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 속 공간은 왜 이렇게 납작할까

by 김단아

민화를 보다 보면 공간이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앞과 뒤가 잘 구분되지 않고, 멀어질수록 작아져야 할 것들이 전혀 작아질 생각이 없다. 집 뒤에 있는 나무가 사람보다 크고, 산은 갑자기 벽처럼 서 있다. 원근법을 배운 눈으로 보면 계속해서 어긋난다. 눈이 자꾸 “이건 아닌데”라고 말한다.


이쯤 되면 한 번쯤 이런 의심을 하게 된다. 정말 몰라서 이렇게 그린 걸까. 그 시절엔 아직 원근법이 덜 퍼졌던 걸까. 아니면 그냥 대충 그린 걸까. 그런데 이 질문은 오래 가지 않는다. 민화를 계속 보다 보면 알게 되기 때문이다. 이건 모른 게 아니라, 굳이 안 한 거라는 걸. 민화의 공간은 못 그린 공간이 아니라, 다르게 선택된 공간이다. 깊이를 계산하지 않은 게 아니라, 깊이를 계산하는 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던 그림이다.


민화는 원근 대신 의미를 배치한다. 멀리 있는 것들이 앞으로 당겨진 이유는 실제 거리 때문이 아니라, 마음속 거리 때문이다. 중요한 것들은 죄다 앞으로 나온다. 그래서 민화 속에서는 모든 대상이 관객과 거의 같은 거리에 있다. 위계는 있는데, 거리두기는 없다. 중요한 건 크게 그리고, 덜 중요한 건 작게 그릴 뿐, ‘저 멀리서 알아서 배경으로 있어’ 같은 취급은 하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민화는 애초에 전시용 그림이 아니었다. 몇 걸음 물러서서 “구도가 훌륭하네요” 같은 말을 듣기 위한 그림도 아니었다.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마주치는 자리, 밥 먹다 말고 고개를 들면 바로 눈에 들어오는 위치. 민화의 무대는 늘 그런 거리였다. 그러니 깊이를 만들 이유가 없었다. 멀어 보일 필요도 없었다. 민화는 굳이 관객을 뒤로 물리지 않는다. 대신 삶을 앞으로 끌어당긴다.


그래서 한 화면 안에서 모든 일이 동시에 벌어진다. 산도 있고, 집도 있고, 사람도 있고, 동물도 있고, 바람도 있다. 순서 없이, 거리 없이, 눈치 없이. 민화의 납작한 공간은 현실을 단순하게 만들려는 시도가 아니라, 삶을 복잡하게 만들지 않으려는 태도에 가깝다. 이것도 중요하고, 저것도 중요하니 차라리 한 줄에 세워두자는 선택. 앞뒤를 가르지 않고, 우선순위를 정하느라 머리 아파하지 않는 방식이다.


그래서 민화를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진다. 어디부터 봐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깊이를 읽어내느라 애쓸 필요도 없다. 그냥 눈에 띄는 것부터 보면 된다. 중요한 건 이미 크기로, 색으로, 위치로 충분히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는 너무 자주 깊이를 요구받으며 산다. 멀리 보라고 하고, 크게 보라고 하고, 늘 한 발짝 떨어져 전체를 보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정작 지금 눈앞에 있는 것들은 점점 작아지고, 아직 오지도 않은 일들만 커진다. 민화의 공간은 그 반대다. 지금 보이는 것을 그대로 중요하게 다룬다. 눈앞의 기쁨, 당장의 걱정, 바로 옆에 있는 사람과 사물들. 민화는 그것들을 굳이 멀리 보내지 않는다. 모두 같은 평면 위에 올려놓고 말한다. 이것도 네 삶이고, 저것도 네 삶이라고.


그래서 민화의 공간은 얕아 보이지만 결코 가볍지는 않다. 깊이를 포기한 대신, 삶을 한꺼번에 꺼내 놓았기 때문이다. 그 앞에 서 있으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인생을 너무 멀리서만 보려고 애쓰고 있지는 않았을까. 모든 걸 이해하려다, 정작 지금 곁에 있는 것들을 놓치고 있지는 않았을까. 민화는 조용히 말한다. 가끔은 이렇게 납작하게 살아도 괜찮다고. 깊은 인생이 꼭 멀리 있는 건 아니라고. 어쩌면 삶은, 이렇게 가까운 것들 사이에서 이미 충분히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KakaoTalk_20260129_083807567.jpg 차 한잔을 마시며 민화를 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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