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이러다 진짜로 미국 가는 거 아니야?

2차 인터뷰를 보고 나서

by 담낭이
이러다 진짜로 미국 가는 거 아니야?


와이프의 말마따나,

이제는 진짜로 진지하게 생각할 때가 되었다.


사실 미국 기업 이직에 대한 이야기는 와이프 하고만 진지하게 이야기했었고,

그전까지 양가 부모님께는 그리 진지하게 이야기드린 적이 없었다.


먼저 처음 지원방법을 알게 되었을 때, 부모님께 지나치듯이

"미국 회사에 한번 지원해 봤어요. 될 가능성은.. 거의 없을 거예요. 0%에 수렴해요"

라고 말씀 드렸고


인터뷰가 잡히게 되고, 1차 인터뷰까지 보게 되었을 때는

"인터뷰를 보았네요, 저에게 좋은 경험이에요. 가능성은.. 5% 정도인데 뭐 거의 희박한 수준이죠"

라고 말씀 드렸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2차 인터뷰가 잡혔다고 내가 합격한다는 보장은 여전히 없지만,

이 정도 되었으니 나는 부모님께 조금 더 솔직하게 그 가능성에 대해 말씀드려야만 했다.


"1차 인터뷰가 잘 되어 2차 인터뷰가 진행될 예정이라네요. 가능성은.. 이제 한 50%까지 된 것 같아요"


처음에 내가 Qualcomm에 지원한다고 하였을 때,

그리고 혹시나 합격하게 되면 미국에서 살게 된다고 하였을 때,

가능성은 거의 0%라고 말씀드렸음에도,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었다.


"네가 바라는 길이면, 그 가능성은 0%가 아니라 분명히 100% 일거야.

반드시 이뤄질 것이야. 네 커리어를 위해 계속해서 고민하고, 어떤 길이 좋을지 생각해 보렴"


그리고 그 가능성이 50%로 조금 더 높아졌을 때, 아버지는 진지하게 다시 나에게 말씀하셨다.

"미국에서는 얼마나 살 생각이니? 5년? 10년? 나중 미래의 계획도 세워 보는 것이 좋겠구나"

"다만, 미국에 가게 되면 우리 손주들을 자주 못 보게 되는 것이 아쉽구나"


그때부터 아버지는 어렴풋이 직감하셨던 것 같다.

본인의 아들이, 정말로 미국에 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걸 말이다.


아버지로부터 어렸을 때부터, 수도 없이 귀에 박히게 들었던 말은,

한 회사에서만 성장하는 것은 한계가 있고, 다른 회사, 특히 미국 같은 곳에서 경력을 더 쌓고 오면

한국에 돌아왔을 때 더 크게 대우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마 아버지께서도 삼성 근무 당시 본인 주변의 누군가가

더 좋은 조건으로 해외 기업에서 삼성으로 스카우트되는 상황들을 많이 보시고 하셨던 말씀이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그 길을 막상 아들이 가겠다고, 아니 정말 진지하게 갈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아버지로서 아들에 대한 자랑스러운 감정이 드는 반면,

할아버지로서 손주들에 대한 아쉬운 감정이 드셨던 것 같다.


"아직 가능성은 50%니까요, 좀 더 구체화되면 말씀드릴게요."


참으로 무뚝뚝한 아들이었다.




download (1).jpg


어찌 되었든, 주사위는 던져졌다.

나는 내 최선을 다해 주어진 2차 면접을 봐야 했고, 면접을 준비해야 했다.


앞서 말한대로 첫 날의 면접은 4시간에 걸쳐 팀의 Sr.Director부터 Senior eng까지

업무 관련 모든 사람들과 세부적인 사항에 대한 면접이 진행되기 때문에,


나는 다시 카메라를 켜고, 자기소개를 영어로 외웠으며,

조금 더 detail 한 기술적 질문들을 대응하기 위해 나름대로 밤을 새 가며 준비했다.


첫 번째 면접자는, 그 팀의 대장, Sr.Director, R이었다.

나는 사실 그전에 R을 만난 적이 있었다.

입사했던 첫 해, 내가 담당하고 있는 system의 일부 data가,

삼성 파운드리와 고객인 Qualcomm 사이에 mismatch 되는 일이 있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R이 직접 한국에 방문했던 것이다.


그 당시 해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는 낮은 직급임에도 담당자라는 이유로 그 미팅에 참석했었고,

더듬더듬 부족한 영어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그에게 브리핑했던 기억이 있다.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다니.... 정말 세상은 좁구나.. 싶었다.


그에게 자기소개를 한 뒤,

그는 낮은 목소리로 나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너의 경력은 2년밖에 되지 않는데, 왜 지금 굳이 회사를 옮기려고 하는지 이유가 있는가?"


이 부분이 아마도, 그들이 가장 걱정하는 부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 친구는 2년 만에 다른 회사로 옮기려고 하네, 그럼 우리 회사에 와서도 또 2년 만에 나가는 거 아니야?'

그래서 나는 최대한 정확하고, 진심이 담긴 이야기를 해야만 했다.


"저는 지금 삼성 파운드리에서 일하는 것에 대해 매우 만족하고, 많은 것을 배워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가 이 짧은 기간에 Qualcomm으로 옮기려고 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곳에서 지금보다 더 많은 경험과 커리어 성장을 이룰 수 있을 거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는 한, 제가 현재 맡고 있는 이 분야는, Qualcomm이 전 세계적으로 잘하고 있는 분야입니다.

