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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안 Feb 22. 2023

우아한 인형들의 멜랑콜리아

스펜서 & 죽은 시인의 사회


*스포일러 주의! 영화 관람 후에 읽으시기를 추천드립니다*

*본문은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실화가 아닌, 영화 <스펜서>의 허구를 기반으로 작성했음을 밝힙니다*


    <스펜서>가 개봉한다는 소식이 들려올 무렵, 몇 년 동안 리스트에만 적어두고 미뤄놓은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보았다. 연달아 <스펜서>까지 감상하고 나니, 묘하게 두 명의 인물이 겹쳐 보였다. 실존했던 90년대 스타일 아이콘이자 영국의 왕세자비, '다이애나 스펜서(by 크리스틴 스튜어트)', 그리고 50년대 미국 명문 사립 기숙학교의 엄친아, '닐 페리(by 로버트 숀 레오나드)'가.

시작은 달콤하게 평범하게 웃는 얼굴로 (출처 : 네이버 영화)


이름에게


    먼저 <스펜서>. 이 영화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잔뜩 부풀었던 나의 기대에 훌륭히 부응했다. 첫째, 의상. 주연을 맡은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글로벌 앰버서더로 활동 중인 샤넬의 의상은 단순히 스타일리쉬한 수준을 넘어 한 피스 한 피스가 마치 작품처럼 아름다웠고, 분명 그 작품을 어떤 방식으로 조명해야 더욱 아름다울지 훤히 꿰고 있는 능란한 카메라의 덕을 봤다.

    둘째, 크리스틴 스튜어트.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청춘스타였던 앳된 소녀는, 어느새 영화 한 편을 통째로 이끌고 가면서도 힘에 부치긴 커녕 능숙하게 대기를 주무르는 연기자가 되어있었다. 기울인 고개의 각도, 촉촉하게 젖은 눈, 창백하게 흔들리는 목소리. 스튜어트는 귀족적이면서 동시에 위태로운 다이애나 스펜서를 시각적으로, 청각적으로, 감정적으로 완벽하게 구현해냈다. 조금도 닮지 않은 외모와 미국 태생의 배우가 영국 왕세자비를 연기한다는 괴리감 따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만큼.

이 드레스에 나이키 코르테즈를 신은 스튜어트의 쿨한 사진이 퍼지면서 코르테즈 수요가 급증하기도 (출처 : IMDb)

    (실제로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영화 상) '찰스 왕세자(by 잭 파딩)'의 불륜은 다이애나의 신경증에 불을 붙인 도화선은 됐을지 몰라도, 근본적인 원인은 아니다. 찰스가 다른 여자를 사랑하든 말든, 다이애나는 우울하다. (물론 불륜은 분명 그 우울을 가속했다) 외롭기 때문에, 누구도 그녀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모두가 그녀에게 느끼지 (혹은 예민해지지) 말라고, 진짜 자신과 대외적인 자신을 구분하라고, 사람들이 바라는 대로 미소 지으라고, 그러니까 그녀 자신이 되지 말라고 말한다.

화살처럼 다이애나를 향해있는 당구공들 (출처 : 네이버 영화)

    텅 빈 저택, 계단 위에서 이대로 몸을 던질까 고민하던 죽음의 기로에서 그녀를 살린 건 유일한 친구도 사랑하는 아이들도 아니다. 수백년 전에 살다 간, 그녀와 똑 닮은 화려한 드레스 차림의 여인. 도망치라는 그녀의 외침이다. 결국 다이애나를 다시 일어서고 싶게 만든 건 'Princess(왕세자비)'가 아닌 'Spencer(결혼 전의 성)'로서의 삶. 자신의 이름, 자신의 역사에 대한 애착이라는 것.

    다이애나의 친구이자 그녀를 남몰래 사랑하던 '매기(by 샐리 호킨스)'의 말에 나 또한 동의한다. 다이애나에게 필요한 건 'love, shock, and lots of laugthers(사랑, 충격, 그리고 많은 웃음)'임을. 그런 것들에 온통 둘러싸여 살다 보면, 그러면서 다시 주체적인 삶을 찾아가다 보면 자연히 다이애나의 우울도 치유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결말을 알고 있다. 다이애나는 몇 년 뒤, 극성 파파라치들을 피해 도망치다가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했다. 그래서일까, 마지막 장면이 템스 강변 난간에 기댄 다이애나의 부서질 듯한 표정으로 끝나는 건.

