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환상의 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서련 May 11. 2021

깨진 날

뉴욕 센트럴 파크의 남서쪽 입구에는 ‘콜럼버스 서클'이라는 광장이 있다. 뉴요커라면 눈에 익은 트레이드 마크가 쉽게 떠오르는 곳, 관광객이라면 별다른 관심 없이 스쳐 가는 곳이었다. 서울로 치면 이순신 동상이 세워진 광화문 광장 같은. 


그날, 나는 뉴요커도 관광객도 아닌 채 그곳에 있었다. 원형 벤치에 앉자, 노숙자들의 구린내가 내 앞으로 둥그렇게 몰려왔다. 정작 나타나야 할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지만. 레스토랑 예약 시간까지는 꽤 여유가 있었다. 게다가, 대학원 첫해를 마치고 내일이면 한국으로 들어갈 나는 웬만한 것들은 거슬리지 않았다. 기다림도, 고약한 냄새도, 근사한 뉴욕의 것처럼 받아들였다. 


어떻게든 견뎌낸 1년이 이렇게 보상받는구나.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광장의 돌바닥을 본다. 일정한 모양의 돌들이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배열되어 있다. 어느 것 하나 금 간데 없이 깔끔한 그것을 멀거니, 꽤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그렇게 15분 즈음 지났을 때,  

“여기 있었네. 오래 기다렸어?” 

드디어 남자친구의 검은 신발이 나타났다. 드레스 코드에 맞춘 세련된 옥스퍼드 구두였다.

“아니 아니, 나도 방금 도착했어!” 

들떠있는 티는 내고 싶지 않았는데…... 모든 것의 기초를 세운 나이 이립(而立)이 되었지만 사회생활의 기초인 연기력이 형편없었다. 아직 만 나이 30살을 채우지 못해 그런 걸지도.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마주 보았다. 뒤쪽으로 광장 중앙에 세워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눈에 들어온다. 더듬이 장식이 달린 우스꽝스러운 모자와 여성스러운 퍼프 소매 가운을 입은 단발머리 남자. 새삼스레 눈에 띈 차림새가 재밌어서 나는 또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기분 탓인지 아니면 땅거미가 지는 어스름한 시간이어서인지, 조각상 얼굴에 그림자가 지면서 묘하게 나를 되비웃는 거 같았다. 마치 앞으로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안다는 듯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학교 다니느라 수고했어. 현아, 너는 첫 1년이라서 특히 더 힘들었지? 장하다. 장해. ”

임용고시에 합격해서 정년퇴임을 하실 때까지, 내 나이보다 더 긴 시간을 초등학교 교사로 일했다는 그의 어머니. 여전히 학교에 다니는 어수룩한 나는 전직 선생님의 능수능란한 친절함에 편안함을 느낀다. 건너편에 앉은 그녀 쪽으로 몸을 기울이자 입에서 대답이 흘러나왔다. 

“어째저째 지나갔어요. 그래도 내일이면 한국 들어가니까 좋아요. 흐흣” 

1년 내내 삽질을 하느라 지친 나는 두루뭉술한 대답을 하고 멋쩍게 웃었다. 남자친구는 그런 나를 보며 옅게 미소짓는다. 응원인지 동정인지 잘 모르겠으나, 나는 좋게 생각했다.

“아들, 너는? 지적 재산권 분야를 하겠다고 일찌감치 정했다가, 저작권 할지 특허 할지 좀 망설였잖아.” 

“아무래도 특허 쪽 수요가 더 큰 거 같아서, 이번 봄 학기에 특허 쪽으로 완전히 돌렸어요. 엄마, 이모할머니는 아직 산호세 쪽에 계세요? 실리콘 밸리 쪽에 관심 있는 회사가 몇 개 있는데…...” 

나와 달리, 철저한 계획에 따라 포크레인을 운전하는 그는 움직일 힘이 많이 남아있는 듯했다. 그와 어머니가 미래 계획에 대해 열을 올리는 사이, 나는 점차 데워지는 물속의 개구리가 되어 평온하게 주어진 현재를 즐겼다.  


“그나저나 여기, 분위기 참 좋다. 야경도 멋지고. 우리 아들이 이런 곳을 다 아네.”

어머니는 내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상체를 크게 돌렸다. 대화의 불균형을 감지하고 본능적으로 나온 말과 행동 일 듯했다. 

“작년에 인턴 했던 회사에서 여기서 식사했었는데, 좋더라고요. 한 번쯤 모시고 왔으면 했어요.”

순간적으로 ‘혹시 나랑도 오고 싶었어?’ 궁금했다. 그러나 어딘가 둔감한 나는 선생님의 노련함에 넘어가 그녀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이곳저곳을 따라다니느라 바빴다. 집요할 수 있던 호기심이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기대했던 센트럴 파크는 그저 그런 새까만 숲이 되어있었다. 오히려 그 옆으로 펼쳐진 빌딩 숲은 밤이 되니 더욱 아름다웠다. 배경음으로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대화 소리가 기분 좋을 만큼 뭉개져 들려온다. 

때마침, 웨이터가 음식을 가져왔다. 오늘의 피날레를 장식할 음식들, 그중 가장 첫 번째 타자는 에피타이저 게살 케이크. 여백의 미를 살린 플레이팅에서 코끝으로 전해지는 고소한 냄새까지 일단 합격이다. 이제 미각을 만족시킬 차례다.


빠각! 


?…….!

나는 식은땀이 쭉 흐를 만큼 놀랬지만, 일행들을 위해 해야 할 말을 침착하게 골라보았다.

“…...깨진 거 같아.”     

