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다른 candidate들에 대한 인터뷰가 진행 중이야.
이 인터뷰가 끝나고 나서 최종 결과를 알려줄게
아니 대체 이게 무슨 말이란 말인가.
분명히 K수석님께서도 최종 합격 방향으로 진행한다고 하셨고,
HR 당신도 면접 통과한 것 축하한다고 해놓고서!
기껏 열심히 연봉 협상을 준비했던 내가 한순간에 바보 같아지는 순간이었다.
그랬다.
나는 아직 확실하게 100% 결정된 것이 아니었다.
인터넷상의 많은 미국 기업 구직 글에도 이런 내용이 있었다.
"오퍼를 확실하게 받을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닙니다. 방심하지 마세요."
"심지어 오퍼를 받고도 회사 사정으로 취소되는 경우가 있어요. 미국이라는 나라가 이렇더라고요."
정말 머리가 어지러웠다.
심지어 이 기간 동안,
온 가족이 코로나로 고생을 하고 있던 참이어서 더욱더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말이다.
그래서 이직 활동은 힘든 것 같다.
이미 어느 정도 결정 난 단계까지 오면, 더더욱이 그렇다.
허파에 바람난 것 마냥 현재 업무를 집중하기도 힘들고,
그렇다고 실제로 퇴사를 해서 새로운 회사로 입사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최종 결정 날 때까지 안심할 수가 없다.
여하튼 그럴수록 나는 지금 맡은 일을 더 열심히 잘하려고 노력했다.
곧 죽어도
"쟤 일 대충대충 하더니 그게 이직하려고 그런 거구나?"
하는 소리 같은 걸 듣고 싶지 않았다.
특히 나를 강력하게 믿고 추천해 주신 J수석님이 옆에 계셨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그 후로 HR은 나를 더 애타게 했다.
한동안 연락이 오지 않아, follow-up 메일을 보내면,
어김없이
"아직 다른 candidate들이 인터뷰 중이니 조금만 더 시간을 달라"는 답변뿐이었다.
나는 밤마다 미국 회사 생활과 연봉 협상 관련 영상, 그리고 자다가 깨서 gmail을 확인하는 등
하루하루 초조한 생활을 이어갔다.
이 기간 동안 오던 스팸메일은 왜 그리도 짜증이 나던지.
그 기간 동안에도 나는 계속해서 업무를 해 나갔고,
나의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회사는 나에게 이런저런 추가적인 업무들을 주었다.
때로는 하기 싫은 잡일들도 많았지만, 그래도 해야 했다.
아직 나는 삼성 소속이고,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대략 40일 정도의 시간이 속절없이 흐르고,
드디어 HR로부터 연락이 왔다.
다시 한번 meeting을 하자는 내용이었다.
다시 만난 HR은,
그렇게나 나를 기다리게 했던 것에 대해 미안한 감정이라도 있는 듯,
멋쩍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드디어 최종 결정을 알리게 되어서 기뻐. 우리는 너에게 offer를 줄 예정이야."
마침내 확정받은 "최종 합격"이었다.
하지만 완전히 마무리된 것은 아니었다. 아니,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나는 나의 benefit을 최대로 요구하기 위해 이 HR과 협상을 시작해야 했던 것이다.
지난번 논의에서 말한 대로, VISA와 Green card를 지원받기로 하였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고,
나의 salary의 예상치에 대해 물어보았다.
내가 예상한 근접지 와 비슷하지 않을 경우, 나름대로 준비한 논리를 가지고 이야기할 심산이었다.
그러나 그는 기계처럼 "아직 너의 직급이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알 수 없다"는 답변만 반복했다.
그리고 협상은 전혀, 내가 예상하지 않은 방향대로 흘러갔다.
그 이후로도 몇 번의 미팅과 메일이 오갔지만,
그는 절대로 나에게 연봉에 대한 협상을 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메일로 물어봐도, 답변하지 않았고,
입사 가능 일자 같은 다른 항목들만 체크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갑자기 날아온 메일 한 통.
오퍼 메일이었다.
기분이 분명 좋아야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 이 공식 오퍼 메일이 오기 전에,
HR과 salary에 대한 치열한 verbal negotiation을 하는 것이 기본 과정이라고 알고 있었고,
나름대로 준비도 했었는데, 그런 것들은 모두 무시된 채,
"내가 정했으니, 너는 수락해" 하는 식의 통보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base salary도 내가 예상한 수준보다 한참 낮은 수준의 salary였다.
