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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1 - 미국 회사 면접 후일담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르기에 오히려 더 재미있는 인생

by 담낭이

Qualcomm 입사 이후,

나는 여러 회사의 공식 문서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이 생겼고,

그 중 내가 매주 공을 들이며 작성하는 문서는 바로 팀 내 'weekly status' 문서였다.


그리고 업무 이해를 위해 과거 문서들을 보던 와중에,

나는 확인할 수 있었다.


내 면접에 대한 weekly status update들을 말이다.


면접 기간 내내 왜 그런 일들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사실에 대해,

weekly status update에 내 현재 매니저 M이 적어놓은 메모들을 통해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었다.


'미국으로 이직하지 못할 수도 있었네'


K수석님으로 부터 받은 메세지 때문에,

나는 당연히 2차 면접 이후 합격했다고 생각했지만,

나의 완벽한 착각이었다.


그 당시 나는 그저 2차 면접까지 통과한 것이었고,

최종 결정 table에 다른 candidate 들과 함께 list up 되어있을 뿐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나중에 K수석님에게,

내 면접 이후에도 나보다 더 경력 많고, 실력 있는 다른 candidate들이 있었다고 전해 들었다.


다만,

회사 입장에서는 그들이 너무 높은 몸값을 불렀기 때문에, 그들과의 협상을 결렬했고,

상대적으로 경력이 적지만 싼 몸값을 불러도 "아이고 감사합니다" 했던 내가

최종적으로 입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마 그들의 임금 협상이 잘 해결 되었다면, 나는 아마 계속해서 한국에 남아있었을 지도 모른다.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수긍하기로 했다.


나는 경력이 아직 짧고, 배워야 할 것이 많은 그저 'Senior engineer' 였기 때문에,

그리고 나의 입장에서는,

미국에서 일할 수 있는 권리 (비자와 영주권)를 지원 받는 다는 것만 해도

커다란 benefit 이었기 때문에,


나의 채용 협상 결과는, 결국 상호가 만족하는 결과였던 것이다.




이직 후,

몇 개월 동안 한국 퀄컴 지사에서 근무하며, 미국 이주로의 비자 준비를 마친 다음에서야

나는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도착한 다음 날,

나는 가장 먼저 K수석님을 만나게 되었다.


전화로만, 그리고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으로만 뵙던 분을 드디어 실제로 본 것이다.


K수석님은

J수석님의 말처럼 정말 다정하고 친절하신 분이었다.

처음 이주해 온 내가 필요할 것들이나, 미국 회사에서의 주의해야 할 점들, 마음가짐 등

좋은 이야기를 많이 이야기 해 주셨다.


특히, 내 면접 이후 후일담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셨는데,

그 중 가장 재미있던 부분은 바로 우리 팀의 보스, Sr.Director인 R의 나에 대한 평가였다.


K수석님에 따르면,

우선 나에 대한 R의 첫 인상이 매우 좋았다고 했는데,

R은 나의 이력서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한국에서 연세대학교까지 나왔으면 smart한 친구 아닌가? 그리고 삼성 출신이고.

면접 한번 보는게 좋겠는데?"


R은 일본계 미국인으로, asian이긴 하지만 완전 미국인이나 다름없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연세대학교에 대해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가장 신기했다.

학부 입학 때 잠깐 생기고 어느 샌가 부터 사라졌던

학벌에 대한 자부심 비슷한 감정이 스멀스멀 다시 기어 나올 때 쯤, K 수석님은 이렇게도 말씀해 주셨다.


"어차피 여긴 미국이고, 학벌, 경력 연차 다 필요 없어요 이제부터는.

오직 Performance. 그거 하나만 내면 되요."


그랬다.

이 곳은 오직 실적 하나로만 평가받는 미국인 것이다.


그제서야 정말로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인 것이다.




미국에서 몇 개월간 근무 후에야, 나는 내 매니저 M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정확한 이유는 듣지 못했지만,

현재 내 매니저 M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Qualcomm 본사인 San Diego가 아닌, Portland에서 근무하고 있고,

분기 별로, San Diego에 방문하여 팀원들을 만나고, 자신의 매니저를 만나곤 했다.


첫 인터뷰, 그리고 입사 첫날 video 미팅을 한 것 이후로,

실제로 보는 그는, 생각한 것 보다 훨씬 더 미국인 같았고 젠틀했다.


그가 도착한 첫 날, 그와 함께 점심을 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고,

나는 자연스레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꺼냈다.


"M, 이 말을 만나면 꼭 하고 싶었어.

나는 이 회사에 입사하게 되어서 매우 영광이야.

많이 배울 수 있고, 내 커리어에 반드시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을거라 생각해"


그리고, 그는 나에게 뜻밖의 말을 해주었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담낭.

내 생각에 너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그런 너의 열정 때문이라고 생각해.

나나 R 모두, 네가 매우 업무에 열정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

R도 너를 채용할 때 그 점을 가장 크게 장점으로 얘기했었어"


대체 어떤 부분에서 그렇게 느꼈는지 차마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아마 M의 겉치레 식 이야기 였을 수도 있고,


아니면, R이 나와의 면접 당시에,

"우리 팀은 팀 특성 상 저녁 9시 이후에도 미팅이 있을 수 있어, 괜찮겠어?" 라는 질문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럼, 시간은 나에게 어떤 문제도 되지 않아"

라고 답했던 내 태도가 그의 마음에 들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여하튼 그런 이야기를 전해 들으니 기분이 좋았다.


물론 매주 2-3일은 저녁 10, 11시에 끝나는 미팅은 아직도 적응하기 힘들지만 말이다.




어쩌다 보니,

Qualcomm에 입사한지 벌써 1년이 지났다.


문득 정신없이 미국에서 일하다 보니,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고,

특히 인생 처음으로 경험했던 미국 이직 과정은 나에게 정말 인생의 다시 없을 소중한 경험이었다.


2년 6개월 동안 삼성에서 근무할 당시에는, 나는 약간의 지루함과 좌절감 속에서 살고 있었다.

내가 하는 일이 가끔은 너무 하찮아 보이고, 쓸모 없어 보였지만,

그렇다고 이 상황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하지 못했다.

삼성 내 다른 팀으로 보직을 바꿀 생각도 몇 번 했었지만,

그것이 완벽한 해답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특히나, 내가 미국에서 일하게 될 거라는 생각은 그 2년이란 시간 동안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인생에서 또 어떤 일들이 나를 힘들게 하거나, 설레게 할 지는 모르지만,

이번 미국 이직 경험 후에 내가 늘 내 스스로에게 해주는 이야기가 있다.


이 말이,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지금 인생이 답답하고, 변하지 않을 것만 같더라도, 변화는 항상 작고 크게 찾아오는 것 같아.

때로는 그걸 인식하지 못하고 넘어가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게 내 인생 전체를 바꾸기도 해.

인생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 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그래서 인생은 너무나도 재미있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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