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역사 단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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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형태들로 빠르게 변화하는 서울,
그 속에 수백 년동안 이어지는 역사의 시간이 흐르는 장소가 있다.
서울의 심장부, 종로 한복판에 자리한 종묘가 바로 그런 곳이다.
종묘는 고요하지만, 지난 격변의 시간을 견뎌낸 역사의 힘이 깃든 웅장함이 느껴진다.
조선 왕조의 의례가 이어지던 정전의 지붕선은 수백 년의 시간을 견디며 도시에 남겨진 기억의 궤적처럼 보인다.
종묘는 단순한 사당이 아니다.
조선 왕조의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신, 유교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제례 공간이자
‘궁궐-종묘-사직’으로 이어지는 국가 질서의 중심이었다.
동아시아 여러 왕조에도 종묘가 있었지만,
오늘날 수도 한복판에 500년의 원형이 거의 변함없이 남아 있는 사례는 세계적으로 드물다.
바로 이 독보적인 역사적 연속성이 종묘를 우리나라 최초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만들었다.
최근까지도 큰 화제가 되고 있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혼문(魂門)’을 영혼의 힘이 깨어나는 문으로 묘사한다.
그 상징을 빌리자면, 종묘는 대한민국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진짜 혼문이다.
그런 역사의 혼이 깃든 종묘를
부동산 개발의 계산식으로 치환하려는 시도는,
서울시가 세계유산을 지닌 공간으로서 반드시 갖춰야 할
품격과 상식, 그리고 공적 책임마저 훼손하는 일이다.
그 모든 것을 훼손하고, 과연 무엇을 얻겠다는 것인가.
서울시는 세운4구역의 높이를 71.9m에서 145m로 끌어올리고,
용적률을 1008%까지 허용하는 계획을 고시했다.
종묘 정면을 가로지르는 초고층 개발이다.
서울시장은 이를 ‘녹지축 복원’과 ‘시민 삶의 질’을 위한 혁신이라고 말하며 직접 영상을 찍어 설명하기도 했다.
마치 대규모 개발이 시민에게 줄 혜택을 의심 없이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다는 듯한 일방적 제스처였다.
그러나 종묘를 가로막는 것은 단순한 도시 개발 계획이 아니다.
서울시는 오랜 역사를 존중하며 지켜나갈 것인지,
아니면 일제강점기 조선의 기운을 꺾기 위해 경복궁 일부를 허물고
그 앞에 조선총독부를 세웠던 그 시대의 폭력적 도시 전략을
또다시 반복할 것인지, 지금 그 갈림길에 서 있다.
이는 단순히 한 구역의 재개발을 넘어,
우리가 앞으로 이러한 역사적 모순과 폐륜적 시도에
어떻게 응답할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다.
1995년 종묘가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을 때,
유네스코는 한 가지 조건을 분명히 명시했다.
“종묘의 경관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근 지역에서의 고층 개발은 허용하지 말 것.”
세계유산이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그 주변의 시야(viewshed), 공간적 맥락, 성역성을 포함한 종합적 가치이기 때문이다.
유네스코는 최근 종묘 앞 초고층 재개발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은 우려를 표했다.
그리고 정부에 공식적으로 세계유산영향평가(HIA)를 실시할 것을 요구했다.
영향평가는 개발을 금지하는 절차가 아니다.
학술적으로는 세계유산 주변의 시각 경관 분석, 조망선 변화, 그림자 영향, 역사적 공간 구조의 훼손 가능성까지 검토하여
보존과 개발의 균형점을 찾는 국제적 표준 방법론이다.
그 과정에서 설계가 조정되기도 하고, 높이가 조절되기도 하고, 혹은 대체 방안이 도출되기도 한다.
그러나 서울시는 이 절차를 “법적 근거가 없고 4년이나 지연되는 과도한 요구”라고 말하며 사실상 거부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세계유산을 가진 도시가 수행해야 할 최소한의 연구 과정조차 “시간 낭비”라고 주장하는 모습은
오히려 서울의 국제적 신뢰를 흔들 수 있는 위험한 태도다.
세계유산은 직접적인 파괴가 아니라 경관 훼손만으로도 박탈된다.
세계유산 주변의 경관을 훼손하는 개발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는
이미 여러 나라의 사례가 보여주었다.
