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르르까르르 지샤의 웃음소리
내가 중국에서 처음으로 참석했던 결혼식은 어릴 적 마을 잔치와 닮아 낯설지 않았다. 농번기에 치러진 한겨울 결혼식이라 연신 하얀 입김이 나왔지만 고향에 돌아간 듯 반가웠다. 대문에는 물론이고, 창문마다 쌍으로 붙어있던 붉은색종이로 오려 만든 기쁠 희(喜) 한자가 결혼식 운치를 더했다.
지샤네 마당에서 지샤 오빠와 새 언니가 마을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소박한 결혼식을 올렸다. 둘은 붉은 전통 혼례복도 하얀 웨딩드레스도 아닌 새로 산 듯한 양복과 정장을 입고 쑥스러운 듯이 그러나 밝게 웃었다. 이어진 잔치를 위해 주방에서 음식이 큰 쟁반에 올려 나왔고 곧바로 하객이 삼삼오오 둥글게 앉은 마당 곳곳으로 배달되었다. 음식에서도 사람들을 덥혀줄 온기가 하얗게 올랐다. 신혼부부는 식사하는 하객들 사이를 돌며 술을 따라 주기 시작했다. 중국의 결혼식에서는 신랑신부가 손님에게 바이주(白酒)를 두 잔씩 따라 주면 축하의 의미로 받아 마시는 풍습이 있다.
중국 서북지역의 겨울은 더 짧아서 먹고 마시는 동안 시나브로 어둠이 내려앉았다. 마당을 비추는 알 전구에 불이 들어오자 쪼그려 앉아 있던 사람들의 그림자가 단숨에 커졌다. 나와 친구들에게 한 상 차려주고는 바쁘게 손님 시중을 들던 지샤도 그림자를 달고 나타났다. 생글거리는 얼굴로 내게 바이주를 들이밀었다. 내가 술을 못 마시는 걸 알면서도 재촉하듯 내 코 앞까지 작은 술잔을 들어 올렸다.
“언니, 이건 결혼 축하주니까 거절하면 안 돼.”
소꿉놀이 장난감처럼 작아 딱 한 모금 분량씩만 들어있는 흰 도자기 잔 속의 바이주는 더없이 순수하다듯이 맑았다. 40도가 넘는다는 술을 마시지 않기 위해 축하주를 돌리고 있는 마당에서 방으로 숨어 들어왔건만, 지샤는 나를 놓치지 않았다. 결국 나는 두 잔을 마셨다. 입에서는 쓰고 목에서는 매운 것이 불을 마신 기분이었다. 어이없지만 맛과 달리 향은 시원하고 달아 코 끝에 여운을 남겼다. 지샤는 인상 쓰며 마시는 내 모습에 까르르까르르 웃으며 “어때, 마실만 하지?”라고 물었다.
36.5도의 피가 흐르는 몸에 40도가 넘는 술이 들어가니 피가 빨리 도는 느낌이었다. 마시자마자 나는 캉(炕,중국식 온돌) 위에 앉아 벽에 기댔다. 어지러웠다. 잔칫집의 왁자지껄한 소리에 머리가 울리는 것 같아 숙소로 가기 위해 일어섰다. 바이주가 내 혈관을 롤러코스터처럼 타고 돌며 내 몸을 들썩였다. 이웃에 있는 손님용 숙소까지 100여 미터 거리를 좌로 우로 휘청거리며 걸었다. 마치 인형극의 인형처럼 내 팔다리에 줄이 달려있고 누군가 하늘에서 조작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캉 위로 저절로 구겨지는 물건처럼 쓰러져 누었다. 매쾌한 불냄새가 천장 아래를 뿌옇게 만들며 눈을 시리게 했다. 따뜻하게 자라고 군불을 얼마나 땠는지 나도 구워질 것만큼 뜨거웠지만 금세 온몸으로 퍼진 듯한 술기운이 나를 잠의 바다에 빠뜨렸다.
지샤 오빠의 결혼식은 시골 잔치답게 몇 날며칠 이어졌다. 내가 머문 2박 3일 내내 손님이 오가고, 먹고 마시기를 반복했다. 잔치를 위해 준비된 음식이 다 없어져야 끝이 날 것만 같았다. 돼지 한 마리가 주고 간 고기가 온 마을 사람들의 얼굴에 반들반들 광을 내며 사라졌다.
지샤는 내가 중국에서 만난 첫 중국인 친구이자 첫 중국인 동료였다. 처음으로 놀러 간 중국인 친구 집도 지샤네였고, 처음으로 참석한 중국인 결혼식 역시 지샤네였다. 당시 갓 스물을 넘긴 지샤는 참 잘 웃었다. ‘까꿍’만 해도 웃는 아기처럼 별일도 아닌 일에도 까르르까르르 큰 소리를 내며 웃었다. 듣기만 해도 명랑해질 것만 같았다. 지샤는 내가 한국어를 가르치던 학원에서 사무보조와 청소일을 하고 있었는데, 언제나 나와 학생들을 친구처럼 반갑게 맞아주었다. 사실 모두의 친구나 다름없었다.
몇 년 후 내가 중국을 떠난 뒤 오래 지나지 않아 지샤도 고향으로 돌아가 결혼했다. 하지만 지샤에게 더 물어보기가 미안할 정도로 오랫동안 아기를 낳지 못했다. 결혼한 지 얼추 7년쯤 되었을 때 고대하던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마치 미리 약속이라도 했던 것처럼 때마침 나도 중국에 갈 일이 있었다. 칭하이 성이 목적지였지만 간쑤 성을 먼저 들러 옛 친구 몇을 만났다. 그중의 하나가 지샤였다. 아기와 함께 나타난 지샤의 얼굴에서 반가움과 함께 육아의 고단함이 느껴졌다. 뜻밖의 선물처럼 태어난 아기와 내가 눈을 맞추며 인사를 나누자 아기가 옹알거리며 웃었다. 나도 지샤도 따라 웃었다. 그 순간 잠시나마 장시간 비행으로 인한 나의 여독이, 지샤의 피곤이 탄산수의 거품처럼 슈슈슈 사라졌다.
문득문득 지샤가 떠오를 때가 있다. 그때마다 까르르까르르 웃음소리가 세트인양 따라 들린다. 들을 때마다 명랑해지는 웃음소리가, 그렇게 함께 웃을 사람이 그리운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