다.
2006년 4월.
한창 수능을 준비하는 서울 내 고등학교 3학년 어느 반.
내 담임이 갑자기 게시판에 무언가를 붙이며 말했다.
"이게 그.. 일본에 있는 국립공대에 지원하는 게 있나 본데, 관심 있는 사람 해봐라~"
당연히, 그 말을 하는 담임도, 그 말을 듣는 학생도,
그 누구 하나 관심 있는 사람이 없었다.
사실 고 3 그 누구라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수능을 앞두고,
갑자기 처음 들어보는 일본공대니 뭐니 하는 걸 지원한다는 것 자체가
제정신이 아니면 하기 힘든 일일 테니 말이다..
애석하게도, 그 제정신 아닌 사람이 바로 나였다.
당시 대략 인서울 정도 가능할까 말까 한 수능 모의고사 성적이었기 때문에
하나라도 더 공부해서 좋은 성적을 받아도 모자랄 판에,
나는 갑자기 그 일본공대가 지원하고 싶어졌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당시 일본공대 시스템은, 일단, 1차로 500명을 선발하고, 2차로 150명에만 들면,
전액 국비 장학생으로 일본의 여러 국공립 대학교 중 한 곳에 가서 공부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심지어 5등 안에만 들면, 일본에서 가장 좋은 대학교인 동경대에 입학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듣기만 해도 얼마나 멋진가!
나는 왜 이런 게 있는지 몰랐는가!
비록 영어가 조금 모자라고, 물리 2는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지만,
나는 수능 공부를 전면적으로 중단하고 3개월 동안 일본 공대를 준비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재수를 시작했다.
그래, 그때에도 나는 정말 대책 없는 바보였지.
막연히 좋아 보이는 게 보이면, 뒤도 안 돌아보고 해 보려는 성격. 그게 나였다.
내 짧은 영어 실력과 업무 경력으로도
미국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지는 어떨지 전혀 몰랐지만,
지금 회사에서의 이 무료한 업무들보다 훨씬 더 보람차고, 커리어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새로운 곳에서의 새로운 직장에서의 새로운 업무를 직접 경험해 보고 싶었다.
그냥, 한번 도전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와이프에게 조심스레 말을 꺼내보았다.
"여보, xx선배 알지? 그 선배가 이번에 이러이러한 기회가 있다고 하더라고, 어떻게 생각해?"
"오!? 좋은데? 한번 지원해 봐!"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와이프의 반응은, 오히려 조금 실망스러웠다.
'진짜 지원해 봐도 괜찮은 건가? 만약 합격하면 미국에서 생활해야 하는 건데, 아무렇지도 않은가?'
'어차피 될 거라고 생각 안 하고 있으니까, 그냥 대충 대답하는 건 아닌가?'
나 스스로도 내가 진짜 미국에서 일하게 될 거라고,
그리고 미국에서 살 결심이나 각오 따위는 하지도 않고서,
막상 와이프가 별 고민 없이 해보라는 말이 나는 왜 이리도 서운했던지.
아마 와이프가 진지하게 미국에서의 삶을 고민했더라면 조금은 덜 서운했었을까?
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 누구도 우리 가족이 미국에서 살 거라고 생각조차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그 반응은 당연한 반응이었을지도 모른다.
와이프는 내가 내리는 결정은 항상 존중해 주는 성격이었기에,
최선을 다해 나의 이야기에 긍정을 표해준 것뿐이었다.
여하튼,
그렇게 나는 한번 지원해 보기로 결심했다.
밑져야 본전 아닌가?
떨어지면 말고, 붙으면 좋고.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나는 아직 미국 회사에 어떻게 지원하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그래서 대체 미국회사에는 어떻게 지원해야 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