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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단 Jan 03. 2022

세상의 모든 처음

 삼 년 전쯤, 집에서 한두 시간 거리에 있는 곳에서 일한 적이 있다. 늦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에 늘 30분씩 일찍 출발했고, 예상치 못한 일은 다행히 일어나지 않아 늘 30분씩 일찍 도착하고는 했다. 처음에는 차 안에서 멀뚱멀뚱 기다렸지만, 나중에는 근처 조용한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고 그 시간이 너무 좋아 1시간씩 일찍 출발하기도 했다. 


 카페 주인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는 늘 얼굴을 쳐다보지 못했다. 뚝뚝 끊어지는 말투에 한 번 말이 꼬이면 버벅거리기도 일쑤였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에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카페도 닮아 있었다. 인적이 드문 위치, 조용한 공간, 그리고 공간 안의 모든 사물은 서로 간에 넉넉한 거리를 두고 있었다. 나는 그 세계가 참 좋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공간 안의 거리에 안도했는지, 그 남자의 서투름이 고마웠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오늘 정말 오랜만에 그 카페를 다시 찾았다. 나 홀로 반가운 카페 주인의 모습이 멀리서부터 보였다. 그 세계는 여전히 그대로였고, 곧바로 안도감과 고마움이 떠올랐다. 늘 앉던 곳에 자리를 잡고 따뜻한 레몬차 한 잔을 주문했다. 달라진 게 있었다면 카페 주인은 더 이상 어설프지 않았다. 내 눈을 보며 주문을 확인했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음료를 준비했다. 나는 그 모습이 조금은 고마웠고 조금은 서글펐다.


 나중에 전해 들으니 그 카페 주인은 오랜 시간 피아노를 쳤던 사람이라고 했다. 피아노를 업으로 삼다가 어떤 이유로 이별하게 되었고, 20대 후반에 카페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그때는 나도 그 사람도 새로운 길의 초입이었다.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불편하고 서투른 그 사람이 그때 나에게는 위로 혹은 안도가 되었고, 어느새 제법 의연하고 능숙해진 그 사람이 지금 나에게는 고마움이 되었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그런 모습일까.


 매번 처음 맞이하는 한 해다. 나는 변화하기를 원하면서도 변화하지 않기를 원한다. 나의 본연을 기억하는 것, 언제나 그게 가장 치열한 일이었다.


Budapest, Hungary(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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