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팀 수석님께 이직에 대해 물어보다
그래서 대체 미국회사에는 어떻게 지원해야 하는 거지?
그랬다.
이미 내 마음속에서는 미국에서 일하려 비행기까지 타려던 순간이었지만,
실제로 그때까지 내가 알고 있는 정보는,
내가 친하게 지내던 J수석님께서 알고 계시는 우리 파트의 前파트장님, K수석님이,
현재 미국 Qualcomm에서 근무하고 계시고, 그분의 team에서 새로운 인력을 뽑으려 한다.
그뿐이었다.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지원을 해야 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결국 그 J수석님께 여쭤봐야 하는 문제였다.
문제는, 껄끄러움이었다.
나는 대학원 연구실 시절부터 그분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었다.
그분의 엔지니어적인 마인드는 나로 하여금 그분과 함께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했고,
그래서 SK Hynix로부터 받고 있던 수천만 원의 장학금까지 포기하고,
삼성전자로 입사한 것도 그분, J수석님의 영향이 컸다.
물론, J수석님은 삼성에 입사할 때도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셨었다.
그렇게 오히려 내가 좋아하는 분이고, 나에게 많은 도움을 이미 주셨던 분이기에 여쭤보기가 더 불편했다.
기껏 그분과 함께 일하고 싶다고 회사까지 바꿔 놓고서,
막상 그분과 함께 일할 시기가 되자,
다른 기회가 있다며 떠나는 것 같아 왠지 모를 불편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차라리 합격하고 떠나가게 되면 모를까, 탈락하게 되면, 이게 무슨 망신일까 싶기도 했다.
앞서 말한 대로, 우리 파트의 모든 senior engineer들은 이미 연구실 선배들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숨기려 해도 결국에는 내가 이직 시도를 했다는 것을 모두가 알게 될 것이고,
그건 그것대로 매우 불편한 상황이 될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속으로 '어떻게 물어보는 게 좋을까' 고민만 하다가,
드디어 기회가 왔다.
J수석님이 복귀한 기념으로, 조촐하게 연구실 출신 사람들끼리 회사 근처에서 술 한잔 하기로 한 것이다.
'그래, 맨 정신에는 도저히 못 물어보겠으니, 술을 마시고 제정신이 아닐 때, 그때를 틈타서 물어보자!'
지금 생각해도 정말 소심 그 자체였다.
그렇게 1차, 2차가 지나고
다들 술을 마시고 제정신이 아닌 채로 있을 때,
나는 J수석님에게 슬며시 여쭤 보았다.
"수석님, 혹시 지난번에 말씀하신 거 있잖아요..."
"응? 어떤 거?"
"그.. 미국.. Qualcomm에서 인력 채용한다고 하셨던... 그거요..."
"아 그거? 너 관심 있니? 잠시만 기다려봐. 내가 메시지 전달해 줄게."
그리고서 전달해 주신 내용은,
현재 퀄컴에서 일하고 계신, K수석님이 J수석님에게 보냈던 메시지와,
Qualcomm에 지원할 수 있는 웹사이트 링크였다.
"J수석, 잘 지내지요? 이번에 우리 팀에서 다음과 같은 직무로 사람을 뽑게 되었는데, 주변에 좋은 사람 있으면 혹시 소개 좀 시켜줘요"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어떤 직무로 사람을 뽑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단순히 나 혹은 우리 파트와 관련된 어떤 일이겠거니 정도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관련 링크를 확인해 보니,
실제로 내가 지금 삼성에서 일하고 있는 바로 그 분야가 아닌가.
'전 세계에서 이 분야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
'정말 이거 내가 지원했다가 합격하는 거 아냐..? 해볼 만 한데?'
아직 지원조차 하지 않았지만, 왠지 모를 자신감과 함께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얼렁뚱땅, '어떻게 지원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알게 되었다.
사실, 합격하든 안 하든,
새로운 직장에 지원한다는 것은 엄청나게 큰 일이다.
심지어 이곳은 미국이기 때문에,
만에 하나 합격하게 된다면 현재의 모든 삶을 포기하고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어떻게 그렇게 쉽게 결정했나 싶으면서도,
나는 그저 미국에서 일하는 것, 그 설레는 마음 하나였다.
'일단 지원해 보자!'
'합격하면 그때 일은 그때 생각해 보는 거지 뭐'
그러나 지원하는 것부터 간단한 듯 간단하지 않았다.
예전 박사시절 때, 삼성에 지원할 때에는 삼성에서 요구하는 정확한 양식의 문서가 존재했고,
나는 그 양식에 맞춰 나의 연구 주제와 논문, 특허, 수행 과제들을 적기만 하면 되었다.
형식상 자기소개서 같은 것이 있었지만, 크게 어려울 것은 없었다.
그러나 Qualcomm에 지원하는 것은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우선 Workday라는 사이트에서 나에 대한 정보를 적어내야 했다.
나는 미국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의 신분 상황에 대한 정보부터,
정해진 양식 없는 resume를 나 스스로 채워 넣어야 했다.
인터넷을 검색해 가며, 나는 우선 스스로 resume를 작성해 보았다.
2장 이내의, 짧지만 보여주고 싶은 내용들로 말이다.
그렇게 J수석님으로부터 링크를 전달받은 후, 다다음날인 일요일 저녁,
나는 정말 뭐에 홀린 듯이 해당 사이트에 접속해서,
Resume 작성을 완료하고, 모르는 단어와 문장들은 번역기를 돌려가며 지원을 완료했다.
지원하고 나니, 지원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메일 한통이 도착했다.
문득, 왠지 모를 달콤한 꿈에서 깬 것만 같았다.
당연하게도 지원을 완료했지만,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뿐이었다.
다만 지원한 것에 대해서는 J수석님께 비밀로 할 생각이었다.
링크를 전달받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지원하겠다고 적극적으로 말씀드린 것도 아니었고,
무엇보다도 앞서 말한 이유들로, 지원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기를 바랐다.
이때 당시에도,
나는 반드시 이곳에 합격해서, 미국에서 반드시 일하고 말테야!라는 마음보다는,
이런 갑작스러운 기회가 나에게 주어졌으니, 한번 도전해 볼까? 하하
정도의.. 가벼운 마음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던 것 같다.
여하튼, 그렇게 작성을 완료하고 다음날,
몇 시간밖에 못 자 피곤했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회사에 출근했고, 회사 사람들을 만났다.
아침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일상 이야기를 하고, 다시 업무에 집중하는,
새벽 3시까지 미국 이직 서류를 작성할 정도로 열의를 보이던 내 모습은 어디 있냐는 듯이,
여느 다른 날과 다르지 않은 하루를 보내고서, 그렇게 퇴근했다.
그렇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하루가 지나가는구나 하며
와이프가 차려준 저녁을 먹기 위해, 식탁에 앉았는데,
갑자기 핸드폰 진동이 울리는 것이 아닌가.
J수석님이었다.
너 혹시 Qualcomm에 지원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