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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무 Feb 13. 2020

58 - 원래 그런 것은 없다


( 고백 1. 요 며칠 도저히 쓸 글이 없다고 생각되어 매일 밤 11시쯤 되어 벼락치기를 했다.

그렇게 억지로 겨우겨우 쥐어짜 낸 것은 글이라고 할 수도 없을 만큼 부끄러운 것이었다.

고백 2.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유혹한다.

그 기저에는 소재 없음에 대한 고민보다 더 큰, 나의 무지와 부족함에 대한 한숨이 가득하다.

고백 3. 이걸 쓰는 시간에 다른 걸 해야 하는 게 아닐까.

당장의 능률이나 결과가 보이지 않으니, 더 중요한 다른 일을 놓치거나 우선순위에서 멀어지는 게 아닌지 고민이다.


그럼에도, 지금 이 순간 나의 동사는 ‘쓰다’이다. )




내일모레가 칠순인 엄마가 지난 설 명절에 선포하신 말씀.

“엄마 칠순 되면 이제 아무것도 안 하련다.”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린 음식만큼 엄마 허리도 휘어지는 걸 안다. 잘 생각하셨다고, 진즉에 그랬어야 했다고 동조를 보탰다. 그러나 이어진 멘트가 문제였다. 하나뿐인 며느리 들으라는 듯, 아들 집에 갈 것이니 알아서들 준비하라는 엄포. 올케는 우는지 웃는지 그 중간 어디쯤의 표정을 보이고, 요즘 그런 시대 아니라며 애써 헛웃음으로 분위기를 바꾸려던 나.


남동생과 올케는 조카들 데리고 본가에서 이틀을 잔 뒤, 설 오후에 돌아갔다. 친구들과 설 풍경에 대해 얘길 하다 보니 이틀이나 잤다는 우리 며느리를 칭찬하느라 난리다. 요즘 그런 며느리 없다면서. 다른 사례를 들으며 나도 그런 것 같다고 생각했다.


가만... 그런데 이런 ‘착한 며느리’의 기준도 참 애매하다. 설날 점심 한끼, 그것도 시어머니가 다 차려놓은 밥상을 먹고 바로 빠이빠이 한다면, 그건 나쁜 며느리일까? 친구의 올케 이야기에 그건 좀 심하지 않냐는 말들이 먼저 튀어나온다. 같은 여자이면서도 우리는 그때그때 다른 잣대를 들이댄다. 여자가 살기에 더 나은 세상을 항상 꿈꾸면서도, 정작 뼛속까지 녹아든 고정관념을 씻어내지 못한다.


얼마 전 만난 후배가 외국 출장을 2박 3일 다고 했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애는?”이었다. 회사 어린이집을 잘 다니고 있는 딸아이는 남편이 출퇴근하며 잘 보살필 게 분명한데 말이다.

지인의 친구가 시엄마를 파출부 부리듯 다 맡긴다는 얘기에 나도 모르게 발끈했다. “그 친구는 손이 없대?”라며 비꼬던 나는 시어머니에게 며느리가 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를 먼저  생각했나 보다. 


여자인 엄마가, 딸이, 며느리가, 시어머니가 모두 각자 처한 상황마다 상식선에서 말하고 행동하면 그뿐일 것을. 우리는 무수히 많은 다른 여자의 남의 일들에 감 놔라 배 놔라 한다. 이 판을 뒤흔들어 새로운 세상이 되기를 기도하지만, 나부터가 당신도, 완전히 새로워질 수 없다면 도돌이표일 뿐이다.


우리 엄마의 마지막 한마디는 이랬다.

“내가 며느리 때 생각하면 이럴 수는 없는 거지. 왜 못해, 며느리란 게 원래 그런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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