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가정은 작은 천국 - 8회
어제 출시된 ‘미니 이모티콘 3종’을 무료로 다운로드하였다. 기존 이모티콘은 한 번에 하나의 종류를 전달하는 개념인데 이번 미니버전은 여러 가지를 조합해서 나만의 스타일로 만들 수도 있고 여러 번 보내면서 이모티콘의 형태를 이어갈 수도 있다.
한 마디로 같은 이모티콘을 ‘나만의 스타일’로 변형하며 자유자재로 만들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요즘 MZ세대의 특징을 잘 살려 만든 새로운 창조물이 아닌가 싶다.
난 이러한 창조물이 너무 재미있다. 어떻게 기존 관념을 뛰어넘어 새로운 창조를 이루었을까? 어디서부터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는 걸까? 이런 생각은 한 번에 영감을 받아 나오는 창조물일까? 아니면 끊임없는 실패를 거듭한 후에 나오는 창의적인 산물일까?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딸아이를 키우는 엄마다. 우리 아이가 자신만의 것을 창조하며 창의적인 아이로 자랐으면 하는 바람이 매우 큰 엄마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창의적인 생각은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 창의적이라는 뜻은 무엇일까? 그 의미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 키워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창의적'의 사전적 의미는 ‘새로운 의견을 '생각'하여 낸다’이다. 기존의 지배된 생각에서부터 벗어났을 때 가능한 것이다. 새로운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생각'이라는 것은 나 자신이 주체가 되어 판단을 할 때 나오는 것일까? 이 '생각'이라는 것은 나 자신이 주체가 되어 깊이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불현듯 '나에게 오는 것'이다. 내가 주체가 아니라는 의미다.
이렇게 내가 주체가 아닌, 어디선가 나에게 갑자기 들어오는 생각을 '영감'이라고 한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이러한 영감에서부터 나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주체가 되지 않는 생각이 어떻게 하면 자주 나에게 올 수 있을까? 방금 질문에서 답이 있다. '나 자신이 주체가 되어 깊이 판단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이다. 판단하려고 할 때 머릿속에서 스탑!!! 을 외치는 것이다. 그리고 질문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기존 관념을 벗어나 새로운 생각이 올 수 있으려면 먼저 선행이 되어야 할 것이 바로 자신이 주체가 되는 판단을 하지 않는 것이다. 판단을 한다는 것이 바로 내가 머리 굴려 생각한다는 것이니까. 그렇게 내 머리 굴려 생각하고 판단한 다음에 선택한 결과가 '지금의 나'의 모습이다. 나의 경우는 답이 나온다. 내 판단으로 인해 선택한 결과가 지금의 나라면 나는 엄마로서 나 자신으로써 머리를 굴려 판단하지 않아야 한다.
엄마가 판단하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엄마인 나는 되뇐다. 아이의 말을 엄마인 내가 판단하지 말자. 판단하려 할 때 스탑을 외치고 질문을 하자. 아이에게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 자 이제 실전이다!
예를 들어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서'어떤 남자아이가 음악 시간에 분위기를 흐려서 집중을 할 수 없어서 화가 났다'라고 푸념을 늘어놓았다고 가정하자. 이전의 나의 반응은 “누구야? 어떤 아이야? 어떻게 했는데?” 질문하며 사실을 파악하려는 질문부터 했다. 질문에 대한 답을 듣고 '판단'이라는 것을 하려 했기 때문이다. 엄마가 머리를 굴려 판단을 한 다음에는 아이에게 엄마의 생각을 지시하거나 훈계하거나 둘 중 하나가 자동적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다.
“화가 났겠다... 그 아이가 그런 말을 했을 때 너는 어떤 기분이 들었어?”
