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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스스로 합격시킨 미국 이직

이것이 미국식 채용 방식인 건가

by 담낭이
너, 정말로 미국 갈 거야?


갑작스러운 J수석님의 질문에, 나는 당황해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네? 무슨.."

"방금 K수석한테 연락 왔어. 2차 인터뷰도 봤나 보더라?"


그랬다.

사실 1차 인터뷰 이후, 2차 인터뷰까지 잡혔다는 이야기를 J수석님에게 할 수 없었다.

2차 인터뷰가 합격을 의미한 게 아니기도 했고,

2차 인터뷰 결과가 나온 후에 J수석님께 따로 말씀드릴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네.. 운이 좋게 2차 인터뷰도 봤어요, 오늘 새벽이 마지막 인터뷰였네요"

"그래서 그렇게 피곤해 보였구먼. 여하튼, 너 정말로 미국 갈 거야?"

"아직 2차 인터뷰 결과가 안 나와서... 나와 봐야 알지 않을까요?"

"너, 내가 OK 해주면 합격이야. 그래서 물어보는 거야. 정말로 미국 가고 싶은 건지."


???


당황하는 나에게, J수석님은 차분히 상황을 설명해 주셨다.


나의 모든 2차 인터뷰가 끝나고, 그쪽 팀에서 round table이 열렸다고 한다.

이 친구를 뽑으면 좋을지 아닐지.


여러 의견들이 팽팽한 가운데, 대략 점수는 6:4 정도로 뽑자는 의견이었고,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역시, 삼성에서의 2년 남짓한 짧은 경력이었다.

뽑아놨는데 1,2년 만에 또 도망가버리면 Qualcomm 입장에서도 여러모로 손해가 아닌가.


그래서 Referral을 자처하신 K수석님께서 J수석님에게 다시 나에 대해 물어보신 것이다.

나라는 사람이 인간적으로 어떠한지, 정말 믿고 뽑아도 문제없이 잘할 친구인지.

K수석님은 J수석님을 완벽히 신뢰하고 있었기 때문에,

J수석님의 나에 대한 평가를 오롯이 신뢰하여 채용 결정을 내리겠다고 말씀하신 모양이었다.


"나야 뭐, 너 항상 좋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네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좋게 말해줄 수 있어.

너 잘하잖아.

그래서 물어보는 거야, 너의 의중을. 정말로 미국에 가서 일하고 싶은 건지"


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결국 돌아 돌아 내 채용을 내가 결정하는 상황이라니.

잠도 제대로 못 잤던 탓에, 이게 정말 꿈인가 싶었다.

여하튼, 나는 이미 미국 이직을 시작했고, 갑자기 그것이 나의 목표가 되었으며,

이왕 이렇게 된 것 끝까지 진행해 보고 싶은 마음이 강했었기에,


네, 저는 미국에 가고 싶습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그래, 알겠어. 내가 잘 정리해서 K수석에게 따로 말할게. 막상 네가 간다고 하니 많이 아쉬운걸..?"

"가기 전까지, 나한테 스파르타 식으로 많이 배워가지고 가! 가서 내 욕먹이지 말고!"


대학원에서 만나서, 삼성 입사 때도 나에게 큰 도움을 주셨던 J수석님.

어쩌면 내가 이직한다는 사실이 그분에게는 좋지 않은 결과일 수도 있었음에도,

나의 앞날을 위해 많은 조언과 실질적 도움을 주신 것이다.


정말로 감사한 분이었다.




J 수석님과의 대화 이후, 다음 날, K 수석님으로부터도 연락이 왔다.


"면접 보시느라 수고하셨어요.


Table 회의에서는 본인을 채용할지 어떨지 약간의 고민이 좀 있었는데, J수석이 많이 도움이 되었어요.

인터뷰 내용에서는, resume에 적힌 내용이 조금 과장되었다는 지적도 있었으니,

다음에는 조금 더 솔직하게 자기 skillset을 적는 것도 좋을 거예요.


그리고 어쨌든, 저희 대장 R이 본인을 되게 좋게 본 것 같아요.

R에게 채용하는 방향으로 보고할 예정이니, 그렇게 아시고 남은 일정 잘 준비하세요."


이제 더 이상 가능성은 50%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가능성을 98%로 바꾸었다.

혹시 모를 자연재해나, 천재지변에 의한 2%의 가능성이 아닌 이상, 나는 이제 미국에 가게 되는 것이다.


나를 배려하기 위해 아직도 처가에 아이들과 머물러 있는 와이프에게도 이 소식을 전했다.


처음 내가 미국 이직에 대해 말했을 때,

"그래, 한번 해봐!" 하고 말하던 자신감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와이프는, 이제 정말로 진지해지기 시작했다.

미국에 가면 필요한 생활비부터, 아이들 어린이집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등


부모님에게도, 그리고 장인장모님에게도 이제 이사실을 알려야 했다.


아버지는 이미 그렇게 될 것이라 예상하셨다는 듯 짧게 이야기하셨다.

"미국 가서도, 아이들하고 영상 통화는 자주 하자."




그날 이후, 나의 모든 것은 바뀌기 시작했다.


우선 나의 가장 큰 관심사는, '어떻게 offer가 올 것인가'였다.

