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적인 사랑의 힘
어제 친정아버지의 문자를 받았다. '요즘 글쓰기로 지쳐 있을 우리 큰 딸 잠시 쉬며 커피 한잔 하세요.' 함께 보내주신 커피와 케이크 쿠폰. 순간 가슴이 찡~하다. 매일 같이 다 큰 딸의 꼬물거리며 풀어내는 생각 주머니를 읽어주시는 아빠. 어릴 때 동네에서 유명한 딸 바보다.
아장아장 걸을 무렵 아이는 한 걸음 걷는데 앞에서 넘어질까 조마조마하시며 열 걸음을 먼저 걷는 아빠. 넘어지면 아프다는 것, 스스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배워야 하는데 그걸 막아주셨다. 온몸으로 말이다. 과잉보호의 끝판왕으로 불릴만한 아빠지만 방법은 지혜롭지 못했더라도 헌신적인 행동의 근간은 자식을 자신보다 아끼는 마음이다. 그때는 잘 알지 못했기에 아이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 믿으며 사랑한 것이다.
대학 입학하여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적이 있었는데 한 달 만에 그만두었다. 카페 사장님이 그 당시 서른 남짓 남자였는데 스무 살인 나에게 '끝나고 맥주 한 잔 할까?' 이 말 한마디 한 것을 들으시고 당장 그만하라고 하셨다. 돈 벌 생각 하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학자금 대출하는 친구와 학생지원팀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 친구는 사회에 나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대출을 갚는 것이다. 그런 세상을 모르고 자랐다. 첫 직장도 아빠가 일하시는 분야의 지인 회사에 잠시 들어가 일한 적이 있었을 정도로. 스스로 할 수 있는 맷집도 근육도 없이 완벽한 부모의 보호 안에서 살아왔다.
처음으로 박살 나기 시작한 것이 사회생활이다. 그 나이 되도록 누구에게 쓴소리를 들어본 적 없는 나는 매일같이 혼이 났다. 당연하지 아르바이트 경험도 전무한 아무것도 모르는 공주 아니겠나. 고통의 시작이었다. 스스로 원하는 회사에 가야겠다 결정한 것도 아빠의 지인 회사가 1년도 안돼 파산되어 일자리를 잃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무서워한 것은 부모님의 온실 안에서 살면서 세상을 경험해 보지 못한 막연한 공포인지도 모른다. 공주콤플렉스가 오랜 시간 나 자신을 괴롭혀 온 것도 최근에 알게 된다. 딸아이를 혼자 하게 놔두고 싶은 마음이 크다. 초등학교 2학년 아이가 동네를 혼자 다니는 것도 조금 커서 친구들과 버스를 타는 경험들도 모두 위험요소가 있지만 스스로 문제를 만나고 해결하며 배우는 것은 결코 돈으로 살 수 없다. 부모가 아이를 언제까지 따라다니며 돌봐 줄 수는 없으니까.
딸아이 생일파티를 특별하게 장식하고 예쁜 옷을 입혀서 친구들까지 초대하며 거창하게 하는 게 너무 과한 것이 아닌가 싶어 물었을 때 지인이 말한다. 생일이라는 특별한 날에 행복했던 기억이 훗날 아이의 지탱하는 추억이 된다고. 그런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딸아이가 독립적일 때 가장 기쁘다. 나와는 달라서 좋다. 받은 사랑대로 자연스럽게 과잉보호를 하게 되는 것을 늘 경계한다. 나처럼은 키우고 싶지 않아서 힘들었던 시간들을 딸에게 주고 싶지 않아서. 누군가에게는 복에 겨운 소리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물고 빨고 사랑해 줬는데 부모의 입장에서는 서운하시겠다. 누구나 자신이 갖고 있던 누림의 어두운 면만 아쉬워하니까.
섭코 브런치 작가님의 '구김살 없이 밝고 사랑스러운 사람' 글을 읽고 위안이 된다. 사소한 행동이나 말 한마디에서도 밝음이 뚝뚝 묻어나는 무결한 밝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표현을 한다. 그런 사람을 보면 감탄과 동시에 씁쓸하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그런 사람인 나는 오히려 무결하게 보이는 오롯한 밝음이 주는 철없음의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는데 말이다. 구김 없는 밝음은 '아직 상처받지 않음'이 아니라 누구보다도 단단한 사람이라는 증표라는 말에서 눈물이 핑 돈다.
맞다. 나는 아빠의 무한하고도 넘치는 사랑을 받고 엄마의 무조건 적인 사랑을 받아 누구보다 강한 것이 있다. 세상 어떤 것에도 무너지지 않는다는 자아존중의 힘이 있다. 생명을 딱 놓고 싶은 순간도 있었는데 그 생각이 막다른 곳까지 가지 못하게 붙드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가치를 절대 놓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은 자의 단단함이다. 타인과 세상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힘도 사랑과 관심을 많이 받고 자랐기에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가능했나 싶다. 많은 문제의 해결의 열쇠는 무조건 적인 사랑을 받은 자가 흘러 보내는 사랑의 힘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분노의 존재를 알아주고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보살펴 주면 그 분노의 에너지는 창조적이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바뀔 수 있다. -존 백다르-
부정의 에너지를 긍정의 에너지로 변화시킬 수 있는 힘도 무조건 적인 사랑으로부터 시작된다. 사랑을 받은 자는 빚진 자이다. 이제는 계속적으로 더 많이 흘러 보내려 한다. 자라온 환경에서 받은 가장 중요한 가치를 토대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