“화가 났겠다.. 그 음악 수업 분위기에 대해서 네가 표현할 수 있는 단어로 느낌을 표현해 줘 바! 엄마가 한번 상상해 보고 너의 감정을 느껴볼게”
아이의 말을 호기심 있게 들어보고 질문을 하는 것이다. 마치 우리 아이를 처음 만난 아이라고 생각하고 말이다. 어렵다. 매우 어렵다. 현실 불가능하다고, 나 또한 엄마로서 충분히 동의한다. 랄프 왈도 에머슨이 '의지의 단련이 우리의 존재 목적'라고 말한 것 처럼 엄마인 나는 '인격이란 완벽하게 다듬어진 의지'라는 기준을 가지고 조금씩 실천해 보기로 다짐한다. 부모니까. 엄마니까.
그리고 여러 번 시도해 본다. 어랏! 아이의 반응이 변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판단을 위한 질문들은 아이가 잔소리를 미리 예측하고 입을 닫아 버렸는데 호기심 있게 물어보는 엄마의 질문에는 아이가 흥미롭게 반응하며 다소 엉뚱한 엄마의 질문에 대답을 해 주는 것이었다.
나는 종종 아이와 매우 비효율적인 시간을 갖는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서 간식을 먹은 후 종종 아이와 함께 집 앞의 공원을 나서는 것이다. 공원에서는 계절이 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엄마 엄마 봄이다! 지금 여기 새싹이 돋아나고 있네!' 아이는 신이 난 듯 뛰어다니기 시작한다. 우리 아이의 경우 나무에 올라가서 꽃봉오리를 직접 관찰해 보고 싶어 한다. 엄마인 나는 사람이 다니지 않을 때 잠시 일탈을 허락한다. '엄마랑 주아와 비밀이다 쉿!' 아이가 그리 높지 않은 나무로 올라가서 뿌듯한 표정으로 직접 꽃이 피기 전 준비하는 귀한 모습을 본다. 눈이 소복하게 쌓였던 겨울이 지나고 움츠렸던 기지개를 켜듯이 나무와 꽃들이 새 단장을 하는 모습을 보는 아이는 자연의 이치를 저절로 깨우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가장 자연적인 것(Natural)이 가장 창의적인 것 아닐까?
사소한 일상에서 아이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기회는 많다. 엄마인 내가 놓치고 있었을 뿐. 엄마인 내가 어른이라는 이유로 먼저 판단을 하려고 했을 뿐이다. 엄마인 내가 깨우치기 시작한다면 학원이 아닌 일상에서도 엄마가 할 수 있는 것이 생각보다 많지 않을까?
어렵다. 아이를 매우 끔찍이 사랑하는 엄마이니까 무조건 우리 아이를 보호해야겠다는 엄마의 본능적인 감정이 솟아오르기 때문에 판단을 위한 질문이 자동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 대부분 엄마는 그렇게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서 바라보면 정답이 정해진 질문을 통해서는 결코 아이가 스스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는 없다. 솔직히 말하면 아이가 가장 싫어하는 잔소리일 뿐이다. 나는 아이가 엄마인 나보다 훌쩍 크고 똑똑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엄마의 질문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중이다.
일상에서 아이에게 생각하는 힘을 길러줄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 나는 정말 그런 엄마가 되고 싶다. 나 자신이 판단을 위한 생각이 들어올 때 스스로 스탑!! 을 외칠 수만 있다면 말이다. 아이와 때로는 매우 비효율적인 시간을 보내면서 말이다.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엄마가 느끼기에는 매우 비효율적인) 공원에서 빈둥거릴 때의 아이의 표정은 세상 모든 것을 가진 듯, 반짝반짝 빛이 난다. 그런 반짝임이 엄마에게 보이기 시작하니까 말이다.
새로운 무엇을 창조하는 것은 지적능력이 아니라 내면의 필요에 따른 놀이 본능에 의해 이루어진다. 창조성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과 잘 어울린다. -카를 쿠스파프 융
화 . 목 [건강한 가정은 작은 천국]
수 . 일 [새벽독서, 책과 나를 연결 짓다]
금 [초등학교 엄마부대]
토 [꿈을 키워주는 엄마 되기]
15일마다 [다나의 브런치 성장기록] 매거진이 발행됩니다. 한 달간 브런치 성장기록을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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