지난번 levels.fyi를 참고하여 확인했던 수준에서 상당히 보수적으로 생각하고 예상했음에도,
그 예상 수준 보다도 낮았다.
오퍼레터를 받으면 너무나 기분이 좋을 줄 알았는데,
물론 기분이 너무나도 좋았지만, 알 수 없는 찝찝함이 계속 남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짜고짜 HR에 메일을 보냈다.
"네가 신경 써줘서 나 Offer letter를 받았어. 고마워. 그런데 몇 가지 질문이 있는데,
우리 잠깐 call 약속 잡을 수 있을까?
의외로 그는 흔쾌히 수락했고,
다시 만난 call에서 나는 몇 가지 기본적인 것들을 물어본 후에,
최대한 정중하게, 하지만 할 말은 해야 하겠다는 어투로 다음과 같이 물어보았다.
"내가 알기로, 보통 공식적인 오퍼레터를 받기 전에,
상호 간에 verbal negotiation을 통해서 salary를 정하는 걸로 알고 있어.
그런데 나는 이 과정이 없이 오퍼레터를 받은 것 같은데, 혹시 그 이유를 알 수 있을까?"
약간 당황한 듯한 그는,
그것이 자신이 줄 수 있는 최대치였기 때문에, 네가 만족할 줄 알았다면서,
그럼 혹시 원하는 수치를 말해줄 수 있는지에 대해 물어봤다.
만약 내가 조금 더 당당하고, 자신감 넘쳤다면, 내가 예상했던 수치만큼 달라고 강력하게 이야기했겠지만,
막상 그런 협상 과정이 다가오자, 한없이 자신감이 사라졌고,
결국 준비했던 수치보다 훨씬 더 보수적으로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는 흔쾌히 "알겠어!, hiring manager에게 물어볼게!" 하고는 대화를 종료했다.
그렇게 휘둘리듯 나의 첫 협상이 끝이 났다.
며칠 후, 결과적으로 내가 요구했던 그 수치보다도 조금 더 낮은,
그렇지만 기존에 왔던 수치보다는 높은 수준으로 카운터 오퍼가 왔고,
나는 더 이상의 협상은 힘들 것으로 생각하고, 그 오퍼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뭔가 조금은 어설펐지만, 나는 처음으로 미국 회사로부터 오퍼레터를 받았다.
오퍼레터 받은 날, 와이프와 와인 한잔 했다. 키위와 함께.
나는 공식 오퍼레터를 받은 그다음 날, 출근하여 H 파트장님께 점심을 같이 먹자고 요청드렸다.
약간 당황하셨지만, 흔쾌히 수락해 주신 파트장님은,
점심을 먹으러 나가면서 이미 눈치챘다는 듯, 먼저 물어보셨다.
"담낭이가 그냥 점심을 먹자고 하진 않았을 테고.... 분명 무슨 일이 있는 걸 텐데...
어디야?
하이닉스는 아닐 테고, 교수임용이야?"
"아니요, 저 Qualcomm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Qualcomm? 한국? 미국?"
"미국으로 가게 될 것 같습니다."
파트장님은 약간 놀라는 눈치셨다. 아예 상상도 못 했다는 듯한 반응.
반대로 말하면, J수석님은 정말로 이 긴 기간 동안 그 누구에게도 내 얘기를 하지 않으셨던 것이다.
점심을 먹으며 H파트장님은, 나를 진심으로 축하해 주셨고, 또 아쉬워해 주셨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제일 잘 되어서 간 케이스인 것 같아. 더 많이 배우고 성장하도록 해"
그 누가 자신을 떠나겠다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해줄 수 있을까.
고맙고도, 감사했다.
파트장님을 시작으로, 파트 내 senior 분들, 그리고 그룹장님, 팀장님까지 모든 분들에게 소식을 전했고,
정말 감사했던 점은,
파트장님을 비롯해서, 그룹장님, 팀장님 모두 내가 떠나는 것에 대해
진심 어린 마음으로 축복해 주셨다는 점이다.
그렇게 나는 공식적으로 2년 6개월 만에 삼성전자를 퇴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땐 알지 못했다.
지금부터가, 진짜 진정한 고생길이라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