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를 처음 보면 색에서 먼저 멈칫하게 된다. 생각보다 너무 진하다. 너무 분명하다. 너무 숨기지 않는다. 빨강은 빨강이고, 파랑은 파랑이다. 중간에서 머뭇거리지 않는다. 요즘 눈으로 보면 약간 눈치 없는 색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조금만 톤을 낮췄어도 될 것 같은데, 굳이 이렇게까지 밝아야 했을까 싶어진다.
그런데 민화의 색은 애초에 조심할 생각이 없었던 색이다. 민화에서 색은 분위기를 맞추기 위한 배경이 아니라, 뜻을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언어에 가깝다. 붉은색은 길함과 생기를, 푸른색은 생명과 지속을, 노란색은 중심과 권위를, 흰색은 비움과 시작을 뜻했다. 이 색들은 서로 섞여 흐려지기보다, 제자리를 지키며 제 역할을 했다.
민화의 색이 솔직한 이유는 숨길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민화가 만들어진 세계에서는 감정을 애매하게 포장할 필요가 없었다. 기쁘면 기쁜 대로, 잘되길 바라면 바라는 대로, 무섭지만 막아달라고 하고 싶으면 그대로 그렸다.
그래서 민화의 색은 종종 튄다. 튀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튀어야 보이고, 보여야 전해진다고 믿었던 색들이다. 생각해보면 민화는 집 안에 걸려 있던 그림이었다. 낮은 조명 아래에서도 잘 보여야 했고,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와야 했다. 은근한 색, 세련된 톤, 미묘한 그라데이션은 민화의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대신 분명해야 했다. 이건 복이고, 이건 기원이고, 이건 바라는 마음이라고 바로 알아볼 수 있어야 했다.
그래서 민화의 색은 솔직하다기보다 정직하다. 감정을 돌려 말하지 않고, 의미를 숨기지 않는다. 가끔은 너무 직설적이어서 웃음이 나기도 한다. 이렇게까지 대놓고 말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직설이 오래 남는다. 민화를 보고 나면 색이 기억난다. 구도가 아니라 색이 먼저 떠오르고, 형태보다 색의 감정이 먼저 남는다. 그건 아마 우리가 사는 지금의 세계가 색에 대해 너무 많은 말을 덧붙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튀면 안 되고, 과하면 안 되고, 조화로워야 하고, 무난해야 한다는 기준들 속에서 우리는 점점 색을 조심스럽게 쓰는 사람이 되었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너무 기쁘지 않은 척, 너무 슬프지 않은 척, 늘 적당한 표정을 고른다. 그런 우리에게 민화의 색은 조금 낯설다. 하지만 동시에 묘하게 시원하다. 이렇게 말해도 되는 거였구나.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거였구나.
민화의 색은 그렇게 속삭인다. 숨기지 않아도 괜찮다고. 튀어도 괜찮다고. 적어도 이 그림 안에서는, 마음이 하고 싶은 말을 색으로 그대로 해도 된다고. 그래서 우리는 민화를 보다 말고, 가끔 자기 삶의 색을 떠올리게 된다. 요즘 나는 너무 흐린 색으로 살고 있는 건 아닐까. 혹은 아직도 마음 한구석에, 한 번쯤은 써보고 싶은 아주 선명한 색 하나쯤은 남아 있지 않을까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