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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내가 예상했던 바가 아닌데

미국 생활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다

by 담낭이
졌지만, 그래도 잘 싸웠다!


첫 번째 면접을 보고서,

조심스레 면접은 어땠는지 물어보는 와이프에게 했던 내가 했던 대답이었다.


그만큼, 시원섭섭했던 면접이었다.

우선 허무하게 취소되어 버리고 끝나버리는 줄만 알았던 면접을 결국에 봤다는 것이 행복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영어 면접을 망치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했다는 것이 좋았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업무 분야가

전 세계적으로도 (우선 Qualcomm만 확인한 셈이지만) 계속 연구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나름대로의 자부심도 느낄 수 있었다.


다만 면접관 M의 말처럼, 우선 직급이 문제였다.


사실 면접 보는 그 당시까지도 몰랐지만,

내가 면접 본 job position은, senior staff engineer였다.


직급 이해를 위해 잠시 설명해 주자면,

Qualcomm은 다음과 같은 직급 체계를 사용한다.


engineer - senior engineer - staff engineer - senior staff engineer - principal engineer


보통 Fresh doctor들이 senior engineer를 달고 입사를 하고,

평균 3-4년 정도에 다음 직급으로 진급을 한다고 한다.


즉, senior staff engineer는 대략 한국 기준으로 수석, 부장님 정도는 되는 직급이고,

20년도에 박사 졸업하고 이제 삼성에서 2년 정도의 경력을 지닌 나는,

그들이 보기에 senior engineer 정도가 적합한 것이었다.


그런 내가 senior staff engineer 자리에 지원을 했으니, 그들도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이런 기본적인 직급 체계도 잘 알지 못하고

미국 회사에 지원한 나의 무지가 참으로 대단하다 싶다.


여하튼, 나도 눈치라는 것은 있었고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파악한 M의 마지막 그 반응은, 내가 적합한 상대는 아닌 것 같다는 반응이었고,

그리고 나 이외에도 여러 candidate이 있다는 말이 있었기 때문에


면접 이후에는 완전히 마음을 내려놓고 있었다.


그래도 그 면접이 아예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우선 가장 먼저, 당시 회사생활 3년 차에 접어들던 나에게,

업무가 조금 무료하고 이 일이 지루하다고 느껴지는 이른바 3년 차 신드롬이 찾아왔었는데,

면접 이후에 다시금 열심히 해봐야겠다는 동기부여가 생겼다.


비록 내가 지금은 면접에서 떨어졌지만, 가능성을 보았고

열심히 이 자리에서 업무에 집중한다면, 나중에 또 다른 기회를 가질 수도 있지 않을까?


입사 후에 이제 내 인생은 이렇게 단조롭게 정해져 버리겠구나 하고 혼자 속상해했었는데,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상상하지도 못했던 미국 회사 면접을 그래도 나는 경험하지 않았는가!

조금 더 열심히, 긍정적으로 살아보자!


그런 마음이었다.

그래서인지 면접 이후로 더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일에도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J수석님과도 커피를 마시며 면접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이번 면접 기회로 오히려 지금 회사와 업무에 대해 더 많은 애정이 생긴 것 같아요.

좋은 경험할 수 있게 도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래, 좋은 경험 했다니 우선 다행이야. 그런데, 혹시 알아? 면접 결과가 좋아서 다음 면접이 진행될지?"

"아마 그건 힘들 거예요, 우선 직급부터가 차이가 너무 많이 나요. 아마 J수석님이 지원하셨으면 바로 합격이셨을 텐데 말이죠"

"그래? 내가 지원해 볼걸 그랬나? 하하. 안돼, 나는 미국에서 못살아, 한국이 너무 좋아"


그렇게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면접을 보지 못해 안달이 나고, 예민했던 나는 어디 있었냐는 듯,

나는 다시 빠르게 일상으로 복귀했고,

J수석님을 제외한 그 누구도 나의 이런 작은 일탈을 모른 채, 또다시 같은 하루가 반복되고 있었다.




그날 아침은 유난히도 짜증 나는 미팅이었다.


몇 달 전부터 외국 vendor에게 우리가 필요한 기술을 설명하고, 개발에 대한 필요성을 주장해 왔는데,

그들은 계속해서 같은 이야기만 하고, review 해 보겠다는 이야기만 하고서, 진행하지 않고 있었다.


몇 달째 계속 진전이 없자,

해당 프로젝트의 필요성과 개발 방안, 그리고 현재 3rd party는 이미 개발이 완료된 상태라는 점까지

들먹이며 개발 추진을 요청하고 있었는데,


안 그래도 비협조적인 그들의 태도가

"너희들 이 기술에 대해 좀 알아? 내가 가르쳐 줄게" 하는 식의 태도가 아닌가.


나를 포함한 함께 참석한 우리 파트의 engineer들은 매우 화가 났고,

나의 사수는 결국

"지금 이 회의는 네가 lecture를 하는 게 아니야, 그냥 하기 싫으면 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하자"

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나도 감정을 다스린 채 조용히 회의를 듣고 있었는데,

갑자기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메일 한 통이 온 것이다.

상태표시줄에 잠깐 스치듯 보이는 "Qualcomm"이라는 단어, 그리고 "Interview"라는 단어.


나는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1차 면접이 혹시 통과한 것인가?'

'아니면 1차 면접이 탈락했다고 친절하게 알려주는 메일인 것인가?'


하지만 나는 바로 확인할 수 없었다.

아마 그런 분위기의 미팅 자리에서 핸드폰을 켜서 메일을 확인한다는 건 그 누구도 불가능했으리라.


그렇게 미팅을 마무리하고서,

나는 죄라도 지은 듯 화장실로 몰래 숨어 들어가, 핸드폰을 확인했다.

그리고 내 눈을 확인했다.


팀 인터뷰가 잡힌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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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5명의 팀 멤버들과 인터뷰를 봐야 했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중 한 명은 out of office였기에, 다른 날로 배정이 되었다.


그리고 금요일 1pm PST라는 것은, 한국 시간으로 토요일 5am을 뜻하는 것이었기에,

나는 토요일 아침 5시부터 9시까지 4시간에 걸쳐 영어로 면접을 봐야 했다.


완전히 멘붕이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름대로 완벽하게 마음을 다잡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일을 하고 있었는데,

정말 기대치도 않은 2차 면접, 그것도 팀 면접이라니.


그것도 영어로 말이다.


어쨌든, 우선 이 소식을 와이프에게 전해야 했다.

와이프는 놀라면서도 동시에 축하의 말을 건넸다.


이제 미국 이직은 단순히 한번 해보자! 가 아니라, 진지한 우리의 고민이 되었고,

그와 동시에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 사는 것에 대해 진심을 다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 것이다.


사실 단순히 나의 업무와 커리어에 대해서만 고민하고, 그래서 진행했던 미국 기업 이직 활동이었다.

와이프나, 아이들의 생활에 대해서는 그때까지 단 한 번도 고민해 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까지도, 내가 알고 있던 건,

그래도 샌디에고는 미국에서 살기 좋다고 하니까, 살기 괜찮지 않을까? 정도의 막연한 기대뿐이었다.


그렇게나 무지한 상태에서 내 인터뷰는 진행되고 있었다.


아직도 생각나는 와이프의 마지막 한마디는 바로, 이것이었다.


이러다 진짜로 미국 가는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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