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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무 Feb 23. 2020

68 - 일상과 이상 사이에서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를 보고


그 옛날 <로미오와 줄리엣>, <타이타닉>으로 심장을 쿵쾅거리게 했던 남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작품 이야기를 하던 TV 방송에서 듣도보도 못한 영화 한 편을 알게 되었다. 내 관심이 이 정도밖에 안됐었나 미안한 마음까지 들어 곧장 찾아보았다. 결론은, 이 영화를 보게 되어 정말 다행이다.


1950년대 미국 중산층을 다루는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프랭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에이프릴(케이트 윈슬렛)이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지는 오프닝으로 시작된다. 이후 좋은 집을 얻고, 딸 아들 키우며 평범하게 살아가던 중 더 이상 권태로운 현실을 버티기 힘들어하다 모든 것을 정리해 프랑스 파리로 가려한다. 꿈에 젖어 설레던 시간도 잠시, 에이프릴은 셋째를 임신하고 프랭크는 회사에서 더 좋은 연봉과 승진을 제안받는다.


극 중 서른 살로 나오는 샐러리맨 프랭크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 그가 다니던 회사는 그의 아버지도 다니던 곳이었는데, 자신은 절대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았었다고. 내 아빠도 엄마도, 그리고 그 위의 부모님도, 또 그 위의 위의 부부들도 가정이란 걸 꾸리고 살며 대부분 그렇지 않았을까. 유령처럼 걸어가는 프랭크의 출근 신에서, 앞치마를 한 채 쓰레기 버리러 나와 먼 곳을 응시하는 에이프릴의 표정에서 오로지 현실을 꾸역꾸역 살아내고 버틴 세상 모든 부부가 보인다.


개인이 처한 현실과 그곳을 벗어나고 싶은 자아 사이에서는  비혼인 나도 날마다 고민하고 방황한다. 지금 나는 맞게 가고 있는가, 내가 진짜 원하는 건 무엇인가. 일상을 잘 살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고, 돈을 버는 과정이 내 이상을 만족시킨다면 금상첨화지만 글쎄, 과연 얼마나 그렇게 살 수 있을까. 내 속만 시끄러우면 될 일을, 이 치열한 자본주의는 나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이웃과 나의 거리감만큼 스스로를 고통 속에 가두고 만다. 가혹한 비교는 정상과 비정상, 현실과 비현실을 낳는다. 그래서 나만의 이상을 좇는 진심은 ‘미친’ 짓이 돼버리기도 한다. 


결국 프랭크와 에이프릴은 파리에 가지 못한다는 싸움이 극한으로까지 치닫고, 다음 날 아침. 출근 준비를 하고 주방에 들어온 프랭크에게 에이프릴이 늘 그랬을 것처럼 인사한다. “굿 모닝.” 무수히 많은 날들을 그렇게, 미친 이상을 숨긴 채 또다시 평범한 일상을 시작한다. (물론 영화의 끝은 평범하지 않지만, 내용은 여기까지.)


시대 배경과 상관없이, 개인의 취향이나 처한 상황과 관계없이 우리는 거의 모든 순간에서 일상과 이상 사이에 걸터앉아 있다. 끊임없이 둘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것이 결국 인생일까. 타인의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으면서 당신은 오직, 당신 마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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