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는 왜 늘 조금 과할까

by 김단아

민화를 보다 보면 자꾸 이런 말이 튀어나온다. “아니, 굳이 이렇게까지?” 호랑이 얼굴은 몸보다 크고, 눈은 현실에서라면 안과를 한 번쯤 권유받았을 크기다. 꽃은 자연보다 훨씬 크게 피어 있고, 열매는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매달려 있다. 색도 마찬가지다. 조금만 줄여도 될 것 같은데, 끝까지 밀어붙인다. 민화는 늘 한 발짝 정도 과하다. 절제라는 단어와는 그다지 친하지 않은 그림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과함은 실수라기보다는 성격에 가깝다. 민화는 애초에 현실을 그대로 옮겨 놓으려는 그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현실과 똑같이 그리면 그냥 풍경이 되고, 조금 더 키워야 비로소 바람이 된다. 민화는 바람을 그리는 그림이었고, 바람은 늘 현실보다 크다. 지금 가진 만큼만 그리면 소원이 되지 않는다. 조금 넘쳐야 기원이 되고, 조금 과해야 마음이 닿는다. 그래서 민화는 늘 ‘이 정도면 충분한가’를 묻지 않는다. 대신 ‘혹시 모자랄까 봐’ 한 겹을 더 얹는다.


꽃잎을 더 피우고, 눈을 더 크게 뜨고, 웃음을 한 톤 더 올린다. 안전하게 표현하는 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안전하게 살 여유가 없었던 시절의 태도에 가깝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요즘 과함을 꽤 경계하며 산다. 감정도, 욕심도, 말도 적당히 조절하려 애쓴다. 튀면 부담이 되고, 넘치면 민망해지고, 과하면 괜히 미안해진다. 그래서 마음속에서 이미 한 번 걸러진 말들만 입 밖으로 나온다. 민화는 그 필터가 거의 없다.


기쁘면 기쁜 대로, 바라는 게 있으면 있는 대로 그대로 드러낸다. 그래서 민화의 과장은 허세가 아니라 솔직함에 가깝다.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조절할 이유를 느끼지 않았던 시절의 표현이다. 그래서 우리는 민화 앞에서 자꾸 웃게 된다. 너무 커서 웃기고, 너무 많아서 웃기고, 너무 대놓고라서 웃기다. 그런데 그 웃음은 금방 사라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과장 속에, 우리가 요즘 가장 조심스럽게 숨기고 사는 마음들이 그대로 들어 있기 때문이다.


더 잘되고 싶었던 마음, 더 지켜내고 싶었던 마음, 혹시나 놓칠까 봐 크게 외치고 싶었던 마음. 민화는 그것들을 줄이지 않는다. 덜 말하지 않고, 덜 그리지 않는다. 그래서 과하다. 그리고 그래서 버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민화의 과함은 장식이 아니라 생존 전략에 가깝다. 너무 작게 그리면 사라질까 봐, 너무 조용하면 잊힐까 봐, 한 번 더 강조하고 한 번 더 키운 결과다. 그 앞에 서 있는 우리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혹시 나는 요즘 너무 적당하게만 살고 있는 건 아닐까. 마음을 줄이고, 감정을 접고, 바람을 작게 접어 넣느라 오히려 나를 덜 쓰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민화는 그 질문에 굳이 답하지 않는다. 대신 아주 무심하게 말하는 것 같다. 조금 과해도 괜찮다고. 인생은 늘 깔끔할 필요는 없다고. 아주 가끔은, 조금 넘치고 조금 서툴러야 겨우 견딜 만해진다고. 그리고 그 말이 이상하게도, 꽤 오래 마음에 남는다.

KakaoTalk_20260129_212531434_01.jpg 직접 촬영한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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