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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무 Apr 04. 2020

86 - 같은 집 다른 커피


학원 때문에 매주 충무로에 다닐 때 처음 알게 된 커피집이 있다. 안 먹어본 커피에 도전하기는 쉽지 않은데, 웬걸! 맛이 꽤 괜찮은데 심지어 양도, 가격도 착했다. 앉을 테이블이라도 있었다면 더 자주 오래 머물렀을 텐데, 테이크아웃 전용 작은 가게여서 아쉬웠다. 20대로 보이던 바리스타는 또 어찌나 친절한지, 주문하는 순간부터 음료를 받아 나올 때까지 기분도 좋아졌다.


이후로 종종 그 집 커피를 마셨고, 오죽했으면 브랜드도 궁금하고 다른 체인점 위치를 찾으러 홈페이지까지 들어 봤다. 점포 개수가 많지 않아 그동안 몰랐나 보다. 자꾸 뒤지다 보니 가맹점 개설 정보와 상담까지 보고 있던 나. ‘이  정도의 맛과 퀄리티라면...?’ 머릿속으로 카페 사장이 된 나를 상상해 봤을 정도다.


1년의 수업이 끝나고 다시 충무로를 갈 일은 없었다. 내 주요 동선에서도 그 카페 브랜드를 볼 일이 없어 잊고 있었다. 그러다 새로 자개 수업을 듣느라 마포 쪽으로 다닐 때 드디어 체인점을 발견하고 어찌나 반가웠는지! 맛있는 그 커피를 드디어 마실 수 있게 됐구나 신이 났다.




비가 마구 쏟아지던 어느 날, 마침 약속 시간이 좀 남아서 그 카페로 향했다. 마포점은 오픈한 지 오래지 않은 듯 내부 인테리어가 깔끔했고 테이블도 넉넉했다. 자리를 잡고 카운터로 가서 주문을 하는데, 무언가 싸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아르바이트 종업원은 아닌 듯했고 어느 정도 나이가 있어 보이는 분이었는데, 세상만사 모든 게 귀찮은 얼굴이었다. 따뜻한 라떼를 주문하고 의자에 앉았더니 우당탕거리는 소리가 시끄러웠다. 그런 거 있지 않나 왜. 나 설거지 지금 하기 싫은데 하고 있다, 그런 투정이 들리는 것 같은 그릇 소리.


라떼를 한 모금 들이키자마자 꽉 잡고 있던 인내심이 와르르 무너졌다. 맛은 둘째치고 혀가 데이는 줄 알았다. 분명 같은 원두와 동일한 레시피를 이용할 텐데 어쩜 이렇게 차이가 날까.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너무 실망스러웠다. 미묘한 차이가 아니라 정말 다른 맛과 다른 서비스였다. 그렇다고 다시 만들어 달라 하기엔 사장으로 보였던 그녀의 리액션이 두려웠다. 아니, 또 만든다 해도 다른 커피가 나올 리 없다. 다시 그 집에 갈 일은 없었다.  


여전히 미스터리다. 물론 마포집 그분이 그날 유독 컨디션이 별로였던 걸 수도 있다. 충무로 알바 친구가 굉장한 실력의 바리스타이거나 사장님께 혼나가며 억지 고객 서비스 중이었던 걸 수도 있다 치자. 기호 식품인 커피가 그날의 날씨나 개인의 기분에 따라 맛을 다르게 느낄 수 있다 해도 말이다. 왜 그렇게나 같은 집, 다른 커피였을까. 여전히 충무로점은 다시 가고 싶은데, 마포는 빠이빠이 사요나라 일까.




내가 장사를 하게 된다면, 그게 온라인이든 실제 매장이 되든 이 경험을 계속 떠올리게 될 것 같다. 손님이 첫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문을 닫고 나가는 그 시간까지, 어떤 정성과 배려를 선사해야 할지 생각해 본다. 단 하나의 무엇을 팔더라도 그 기준은 최선이 아닌, 최대치의 최고점이 되어야만 한다. 아무렇게나 허투루 되든 말든 하는 건 결국 장사꾼의 자격이 아니라고 본다.


아무튼 지금 중요한 건, 이 글을 쓰면서도 충무로 그 집 커피 맛이 생각난다는 거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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