실제로 현재 파운드리에서 Qualcomm 제품 data를 돕는 일을 하면서,

이곳의 여러 resource와 infrastructure 수준에 놀랐습니다.

훨씬 다양하고 많은 연구와 분석이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저를 설레게 했고,

그런 의미에서 이번 Qualcomm에 지원할 수 있는 기회는 저에게 매우 소중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의 답변이 그럭저럭 마음에 들었는지, 이 답변 이후로는 그의 팀 소개가 이루어졌다.

미국에서 생활하는 것의 이점, Qualcomm이 나에게 지원해 줄 수 있는 내용, 우리 팀은 인도와 자주 일하기 때문에 저녁에도 일하는데 괜찮은지 등 아주 간단한 수준의 대화가 오고 갔다.


이때부터 내 마음은 요동치기 시작했다. 사람이 감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아.. 이거 완전 합격 느낌이다.. 나 진짜 미국에 가는 것인가!?'

'미국 가려면 뭐부터 준비해야 하지.. 와이프는 마음의 준비가 끝났으려나..?'


두 번째 면접자는, 나와 비슷한 경력을 지닌 S였다.

나와 비슷하게 20년도에 박사를 졸업했고, 실제 현업에서 가장 긴밀하게 일하고 있는,

기술적 내용을 가장 많이 아는 친구였다.

그의 인도 영어 발음에 조금 당황하여 많이 대답 못했던 부분도 있지만,

매우 친절한 그의 질문에, 무리 없이 답변할 수 있었다.

내가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할 때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예시를 들어가며 설명해 주기도 했다.


세 번째 면접자는, K수석님이었다.

이미 몇 차례 연락 드리고, 말씀을 나누었기 때문에 사실 가장 심적으로 마음을 내려놓고 있었다.

그리고 이는 완벽한 나의 패착이었다.


앞서 면접을 본 S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냉철하고, 수준 있는 질문들을 많이 물어보셨다.

아마도 실제로 나를 referral 해주시는 입장에서,

더 확실하게 나를 검증해봐야 한다는 생각도 있으셨을 것 같다.


점점 나의 긴장감은 올라갔고, 급기야 아주 간단한 수준의 질문까지 답변을 놓치고서,

K수석님에게

"이 정도는 완전히 기본적인 내용인데, 아마 오래돼서 잊어먹으신 것 같네요. 다시 공부하셔야 할 것 같아요"

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나의 자존감과 자신감이 모두 와르르 무너져 내렸던 것 같다.


그날의 마지막 면접자는 SH였다.

다행히도 이 친구의 분야는 나의 분야와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지는 않았고,

아주 간단한 수준에서 서로의 안부를 물어보는 수준으로 끝났다.

사실 이미 전 면접에서 엄청난 긴장감과 멘탈 붕괴로 인해 제대로 면접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 면접이 SH였던 것은 나에게 매우 다행인 점이었다.


그렇게 4시간의 면접 시간이 끝나고, 밤을 꼴딱 새워버린 나는, 그대로 잠들었고

그 후로 하루종일 몸져 앓아누운 채로 기절했던 기억만 난다.


그렇게 속으로 거의 탈락을 확실시하며, 마지막 남은 면접을 또다시 아침 5시에 보았다.


마지막 면접자는 J였다.

나와 함께 일하던 vendor 업체에서 오랜 시간 우리 부서 지원을 해주시다가

작년에 principal eng로 퀄컴에 가신 분이었고, 업무 관련해서도 나와 가장 많은 부분 맞닿아 있었기에,

그리고 그분 자체가 매우 gentle하셔서 무난하게 끝낼 수 있었다.


그렇게 짧고도 긴 영어 팀 인터뷰를 마무리하고,

나는 면접이 어땠냐는 와이프에게 다음과 같이 답장을 했다.


졌는데, 그런데 못 싸웠네..




그렇게 나는 또다시 일상으로 복귀해야만 했다.

마지막 면접을 보고 나서, 나는 거의 바로 출근을 했다.


마음이 후련했던 1차 인터뷰와는 다른 마음이었다. 아쉬웠고, 아쉬웠고, 또 아쉬웠다.

왜 그런 기본적인 질문을 대답하지 못했는지에 대한 아쉬운 마음이 가장 컸다.


'아는 내용이었는데, 가장 기초적인 내용이었는데....'


시험도 모르는 4점짜리 문제 틀리는 거보다 쉬운 2점짜리 문제 틀리는 게 더 속이 쓰린 법이지 않은가.


그렇게, 잠도 잘 못 잔 채로, 그날 하루를 보내며, 커피로 나의 부족한 수면을 채우고 있었다.


그렇게 점심이 끝나고 오후 시간 1시 즈음이었을까.


갑자기 J수석님이 나에게 다가와서, 아주 진지한 얼굴로, 따라오라고 말씀하셨다.


무슨 일인지 여쭤보지도 못한 채,

J 수석님은, 단 둘이 있을 수 있는 작은 회의실로 나를 부르시고는,

진지하고, 단호하신 목소리로 이렇게 물어보셨다.


너, 정말로 미국 갈 거야?
keyword
이전 05화이건 내가 예상했던 바가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