독일 '드레스덴 엘베 계곡'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독일은 유산 자체를 직접적으로 파괴한 것이 아니었다.
그 주변 조망을 가로지르는 단 하나의 4차선 교량이 들어섰을 뿐이다.
그러나 유네스코는 그 교량이 역사경관의 연속성을 훼손했다는 이유로
2009년 세계유산 지위를 박탈했다.
그리고 가장 최근 사례로, 영국 '리버풀' 역시 대규모 항만 재개발로 들어선 고층 건물들은 수백 년을 이어온 역사적 진정성을 흐렸다는 이유로 2021년 세계유산에서 제외됐다.
이 기준은 현재 서울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종묘는 건축물 몇 채가 아니라,
500년의 공간 구조와 제례 전통이 지금 현재도 살아 있는 유산이다.
그 주변 경관이 훼손되는 순간,
그 가치는 국제사회에서 더 이상 동일하게 인정되지 않는다.
문제의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 서울시는 ‘삶의 질’이라는 개발 담론 뒤에서
세계유산을 가진 도시가 지켜야 할 품격과 자격의 기준선 자체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
서울시가 지닌 고유의 역사적 책임을 무력화 시키고, 그 역사의 후손으로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보존 의무조차도 저버리겠다는 태도이다.
세계유산을 지닌 도시의 삶의 질이란 결국 경관, 공공성, 역사적 연속성, 도시의 품위가 함께 포함된 개념이다.
그런데 종묘 맞은편에 145m의 건물을 세우는 것이 어떻게 그 품위를 채워준다는 말인가.
더욱이 이 계획은 시민 전체의 요구가 아니라,
세운4구역 토지 소유주들, 특히 전체 민간 토지 약 30%를 가진 한 건설사를 포함한 소수의 요구로부터 시작됐다.
이들이 용적률 상향을 요청했고, 서울시는 이를 바탕으로 개발 계획을 변경했다.
세계가 인정한 고유의 유산을 지닌 도시의 심장부에서 벌어지는 결정이 공공성보다 사적 이익 구조에 더 흔들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일부 언론과 서울시는 도쿄 황궁,역 주변의 고층 개발을 예로 들며
“도시 경쟁력”을 이야기하지만, 이는 적확한 비교가 아니다.
도쿄의 중심부는 전쟁으로 초토화된 후 역사 경관이 대부분 사라진 상태에서 재개발이 진행된 도시다.
반대로 서울의 종묘는 500년의 도시구조가 거의 온전히 남아 있는, 세계적으로도 드문 역사 경관이다.
그리고 한 번 훼손된 경관은 영원히 되돌릴 수 없다.
그것은 이 도시가 어떤 시간을 품고 살아왔는지를 증명하는 역사의 흔적이 사라지는 것과 다름없다.
종묘 앞 재개발 논란은 결국 단순한 도시정책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미래를 만들고 싶은지에 관한 질문이다.
신축 건물들을 빠르게 짓는 도시가 좋은 도시가 아니다.
인류의 역사가 머무는 장소를 정성껏 지키고, 필요한 절차를 밟으며,
보존과 변화 사이에서 신중하게 합의를 이루는 도시가
비로소 세계유산을 지닐 자격을 갖춘 도시다.
오랜 역사의 시간이 켜켜이 쌓인 자리, 그 시간을 마땅히 지켜내는 도리,
그리고 한 번도 끊기지 않은 역사의 흐름이 유산을 지닌 도시의 품격을 만든다.
종묘는 서울시를 넘어 대한민국의 심장부다.
우리는 앞으로도 그 역사를 존중하며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
역사 속에 잠든 이들이 숱한 침략과 격변 속에서도 굳건히 지켜낸 종묘 앞에서,
오늘날 그 위대한 역사의 무임승차자로 살아가는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도시개발이라는 거창한 프레임으로 역사의 흐름을 단절시키는 145m 높이의 고층 빌딩 재개발 추진이 아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수백 년의 시간과 약속, 그리고 후대를 향한 책임이다.
위대한 유산을 지닌 도시의 미래는,
역사의 흐름을 막는 고층 신축 개발이 아니라
수백 년을 지켜낸 가치의 깊이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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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자료 출처 •
국가유산청_궁능유적본부
MBC,KBS,YTN,
한겨레,연합뉴스,동아일보(보도자료)
JTBC 차이나는 클라스
KBS 역사저널 '그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