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 인터뷰 #벌써 일 년
1. 공개 글쓰기를 시작한 지 1년이 흘렀다. 감회가 어떤가?
어떤 이에게는 1년이라는 시간이 유의미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나에게 글을 쓰기 시작한 후 1년은 애틋하다. 오랜 시간 꾹꾹 눌러 담아 몰라주던 내 안의 폭포수 같은.. 눈물들과 만났다. 매우 단단했던 아집들이 하나 둘 떠나갈 때 고통스러웠지만 참 감사했다. 깊은 절망의 수렁으로 빠져 들어 헤어 나오기 힘든 순간도 있었고 새롭게 태어난 자유함을 느끼기도 했다. 영적으로, 실제적으로 상당히 역동적인 흔적들이 선물로 주어진 것 같다.
나 자신을 제대로 알아가고 싶어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나 자신을 이해해 가는 만큼 가장 가까운 남편 그리고 친구, 지인들에 대한 공감의 폭이 조금씩 넓어지는 계기가 되어서 감사하다. 현재 다소 글태기를 겪고 있지만 극복할 것이다. 아자아자^-^/
2. 아자아자 나도 응원하겠다! 최근 여행을 자주 다니는 것 같은데 심정의 변화가 있었는지?
어릴 때부터 여행광인 엄마의 진두지휘에 이끌려 국내외 여행을 넘치도록 했다. 나는 입이 툭 튀어나와 끌려가듯 울면서 갔다. 혼나며 간 여행도 꽤 있었다. (사실 친정어머니의 여행기를 엄마이름의 책으로 내고 싶을 정도로 다이내믹한 스토리가 많다.) 당시 내가 주도적으로 간 여행이 아니었기에 그 매력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여행을 많이 갔던 기억 덕분인지, 결혼 후 줄곧 주말은 집에 있었다. 나도 그럭저럭 좋았고 남편은 말할 것도 없이 집이 좋은 사람이니까 그렇게 집을 묵묵히 지켰다. 딸아이가 초등학생이 되어 다양한 경험을 쌓고 엄마아빠와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가는 것의 필요성을 느껴 최근 금산, 경주 등을 다녀왔다. 근데 돌아오면 역시 집이 최고다. 아직은 그렇다.
3. 솔직히 혼자 여행을 가고 싶은 것 인가?
맞다. 어떻게 알았나? 사실 혼자서 하는 여행이 진짜 제대로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이가 아직 어려서 엄마가 홀로 떠날 수 없으니 조금 크면 혼자 정말 가고 싶었던 곳을 무작정 그리고 무모하게 떠나고 싶다.
4. 여행 후 후유증이 있다면 즉흥적인 성격을 보완하기 위해서?
가족여행의 후유증은 없다. 다만 루틴이 엉망이 되고 돌아왔을 때 정리할 짐들, 빨랫감들이 쌓인다는 것뿐. 근데 여행은 즉흥적인 것에서 매력적인 것이 아닌가. 질문이 잘 이해가 안 된다. 제대로 해줘라.
5. 아 미안하다. 그럼 화제를 돌리겠다. 최근 자신감이 흔들릴 때가 있었나?
요즘 무더위도 관계의 문제도 아닌, 내부의 요동침이 내면 질서를 계속 무너뜨리는 느낌이랄까. 이도저도 아닌 모호한 어느 경계 속에서 어찌할 줄 몰라 한 걸음도 뗼 수 없는 상태. 그런 무기력함에 빠졌다.
늘 나는 과하다, 과하게 생각하고 과하게 몰입하는 증상이 있어서 힘들었다. 심리전문가인 최재훈 작가의 책 '나는 왜 남들보다 쉽게 지칠까'를 읽었다. Highly Sensitive Person, 즉 초예민성 개념을 알아보기 위한 검사 23 항목 중 13개 이상이면 매우 예민한 기질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는데 나는 16개 정도 나오더라.
6. 더 설명해 달라. 예민한 사람들은 공감을 많이 할 것 같다.