“응? 돌 씹었다고?”

고개를 저었다. 대답을 주의 깊게 보지 않은 그는 일단 웨이터를 부를 생각을 하는지 목을 길게 뽑아냈다. 

“혹시 어금니 때운 게 빠진 거 아니니? 얼마 전에 나도 치과 갔었는데…...”

얼굴 표정에서 나의 불안함을 읽은 어머니는 신속하게 상대방을 안심시킬 이야기를 꺼냈다. 안타깝게도 큰 효과는 없었지만. 나는 정면을 보고 다시 말했다.

“앞 이빨이 깨졌어.”


10년도 훨씬 넘은, 중학교 때였다. 나는 술래였고, 친구들은 나를 피해 등받이가 없는 벤치 위를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교복 치마를 낚아채려는 찰나, 헛손질을 하면서 얼굴을 벤치 너머 땅바닥으로 처박게 되었다. 인간 시소가 된 나는 벤치에 널린 내 커다란 엉덩이보다, 눈앞에 보이는 작은 조각이 심히 거슬렸다. 그리고 혀를 움직이자마자 알았다. 앞니가 깨져버렸다. 칼날처럼 날카롭게 변해있었다. 

치아에 레진을 붙여 복구했었다. 그런데, 오랜 시간이 지나서인지 많이 약해져 있었나 보다. 하필이면 평소보다 특별한 날, 그 녀석이 마지막 힘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게살 케이크를 먹으려다, 이런 게 같은 경우가…..!


크게 아픈 것도 아니고 내일이면 한국으로 떠날 테니 괜찮다고 웃어본다. 두 사람은 여전히 조용하다.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내 손가락 사이로 위협적인 앞니가 그들에게 보였을지 모르겠다. 아니면, 입에 넣자마자 사라져버리는 게살 케이크가 어떻게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지를 수 있는지 골똘히 생각하는 중일지도. 

에피타이저 먹을 때 사고가 나는 바람에 수프와 빵, 메인요리와 샐러드, 디저트 때까지 테이블 분위기는 무거웠다. 이것도 나름 부상이라면 부상이라고 환자를 앞에 두고 하하호호 나 몰라라 웃고 떠들 수는 없는 노릇이니. 나는 이빨이 부러지면서 이성도 살짝 마비됐는지 어떻게 저녁 식사를 했는지는 기억이 흐릿하다.  

집으로 오는 길에는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한 손으로는 핸드백을 들고 있어야 했다. 그와 손을 잡지 못했다. 손을 흔드는 인사도 없었다. 깨진 이빨 때문에 키스는 위험했다. 헤어지는 순간 평소처럼 활짝 웃긴 했던가? 아, 이건 아무래도 모르겠다.




당연히, 한국에 도착해서 치과부터 갔다. 의사 선생님은 누가 봐도 흉측한 내 엑스레이를 무덤덤하게 쳐다보았다. 파절된 치아를 갈아내고 크라운을 씌울 거라고 하셨다. 몸이 뒤로 눕혀지고, 입 부분이 동그랗게 뚫린 초록색 얼굴 덮개가 세상을 가렸다. 시끄러운 기계 소음이 더해지자 꿈인지 실제인지 헷갈리는 좀 전의 기억이 또렷하게 떠오른다.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주 긴 통화 연결음을 지나간다. 아마도 건너편에서 전화를 받을까 말까 한참 고민하는 것처럼. 마침내 전화가 연결되었고, 긴 침묵을 지나고 나서야 그의 목소리가 조그맣게 들려왔다.  

 “…….우리 당분간 연락하지 말자.” 

남자들은 종종 사소한 부분에서 여자에게 정나미가 떨어져 버린다고 들었다. 보석이 반짝이는 샌들 사이로 억세게 올라온 엄지발가락의 털이라던지, 옷 소매에 장식처럼 묻어있는 김치 국물 얼룩이라던지, 우주처럼 까만 콧구멍에서 부유하는 듯한 코딱지라던지. 이 정도는 한 번쯤 눈 감아 달라고 부탁할 만한데, 왠지 모르게 깨진 앞니는 그럴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정나미가 뚝 떨어진 남자를 향해 이런 질문을 툭 던지며 마지막 통화를 끝냈다.

“근데 잠깐 연락을 쉬자는 거야, 아니면 완전히 헤어지자는 거야?” 


치료를 마치고 바깥으로 나왔다. 소만(小滿) 무렵이라 그런지 거리에 부는 바람이 제법 쌀쌀했지만, 햇살은 풍부했다. 바람의 방해에도 굴하지 않고, 내 살갗까지 도달한 따스한 볕을 따라 마취가 서서히 풀렸다. 흐트러진 몸의 감각들이 제자리로 돌아오기 시작한다. 일부가 떨어져 나간 곳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신음했다. 피가 맺혀 거슬리게 아프기도 했고 길거리에서 눈물이 흐를 만큼 슬프기도 했다. 


딱딱한 간장 게장도 아니고 부드러운 게살 케이크에 닿자 깨져버린 연약한 것들. 이빨이 깨지지 않았다면 그와 깨지지 않았을까? 아니다, 분명 어느 순간부터 이미 금은 가고 있었다. 언젠가는 벌어질 일이었지만, 아둔한 나는 미리 알아채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어렴풋이 알면서도 애써 보지 않았을 수도. 

4년간의 로맨틱 코미디에서 로맨틱이 깨진 이빨 조각마냥 떨어져 나가고 코미디만 남았던 그 날까지도. 




이미지 출처: Pixabay



매거진의 이전글 엄지공주 (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