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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단 Feb 20. 2021

숲 틈

Forest gap

 숲의 아름다움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일까? 면적, 종의 다양성, 산책로 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가장 원초적으로 생각해봤을 때 숲의 아름다움은 울창함이 결정한다고 생각했다. 얼마나 밀도 있게 그 공간을 채우고 있느냐가 가장 중요하다는 말이다.


 최근 노력 중독이라는 말이 새롭게 생겨났다. 직관적으로도 알 수 있듯이, 노력 그 자체에 중독된 것을 의미한다. 얼핏 들으면 좋은 얘기인 것 같다. 내가 자라면서 자주 들었던 말이, 모든 걸 잘할 수는 없지만 항상 최선을 다해 노력하라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독이라는 개념은 그 자체로 부정적인 색깔을 가진다. 이런 점에서 노력 중독이라는 말은 참으로 모순적이다. 노력에 중독된 자들은 무엇을 위한 것인지도 정확히 모른 채 노력 그 자체에 심취하여 자기를 몰아붙인다. 그렇게 노력하여 무언가를 성취하지만, 성취감보다는 공허함을 경험하며 또 다른 노력으로 핸들을 돌린다. 남들에게는 열심으로 보이는 그 삶이 자기에게는 불안인 것이다. 이렇게 보면 사용량이 적정 수준을 벗어나고, 그로 인해 자기 또는 타인에게 손상을 입힌다는 점에서 중독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들은, 아니 우리는 어쩌다가 노력에까지 중독되었을까?


 6월쯤 와이프와 포천에 있는 캠핑장을 다녀왔다. 돌아오는 길에 작은 수목원에 들르게 되었다. 인적이 거의 없는 수목원을 천천히 산책하는데 팻말 하나가 눈에 띄었다. Forest gap을 소개하는 팻말이었다. 숲 틈이라 부르는 forest gap은 삼림 수관(crown)의 일부분이 열려 있는 틈을 의미하는 것이며, 숲 바닥에 직사광선이 직접 도달하게 해 숲 식물 사회의 종 조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나는 울창함을 숲의 미덕이라 여겼지만, 실제로 숲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나뭇잎들 사이로 공간이 열려야 하고 그 공간으로 햇빛이 비춰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글을 읽고 생각해보니, 햇빛이 들지 않는 숲은 아름다움보다는 어두움, 두려움, 불안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내가 아름답다 느꼈던 숲은 해가 비치고 있었다.


 노력 중독은 숲의 울창함을 설명하는 개념 같다. 삶의 모든 영역을 울창하게 만들어놓고, 그 그늘 아래에서 두렵고 불안함을 느끼는 것. 울창함이 나를 살아가게 만든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있어 보이게' 죽어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아니 우리는 어쩌다가 노력에까지 중독되었을까? 각자가 각자의 답을 찾는 과정이 필요하겠지만, 공통적으로는 노력하지 않는 자신을 용납할 수 없음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노력의 유무에 따라 깨지기 쉬운 자기상(self-image)이 자기의 등을 떠미는 것은 아닐까.


 그 기원이야 어찌 됐든

틈(여백)을 만들어놓을 것, 창조물 중에 인간보다 오래된 존재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포천 수목원, 대한민국(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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