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품고 있는 나
새벽 3시 눈이 떠진다. 근래 춥다는 핑곗거리를 붙들고 나태라는 놈이 나를 잠식하는 듯 무서운 기세로 몰고 왔었는데. 반갑게도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도전 덕분에 일찍 눈을 뜬다. 아니야 조금 더 자자. 다시 눈을 감고 일어난 시간은 새벽 4시 반. 세수를 하고 양치를 마친다. 첫 시간이니 만큼 모양새를 단정하게 한다.
새벽 5시 5분 전, 줌 화면을 켜고 입장. 벌써 들어온 분들이 몇몇 보인다. 이 새벽에 단장하고 나와 책을 읽는 분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처음 시작은 구본형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읽다가 사뭇 하품이 밀려와 중간에 변경한다. 고 김진영의 <아침의 피아노> 돌아가시기 전까지 쓰신 애도 일기인데 읽는 내내 애잔함이 흐른다. 꽃이 시들 때를 근심한다면 이토록 철없이 만개할 수 있을까. 삶의 마지막 즈음 바라보는 일상을 담담하게 때로는 무기력하게 때로는 충만하게 써 내려간 글을 읽어나간다.
삶은 힘들이다.
몸은 힘으로 살아간다.
정신은 힘으로 사유한다.
마음은 힘으로 노래한다.
생의 기쁨과 희망과 사랑을.
한 편의 시 같은 글은 그 순간을 담는 그만의 절제된 노래였으리라. 1시간이 지나고 읽었던 책을 나누는 시간이 주어진다. 첫 시간이고 살짝 밀려오는 부끄러움과 나를 드러냄에 대한 자제력이 발동하며 차마 말을 하지 못하겠다. 음소거 유지 중. 다행히 돌아가며 발표하는 것은 아니고 할 말이 있는 사람만 한 두 명 정도 짧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데카르트의 책을 읽는 분의 단상을 듣는다. 굉장한 고전들을 읽는 미래가 눈에 선하다. 앞으로 읽어야 할 책들이 어려울 것 같은 선입견을 버리기로 한다. 괜찮겠지? 지혜를 주소서.
이제부터 교수님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 내가 어쩌다가 여기 앉아 이런 명쾌하고 날카로운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건지. 수많은 책을 섭렵하신 지식에서 뿜어 나오는 아우라와 더불어 맑고 단단하지만 결코 교만하지 않은 정신은 그의 영혼을 대변하는 듯하다. 나의 엄마는 내가 만난 사람들 중 정신이 가장 강한 사람이라 자만했었는데 엄마는 나의 영원한 롤 모델로 남겨두고. 또 다른 인생의 선배를 만난 느낌이 들어 듣는 내내 감격스럽고 감사하다.
잠재의식 속에 보관된 행동으로 하게 되는 것, 다리 떨기 예로 말씀해 주셨는데 다리를 떨고 있던 나는 움찔한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말. 고치고 싶어도 잘 되지 않았던 이유가 내 잠재의식에서부터 고착화된 행동이었구나. 이 기회에 이런 습관을 하나씩 고쳐 나갈 수 있도록 잠재의식을 깨우는 나를 발견해 보자. 우주를 품고 있는 나. 내 안에 쓰지 않던 나를 발견하여 쓰임을 만들어 가는 일. 두려워하는 크기만큼 간절히 원하는 욕망이라고 누군가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마음을 열고 욕망이 흐르게 할 것이다. 욕망을 잃은 삶은 죽은 것임에 틀림없다. 삶이 어려운 이유는 가난하기 때문이다. 욕망이 죽어가기에 힘든 것이다. 삶에 대한 욕망이 있기에 지금 나는 살아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