그러니까 HSP의 신경계는 태어날 때부터 굉장히 민감하게 날이 서 있다고 한다. 이를 초감각이라고 하는데 정보를 받아들이는 감각이 예리하게 트여있어서 또래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 정보를 더 깊은 수준까지 습득하는 것이다. 초감각은 세세한 부분까지 굉장히 민감하게 굴기 때문에 부모가 늘 세심하게 배려해야 한다는 것. 친정어머니의 말이 떠올랐다.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지구상에서 제일 키우기 힘들었다 너!"
또한 초감정 그러니까 감정적인 부분도 긍정이든 부정이든 굉장히 깊고 강하게 빠져드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HSP들은 굉장히 열정적으로 사랑에 빠지곤 한다고. 그리고 상대의 단점이 보이면 확 불타오르던 감정도 확 식어버리기 쉽다고. (너무 과거의 나... 나.. 나잖아..)
마지막으로 심미안의 특징이 있다. 대부분 자신만의 주관과 잣대가 강하고 호불호 또한 분명하다. 미적감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평소 상상하거나 개성 넘치는 이야깃거리들을 머릿속에 가득 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심미적 예민함에서부터 연유되었을 것이란다.
결론은 진짜 예민한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예민함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숨긴다는 사실이다. 많은 부분이 공감되었다. 털털하고 둥글둥글하듯 그저 밝은 사람으로 비치는 경우가 많았어서, 좋은 게 좋은 거지, 타인에게 잘 맞추는 나의 기질을 그대로 설명해 준 글이라 위로가 많이 되었다.
결국 진짜 예민하다는 것은 겉과 속의 괴리가 심한 성격요소라는 것이다.
7. 그래서 결론은 무엇을 얻었나?
나의 이러한 기질이 독이 되지 않기 위해 온몸의 감각이 부정적인 쪽으로 끝장을 내기 위해 달리고 있을 때 빠른 시간 안에 스탑을 외칠 수 있어야겠다.
그리고 겉과 속의 괴리를 조금씩 줄여나가는 균형 잡는 법을 터득하고 싶다. 어떤 문제는 과감하게, 어떤 이에게는 절제된 감각으로, 어떤 상황에서는 때로 눈을 감아 보는 것. 놀라운 지혜가 요구된다. 아직은 매우 어렵다.
일시적으로 머릿속 혼돈이 불어온다 싶으면 덥거나 춥거나 비 오거나 바람불거나 핑계 대지 말고 신발 신고 집 밖을 나가는 것도 강력하게 추천한다. 엊그제 35도 넘는 무더위에 운동화 신고 무작정 걸었더니 알 수 없는 시원함을 느꼈다. 꺄!
8. 스스로의 강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문제가 생겼을 때 남 탓하기 전에 나 자신을 돌아보려 애쓰는 것, 불평하지 않고 의지적으로 감사를 선택하려는 태도, 타인의 시선에 크게 얽매이지 않는 것. 부당함에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용기? 내 입으로 말하기 너무 많은데!
9. 그렇다면 약점은?
해야만 하는 일부터 먼저 하는 것을 미루는 습관, 대면하기 싫은 모습을 회피하려는 소심함. 감정기복이 심한 것을 잘 다루지 못하는 미숙함.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제 멋대로인 것 등등 이것도 상당히 많아서 그만할래.
10. 일 년 동안 성장했다고 느끼고 있는지?
응! 앞서 말했지만 '1년 전 나'와 비교했을 때 성장하고 있다고 느낀다. '가장 가까운 남편이 증인이다'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11. 다음 일 년은 어떤 모습으로 만날까?
좀 더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보는 것이 목표다. 브런치 작가인 친정엄마와 딸인 내가 대화하듯 번갈아 연재하는 기록을 남기는 '엄마와 딸'이라는 주제로 여러 에피소드를 담아보는 브런치 북은 어떨까?(아직 엄마에게 제안하지는 않았다.) 지난 10여 년간 다이내믹했지만 그럭저럭 잘 버텨내고 있는 우리 부부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가 보고 싶기도 하다. 이건 남편의 허락도 받아야 하니까. 굉장히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를 남겨보고 싶은 욕심이 든다.
12. 오 기대된다! 다음 일 년 기대해 봐도 될까?
웅! 제발 기대해 줘라. 요즘 스스로에게 기대가 아니 되어 힘든데 당신이라도 기대해 주면 힘이 날 것 같다. 고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