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는 일에서 독창적인 사고는 어떤 생각을 극단적으로 밀고 갈 때에 자주 얻어지며 그렇게 얻어진 사고는 이전의 사고체계와 크게 건 작게 건 단절된다. 천동설의 세상에 지동설은 거대한 사고의 단절을 불러온다. (중략) 삶과 학문의 온갖 시도를 수용하는 아량이 문제가 되고 삶에 대한 지치지 않는 성찰이 문제가 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끝까지 해보려는 용기가 문제가 된다(주).
'극단적'이라는 어휘는 '길이나 일의 진행이 끝까지 미쳐 더 나아갈 데가 없는' 혹은 '중용을 잃고 한쪽으로 크게 치우치는'을 부정적인 뉘앙스를 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단절이라는 '극단적'사건이 없었다면 터닝포인트라는 단어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남의 불행과 고통에 반드시 공감해야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공감하지 않는 것과 다른 사람의 공감을 위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주).
나란 사람은 여전히 깊이 이해되지 않을 때 공감해 주기가 어렵다. '그럴 수도 있겠다'보다 '미안하지만 공감이 안되네' '나도 공감하고 싶지만 안 되는 것을 어쩌지?' 등 속으로는 많은 생각들이 스쳐가지만 그저 아무 말 없이 토닥이는 것이 나에게는 최선인 것을. 나란 사람은 아직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이다.
어느 나이가 되면 독서도 근면성이나 학구열 외에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 현실의 가혹함을 받아들이고 자기를 무너뜨리고 개조할 준비가 필요하기에(주).
용기, 나 자신을 계속 무너뜨릴 용기이다. 이기는 훈련이 아니라 자신에게 지는 훈련, 지속적으로 실패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나이 들수록 더더욱이 나 자신을 객관적인 시선에서 받아들이는 용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느낀다.
편견은 무지와 잘난 체가 합쳐진 것이니 인간을 괴물로 만들기에 가장 적합한 정신 상태라는 말에 동의하는 바이다. 삶을 지나온 시간들이 쌓여가는 외모로 우스꽝스럽게 똘마니 괴물이 되고 싶지는 않으니까,
새삼스러운 말이지만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주).
나에게는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책 한 권을 읽은 사람이 가장 무섭다는데 책 한 권 읽었을 때는 그리 당당하게 쓰던 글도 요즘에는 부끄러워 쓰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지금은 책 두 권읽은 상태이려나?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서 감히 무엇을 안다고 말하기 주책스러운 심정이랄까.
주)밤이 선생이다&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황현산 산문집
Dana Choi, 최다은의 브런치북을 연재합니다.
월 [나도 궁금해 진짜 진짜 이야기]
화. 토 [일상 속 사유 그 반짝임]
수 [WEAR, 새로운 나를 입다]
목 [엄마도 노력할게!]
금 [읽고 쓰는 것은 나의 기쁨]
일 [사랑하는 나의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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