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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처음 경험해 본 영어 인터뷰

졌지만 잘 싸웠다란 이런 걸까

by 담낭이

K수석님으로부터 인터뷰를 보게 될 거라는 말을 들은 이후부터,

나는 어쨌든 최선을 다하기 위해, 영어 인터뷰를 준비했다.


사실 그전까지는 별 생각이 없었지만,

내가 간과하고 있던 부분은 바로 놀랍게도, 나는 그리 영어를 잘하지 않는다...라는 점이었다.


나의 영어 수준은,

OPIC 점수는 IH 정도 수준에,

삼성전자 근무 당시에는, 해외 vendor들과 매주/격주 영어로 회의를,

그것도 띄엄띄엄 아주 기본적인 수준의 질문과 답변만 가능한 정도가 다였다.


나는 영어로 인터뷰를 봐야 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우선 회사에서 지원해 주는 전화영어를 아침마다 10분씩 진행했다.

그리고, 집에 오면 유튜브에 'How to prepare English interview'를 검색해서,

영상을 보며 따라 했고,

그마저도 안될 것 같아,

회사 근처에 1:1 영어 회화를 4회 정도 진행해 주는 선생님을 찾아,

선생님과 영어로 대화하는 것을 연습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정말 처참한 수준으로 영어를 못하는구나.


내가 원하는 문장을 100% 영어로 만들어 내지 못하고, 계속해서 버벅거렸다.

나를 가르쳐주던 선생님도, 나에게 진지하게 물어보았다.


"아직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 것 같은데, 왜 굳이 미국 회사에 취업하려 하시는 거예요?"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그게 궁금합니다..


그렇게 부족한 영어 실력을 조금이라도, 단기간에 늘려 보겠다고 퇴근 후에도 열심히 영어 공부하며,

언젠가 받게 될 인터뷰 일정 메일을 기다리고 있었던 참이었다.


그리고 받게 된 메일이 바로 Andy로부터 온 메일이었다.




인터뷰가 취소되어 더 이상 채용 과정을 진행할 수 없습니다


인터뷰를 당연히 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던 나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메일이 날아왔다.

이 Andy라는 Qualcomm의 AI 친구는 자기 마음대로 몇 번의 면접 일정을 잡는 메일을 보내더니,

내 채용 프로세스를 맘대로 취소해 버린 것이다.


다운로드.jpeg 다시 봐도 킹 받게 생긴 andy


나는 우선 너무나 답답한 마음에 일전에 연락드렸던 K수석님께 카톡으로 다시 한번 여쭤보았다.

K수석님께서도 이상하다는 듯,

시스템 상의 오류일 거라면서 조금만 기다리면 다시 면접이 잡히지 않겠냐며

기다려 보라고 하셨다.


그렇게 별다른 연락이 없이 주말이 오고,

와이프와 함께 동네 산책을 하며 정말 별의별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것 같다.


"역시 면접관의 시간을 배려 안 하고 맘대로 아침 8시로 면접을 잡아서 그래"

"아마 면접 일정 잡다가 면접 탈락한 사람은 내가 최초가 아닐까?"


여러 시답잖은 농담을 하며, 헛헛한 마음을 달래 보려 애썼다.

차라리, 면접을 볼 거란 기대가 없었다면, 이 정도까지 마음이 복잡하진 않았을 텐데.

손에 닿을 뻔했던 기회가,

그것도 나 때문이 아닌, 알 수 없는 이유로 인해 갑자기 사라지다니.


나는 괜히 더 허탈한 기분을 참을 수 없었다.

그냥 한번, 지원해 볼까? 하는 마음은,

아쉬움에 아쉬움이 쌓여, 간절한 마음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고,


정말 이렇게 된 거,

떨어지더라도 인터뷰 한 번은 꼭 보고 떨어지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나도 간절해졌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1주일 후에 HR로부터 메일이 왔다.


제목 : Qualcomm

내용 : Can you send me some times PST that you are available for a video call this week?


무척이나 심플한 메일이었지만, 기뻤다.

'아... 그래도 인터뷰 일정 잡다 탈락한 유일한 사람은 아니겠구나...'

나는 언제든지 가능해요 라는 마음으로 가능한 시간을 이렇게 적어 보냈다.


- 22.03.30 (WED) 09:00 ~15:00 (PST)

- 22.03.31 (THU) 09:00 ~15:00 (PST)

- 22.04.01 (FRI) 09:00 ~15:00 (PST)


PST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면, 한국 시간 새벽 1시부터 오전 7시까지의 시간이었지만, 상관없었다.

