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담온 Dec 05. 2020

아스트럴계 즐기기

책 소개 [시크릿을 깨닫다]

 다채로운 감정, 다채로운 볼거리가 있는 아스트럴계.

 물질계이고, 저 진동수 때문에 감정의 진폭은 큰 세계이지만,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정, 아름다움들이 있다. 아스트럴계 중 지구는 특히 고통이 심한 세계라고 하지만, 풍부한 감정 또한 최고조로 느낄 수 있다. 애초에 감정 자체가 아스트럴계에 속한다. 긍정적인 감정만 살펴보자면, 기쁨, 행복, 자부심 등 강렬한 감정부터, 평온함, 풍요로움, 은은한 행복감 등의 안정적인 감정까지 매우 다채롭다.

  그럼 모두가 느끼고 싶은 감정인 풍요로움이 느껴지는 방식은 무엇일까? 풍요로운 감정을 포함하여 모든 감정은 홀로 존재하기 때문에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인식하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존재 홀로는 존재함 자체를 느낄 수 없다. 홀로 존재하는 상태는 아무런 대상을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조차 인지하지 못한다. 신은 존재함을 느끼기 위해 대상과 자신을 분리시켰고, 대상을 인식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느꼈다. 즉, 존재는 대상과 하나였지만 대상과의 분리를 통해 본인이 존재함을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대상과 나는 애초에 하나였지만 어느 시점에서 분리된 것이기 때문에, 본인의 세계에서 나타나는 모든 대상은 '나'이고, 풍요로움을 느끼는 것은 대상에서 본인의 내면에 있는 아름다움을 발견한 것이다. 저 진동수인 물질계이기 때문에 물질(사람 포함) 대상으로부터 본질을 발견하여 아름다움을 느끼고, 저 진동수의 감정 세계이기 때문에, 다채로운 감정을 느끼며 감동을 받는다. 


  감정 중에 고차원의 감정이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고차원의 감정은 영혼(내면)의 아름다움을 인식할 때 느끼게 되는 '숭고한 감정'인 것 같다. 아름다움을 느낄 때 받게 되는 감정이 이에 속한다. 사실 느끼는 모든 감정이 내면과 연결되어 있지만 상위 차원의 내면과 연결된 감정은 영혼의 본래의 모습인 신성함과 아름다움을 느낄 때이다. 

  본인을 잘 관찰해보면 대상을 인식하며 보고 있는 존재, '주시자'가 존재함을 알게 된다. 모든 것을 지켜보며 인식하고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주시자이다. 사실 주시자도 완벽한 본인이 아니며, 근원의 본인은 자신과 대상을 인식조차 할 수 없는, 우리가 꿈도 안 꾸는 잠을 잘 때의 상태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 주시자가 경험하는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며, 우리는 좋은 감정을 경험하길 원한다.

  세상의 모든 것은 인식의 산물이며, 인식되는 모든 것은 스크린에 비친 영상, 즉, 환영이다. 상상도 주시자의 스크린에 비쳐 인지되므로 현실과 상상 모두 같은 환영이다. 다만 다른 점은 '현실'은 내가 나라고 규정하는 존재가 오감을 통해 느끼는 영상이 재생된다는 것이다. 오감으로 느낄 수 있도록 재생된 것만 다르고, 이 또한 가상의 많은 가능태 중에 한 트랙이 실현된 것이다. 상상할 수 있는 그 모든 것은 이미 존재한다. 그것을 현실 트랙으로 가져오는 법.

그 길을 카밀로님의 저서 '시크릿을 깨닫다'에서 만난다.


저서 [시크릿을 깨닫다]


매거진의 이전글 세가지 힐링의 방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