앞에서도 얘기했듯,

나에게 지금 맞는 직급은 senior engineer이지만,

현재 내가 지원한 job position은 그보다 두 단계 높은 senior staff engineer였다.

그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나에게 그렇게 높은 직급을 줄 리는 없을 테니,

senior engineer에 맞는 offer 내용이 올 것이라 예상했다.


그렇다면 그다음으로는, 그야말로 현실적으로

senior engineer의 월급과 혜택은 어느 정도인지,

그 수준으로 우리 4인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지를 알아봐야 했다.


바꿔 말하면,

나는 이런 기본적인 것들을 생각도 안 한 채로 2차 면접까지 본 셈이었다.

그야말로 정말, 아무런 준비도 생각도 없이 진행된 면접이었는데, 이런 결과를 받게 된 것이다.


사실 박사 졸업 후 삼성전자에 입사할 때는, 이런 offer에 대해 단 한 번도 고민한 적이 없었다.

나와 같은 fresh 박사들은 모두 일정한 기준에 맞춰 연봉과 직급이 정해져 있었고,

나는 그저 그것을 따르면 되는 일이었다.

거기에 '협상'이라는 단어는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짧은 기간이지만 나는 이제 2년의 현업 경험을 가지고 있는 엔지니어이고,

지금까지 받아온 연봉을 가지고 나의 연봉 협상을 할 수 있는 능력과 권한이 생겼다.

특히, 이런 치열한 연봉 협상이 당연한 미국 기업의 경우, 그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우선 나는 미국 기업들의 평균적인 salary를 알 수 있다는, levels.fyi 사이트에서

Qualcomm의 Senior hardware engineer의 평균 연봉을 알아보았다.


Screenshot 2023-09-21 123952.png 얼핏 보면 많아 보이는 연봉이지만... 과연?


그리고, 인터넷에서 본 대로, 앞으로 일어나게 될 offer에 관한 협상 절차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너무 과해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너무 소심해서도 안 되는

마치 남녀 간의 밀당 같은 것이 바로 이 offer negotiation이라고 했다.


나는 내가 생각한 대략의 base salary와 stock들에 대해 정리하였고,

또 필요시 나의 기대 연봉에 대한 증거 자료로 내세울 2021년의 근로소득 원천 징수액 자료도 따로 준비했다.


두 번째로는,

실제로 예상치의 연봉으로 우리가 미국에서 생활할 수 있을 지에 대해 생활비를 계산해 보았다.

얼핏 듣던 대로, San Diego의 생활비는 어마무시했다.

기본 렌트비가 3000불 이상이 소요되고, 아이들 교육비로 얼마가 소요되는 등..


예상치로 아무리 계산을 해봐도,

처음 몇 년, 특히 아이들이 공립교육을 받게 되기 전 2년 동안은 무조건 적자로 살아야 한다는 결론이었다.


와이프는 이에 대해 (이제야) 심각하게 고민했지만,

이미 마음속에서 미국 근무를 하고 있던 나는 와이프를 강력하게 설득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아이들 교육을 위해 1-2년간 자기 돈을 써가면서 미국 유학을 가기도 하잖아.

처음 2년간은 조금 우리가 힘들 수도 있지만,

내가 열심히 해서 내 몸값을 키우고, 아이들도 공립교육을 받게 되면, 우리 살림살이가 더 나아질 거야.

그 2년 동안, 여보가 힘들지 않도록 내가 최선을 다할게. 금전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더는 걱정하지 마."


아무런 근거도 없는 자신감이었지만, 어쨌든 나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어떤 조건으로 오든, 그렇게 나쁘지 않은 조건이고,

어느 정도 감내할 수만 있다면 미국으로 꼭 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나의 단호한 말에, 와이프도 더는 생활비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았고,

나 역시, 최대한 우리 살림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연봉 협상을 어떻게 할 것인지 틈날 때마다 공부했다.




일주일 정도 지났을까. 예상한 대로, HR에게서 연락이 왔다.

어차피 다 알고 있는 수순이었기에 놀랍지 않았다.

어떻게 연봉 협상을 진행해야 할지에 대한 걱정과, 설렘이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HR과 미팅 날.

우선 HR은 나에게 팀 인터뷰를 통과한 것을 축하한다고 했다.

그리고 궁금한 점이 있는지를 물어보았다.


나는 궁금했던 점에 대해 질문하였다.


Q. 나의 비자 문제와 영주권 문제는 회사에서 전부 지원해 주는 것이 맞는가?

A. 그렇다. 전부 지원 가능하다.


Q. 내가 지원한 직급은 senior staff eng인데, 실제로 내 경력에 비해서는 너무 높은 직급인 것 같다.

혹시 내가 어떤 직급으로 받게 될지 알고 있는가?

A. 잘 모르고, hiring manager인 M에게 물어보고 알려주겠다.


Q. 내가 대략적으로 받게 될 salary에 대해 알 수 있을까?

A. 직급이 정해지는 대로 알려주겠다.


크게 별 소득이 없는 대화였다.


HR은 나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모두 한 후, 갑자기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최종 합격 했다고 믿고 있었던 나에게는 매우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현재 다른 candidate들에 대한 인터뷰가 진행 중이야.
이 인터뷰가 끝나고 나서 최종 결과를 알려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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