  

아프니까 청춘이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영화 내내, 다이애나는 유리로 만든 인형처럼 금방이라도 부서져버릴 것만 같다. 거식과 폭식을 겪는 사람에게 '재미로' 무게를 재라는 건 참 잔인하다. 숨막혀 하는 사람의 창문을 한 치의 틈도 없이 다 막아버리는 건 또 어떻고. 누군가에게 당연한 일이라고 해서, 모두가 마땅히 견딜 수 있는 일이라는 뜻은 아니다.

    감정의 결과 묘사의 깊이는 다르지만, <죽은 시인의 사회> 속 닐 페리의 죽음 역시 다이애나와 같은 숨막힘에서 기인한다. 성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닐의 상황은 솔직히 자살을 고려할 만큼 심각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극단적인 감정과 선택이 납득되는 이유는, 닐(과'죽은 시인의 사회'에 속한 아이들)이 너무나도 어리기 때문이다.

    "10년이면 평생이잖아요." 배우의 꿈을 미루고 번듯한 직업을 갖기를 강요하는 아버지에게 좌절한 닐의 대사다. 어느 누가 10대 때 그렇게 느끼지 않았겠는가. 작년 봄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남주인공 백이진은 이렇게 말한다. '미성년자가 법으로 보호받는 이유는, 자신한테 일어날 수 있는 나쁜 일에 대한 상상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실로 맞는 말이다. 나쁜 일, 범죄에 한정 짓지 않더라도 그렇다. 학교와 가정이 세상의 전부인 아이들에겐,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얼마나 무겁게 다가올 것인가. 세월이 지나 돌이켜보니 참으로 사소해서 하찮게까지 느껴지는 규칙, 관계, 상황에 마음이 짓눌려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출처 : 네이버 영화)

    닐은 특출난 아이였다.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좋고, 재능과 카리스마까지 갖췄다. 소심한 신입생 '토드 앤더슨(by 에단 호크)'의 말마따나, 닐이 말을 하면 모두가 이목을 집중했다. '좀 내버려두라(leave)'는 토드의 요구에 닐이 싫다고 답했기에, 토드는 그가 영영 떠나버렸다(leave)는 사실을 믿지 못한다.

    괴짜 교사 '존 키팅(by 로빈 윌리엄스)', 혹은 선장님(captain)의 특별한 교육에 깊은 감명을 받은 아이들은 그러나 결국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고, 지금의 모습 그대로 자라 어른이 될 것이다. 내면의 목소리를 따르기보다는, 적당히 사회와 타협하며 안전하고 편안한 중산층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소중한 추억은 때로 삶의 원동력이 된다 (출처 : 네이버 영화)

    그리고 그 치기어린 날들에 자신들이 얼마나 어렸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조금만 더 버텼더라면, 닐에게도 '그땐 그랬지' 웃으며 고통을 추억으로 회상할 순간이 반드시 왔을 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도저히 거절할 수 없던 선생님의 압박과, 선장님에게 의리를 지키 못했다는 죄책감, 어기면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던 수많은 규칙이 실은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고. 그때 그들의 전부였던 것들은 사실 너무나 커다란 세상의 극히 작은 일부였을 뿐이라고.

    그러나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너무나 어리석고, 미숙했고, 온통 마음을 쏟지 않는 법이나 여유를 남겨두는 법 따위는 몰랐기 때문에 '죽은 시인의 사회'는 그 시절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어떻게 이런 통찰을 담은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까. (비록 여성을 다루는 시각에는 문제가 많지만) 오랫동안 사랑받는 명작인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웃는 얼굴도, 긴장과 설렘에 찬 얼굴도 반짝이는 청춘 그 자체였던 에단 호크 (출처 : 네이버 영화)

    <스펜서> <죽은 시인의 사회>는 슬픈 영화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때로는 실없는 웃음이 터져나오고, 청명한 바람이 흐르고, 맞잡은 손의 온기가 서로에게 전해진다. 요즘 드는 생각은, 좋은 영화는 전부 조금씩은 슬프다는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얘기일지 모른다. 기쁘고 즐겁기만 한 삶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러니 우리는 결국 우리와 비슷하게 기뻐하고 슬퍼하고 분노하고 좌절하고 외로워하고 사랑하고 고민하고 나아가는 영화 속 인물들에게 위로받는 것이 아닐까.


단 한 마디 아름다운 그대들에게.

    

* 흔들리는 청춘의 선홍빛 초상이 궁금하다면 : 금이빨 빼고 모조리 씹어 먹어 줄게

* 다안의 영화 이야기가 더 듣고 싶다면 : 다안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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