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으로 시작된 이직 활동
너 혹시 Qualcomm에 지원했어??????
물건을 훔치다 걸린 도둑고양이마냥,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대체 어떻게 알았을까.
와이프를 제외하고 절대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는데...
그러나 그 경위를 알려하기 전에 이미 나는 질문에 대답해야 했다.
"아.. 네네 J수석님이 알려주신 경로로 해서.. 한번 지원해 봤어요.. 오 이게 진짜 되네요"
"그래? 그럼 나에게 미리 말을 하지 그랬어, 내가 K수석님하고 먼저 연결해 줬을 텐데 말이야"
내 생각보다, J수석님께서는 적극적으로 나를 도와주려 하셨다.
"우선 내가 K수석님에게 따로 말해서, 단톡방을 만들어 볼 테니까, 한번 잘 이야기해봐!"
그렇게 생각지도 못하게 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K수석님을 소개받게 되었고,
연락처와 함께 단톡방에서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J수석님은 본인이 있으면 불편할 거라며 나가주셨다.
"지금은 이곳이 새벽이니, 이따 저녁쯤에 다시 연락드릴게요"
갑자기 벌어진 일에 나는 식은땀범벅이 되었고,
굳은 표정의 나를 본 와이프는 걱정하는 표정으로 나에게 무슨 일인지 물어보았다.
그리고 나는 대답했다.
"뭔가, 본격적으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아."
다음날 오전,
나는 J수석님과 커피를 마시면서
그분이 내가 Qualcomm에 지원한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내가 밤새 지원한 내용은, 그 팀의 Sr.Director, R에게 전달되었고,
내 resume를 본 R은 내가 삼성 출신의 한국인인 것을 보고,
같은 삼성 출신의 한국인인 K수석님에게 나를 아는지 물어본 것이다.
그리고 K수석님은 당연하게도 본인이 파트장으로 있던 그 파트의 어떤 한 engineer가 지원을 했으니,
J수석님에게 나에 대해 물어본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J수석님이 모를 수가 없는 건데,
굳이 그걸 모르게 진행하려 했던 나도 참 멍청하기 짝이 없다.
여하튼,
나는 그렇게 K수석님을 소개받고,
회사 내 아무도 모를만한 곳으로 가서, 그분과 전화 통화를 했다.
J수석님에게 들은 대로 그분은 매우 gentle했고, 동시에 professional 했다.
먼저 나에게 미국 회사로 오는 것의 장점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가장 먼저 장점은,
역시 내가 생각한 대로 career를 쌓을 수 있다는 것과,
salary cap(일정 연봉 이상은 받지 못하는 규정)이 있는 삼성과 달리,
이곳에서는 열심히 일하고 performance를 내는 만큼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나이를 먹어서도, 원한다면 실무자로서 계속 일할 수 있다는 점이 있었다.
그러고 나서, 나에 대해 여러 가지를 여쭤보셨다.
1.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2. 아직 회사를 다닌 기간이 2년 정도로 짧은데, 옮기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3. 가족들은 미국으로 이주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는 적절하게 답변드렸고, K 수석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해 주셨다.
제가 우선 인터뷰가 진행될 수 있도록, referral을 해 드릴게요.
한번 인터뷰를 보세요.
이것이 무슨 상황인가.
'한번, 경험 삼아 지원해 보지 뭐'로 시작했던 미국 이직 활동이었는데,
뭔가 실제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인터넷상에 올라온 미국 구직 활동하는 분들의 글들을 보면,
여러 기업에 수십 번 지원해서 한 두 번의 인터뷰 기회를 잡고,
그 마저도 잘 될지 안될지도 모르는 것이 미국 구직 활동으로 알고 있는데,
나는 이렇게 쉽게 인터뷰를 볼 수 있게 되다니.
인터뷰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우선 서류에서 통과했다는 이야기이니 기뻐해야 마땅할 일이었지만,
너무나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우선 지금 벌어진 일들이 진짜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것부터 해야 했다.
나는 놀라고 기쁜 마음에,
와이프에게 곧 인터뷰를 보게 될 거라고 이야기했고,
와이프는 조금 놀라는 듯했지만, 항상 그랬듯, 잘해보라고 나를 응원해 주었다.
이전과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 와이프도 정말로, 혹시 우리 가족이 미국에서 살게 되면 어떻게 살게 될까에 대해
조금은 진지하게 고민해 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랄까.
그렇게 K수석님과 이야기를 끝내고 나서,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모든 이직자가 공감하는 이야기겠지만,
이직이 실제로 결정되기 전까지는, 그 어떤 것도 내 인생에서 변화하는 것은 없다.
매일 반복되는 업무, 회의, 잡일을 마치고 퇴근.
그리고 오히려 나는 일을 더 열심히 하게 되었다.
우리 파트 내에서 내가 이직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은 아직 J수석님 한 명뿐이었지만,
여하튼 이직을 준비하는 사람이니까, 일을 대충 한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앞으로 다가올 인터뷰를 잘 준비한다는 마음으로,
내가 몸담고 있는 이 분야의 전문적 지식을 다시 한번 공부한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일을 했다.
도둑질도 한 번이 어렵지, 그다음부터는 쉽다는 말처럼,
나는 그 이후로,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해외 기업의 일자리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무조건 박사 졸업 후에 삼성 혹은 하이닉스만 취업해야 해 하고 생각했었다.
해외로 취업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내 머릿속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의사결정이었다.
내가 아는 주변의 모든 선배들이 그런 경우가 없었고,
그렇다고 내가 그런 생각을 할 만큼 영어를 잘하지도 않았으며,
그런 생각은 나에게 그저 언감생심이었다.
그런 내가, 딱히, 미국에 꼭 가야겠다!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건 아니었지만,
무려 Qualcomm의 '인터뷰'까지 잡히게 된 지금에서는 조금 더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전에 계정만 만들어 놓고 방치했던 LinkedIn의 profile update도 진행하고,
LinkedIn에 올라온 여러 구인 자료들을 보니,
Google, Apple, Microsoft, Intel, Nvidia 등 세계적인 글로벌 회사들이
나의 분야나 나의 분야와 관련된 분야에 관해 인력들을 채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Qualcomm의 인터뷰 요청 메일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주저할 것 없이 다른 회사들도 동일하게 지원해 보기 시작했다.
처음 지원은 Intel이었고, 그다음은 Nvidia였다.
그리고, 지금의 이 인터뷰 기회가 얼마나 운 좋게 나에게 찾아온 것인지를 깨닫게 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두 회사 모두, 단 하루 만에 나에게 다음과 같은 메일을 보냈기 때문이다.
This opportunity is only available in the US
매몰찬 거절이었지만, 그렇다고 딱히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아마 원래 이런 반응이 내가 예상했던 반응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내게 주어진 Qualcomm과의 interview 기회는 소중했다.
대략 1주일 후,
나는 Qualcomm으로부터 공식적인 메일을 받았다.
그리고 날아온 메일
인터뷰가 취소되어 더 이상 채용 과정을 진행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