나의 목표는 단 하나, 인터뷰를 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틀 뒤, 두 번째 메일이 왔다


제목 : can you do

내용 : 4/1 Friday 10:00 am – 11:00 am or 4/1 Friday 11:00 am – 12:00 pm PST


얘네는 왜 이렇게 메일을 대충 보낼까 생각하며, 그렇게 첫 번째 인터뷰 일정을 잡았다.

그리고 이 메일 이후로 나와 와이프는 이 HR을 캔유두로 부르기로 했다.


와이프는 당시 인터뷰로 예민했던 나를 배려해 주기 위해,

그 주 토요일에 아이들과 처가에 내려가서 몇 주간 지내다 오겠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나를 인터뷰해줄, 지금은 나의 매니저가 된 M으로부터 공식 메일을 받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인터뷰 시간은, 와이프와 아이들을 처가까지 데려다 주기로 한 그날, 토요일 오전 2시-3시였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면접 끝나고 자는 애들 데리고 바로 처가까지 가지 뭐"




우선 정확한 면접 일정이 잡히고 나서 내가 해야 했던 것은,

'어떻게든, 부족한 내 영어 실력을 보완해야 한다'라는 것이었다.

어차피 직무나 전공 관련 지식은 짧은 기간에 더 채워 넣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에,

나는 오롯이 영어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그래서 첫 번째로, 나는 자기소개를 통째로 외웠다.

그리고, 이것이 외운 것이 아닌, 그래도 어느 정도 영어 잘하는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서,

카메라를 켜고, 외운 script를 자연스럽게 말하는 연습을 수도 없이 반복했다.


어차피 나는 한국에 있고, interviewer는 미국에 있으니

그 사람이 보는 나의 모습은, 카메라에 담긴 것이 전부일 것이다.

당장은 부족하더라도, 최소한 의사소통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자.


속으로 수도 없이 되뇌며 카메라로 녹화하고, 확인하고, 표정이나 제스처를 바꿔가며 연습했다.

그렇게 수도 없이 연습한 결과,

카메라를 켠 상태에서는 영어로 단 한 문장도 입에서 떨어지지 않던 내가,

그래도 어느 정도 말을 할 수 있는 수준까지 되었다.

적어도 자기소개는 말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 면접 당일이 되었다.


나를 면접 보았던 M은, 당연한 이야기지만 전형적인 미국인 상이 었다.


나를 배려해 준 것인지,

원래 그의 말투나 영어 습관이 그랬던 것인지,

아니면 진짜 뭔가 일이 잘되려고 그랬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유난히도 그날따라 그의 영어가 잘 들렸다.

그리고 유난히도 그날따라 내 영어가 좀 더 유창했던 것 같다.


나는 무사히 버벅거리는 영어 실력으로 자기소개를 마치고 나서,

그의 여러 가지 technical 질문에 대해 알면 아는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답변을 했다.

조금은 자신감이 생겼는지,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말하는 경우에는,

"Sorry, I didn't understand what you mentioned. Could you please speak slowly again?"

이라고 되묻기도 하였다.


특히 이 면접이 기분이 좋았던 건,

내가 현업에서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여기 Qualcomm에서도 같은 곳을 바라보고 하고 있고,

이 분야에서도 매우 앞선 기술을 연구하고 있구나.

이곳에서 일하게 된다면 정말 내 career 성장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겠구나.

하는 기분이 계속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1시간이 지나고,

M은 슬슬 마무리를 하고 싶었는지 나에게 다른 질문이 없는지 물어봤다.

이미 나는 그 면접에 심취되어 있었고,

스스로도 생각 이상으로 면접을 잘 보고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물어보았다.


"이다음 process는 어떻게 진행이 되나요?"


그러자, 그는 약간 당황하는 눈빛으로,

"일단 우리 다른 candidate들도 있어서 그 candidate들도 봐야 해"

"네가 알겠지만 네가 지원한 직급이 사실 너의 경력과는 좀 gap이 있어서 그게 고민 포인트야"

"근데 네가 만약에 pass 한다면 다음에는 여러 명 과의 team interview가 있을 거야"라고 답변해 주었다.


갑자기 현실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왜 스스로 그 당시에 내가 이 면접은 합격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말을 듣자마자, 영어를 못하는 내가 느끼기에도

'이 면접 결과는 그리 좋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면접이 끝나고,

나는 잠에든 아이들을 차에 싣고 와이프와 함께 처가로 출발했다.


와이프는, 나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면접이 어땠는지 물어보았고,

나는,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졌지만, 그래도 잘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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