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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서련 Sep 01. 2022

가족은 잘 지내냐고?

뒤늦게 찾아온 아하 모먼트 - 가족 사회학과 앨리 러셀 혹실드

대학원에서 논문을 쓰기 위해서는 그저 내가 관심을 가진 분야라고, 내가 흥미를 느끼는 주제라고 해서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대학원생의 글을 반!드!시! 거인의 어깨 위, 그동안 수많은 학자들이 쌓아 올린 선행 연구 위에 있어야만 했다. 그래서 한국인 유학생이었던 나는 그나마 내게 가까운 거인, 한국인 이민자, 그중에서도 그들이 만든 가족을 최종 논문 주제로 선택했다. 영화 인터스텔라가 실현된다면 여기서 나는 시공간의 웜홀을 뚫을 기세로 과거의 나를 향해 소리를 지를 예정이다. 


안돼!!!!!!! 

그렇지만 그 외침이 들리지 않았던 나는 아이는 커녕 반려자를 위한 밥 한번 지어본 적 없는 채 '가족' 사회학을 세부 전공으로 정해 논문을 쓰기 시작한다. 


'가족'은 사람이 태어나 최초로 경험하는 작은 사회다. 작지만 들춰보면 꽤나 역동적인 사회. 부모라는 톱니바퀴에는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중심축이 있고, 여기에 자녀라는 톱니바퀴가 맞물리며 가족이 움직인다. 영어로 자녀는 Dependent라고도 쓰이는데, 말 그대로 부모에게 물질적, 정신적, 감정적 자원을 '의존'하는 존재이다. 대학원을 간 이후에도 오랫동안 의존하는 자로 살아왔던 나는 자녀라는 톱니바퀴가 원체 거대해 보여서 그것만으로도 가족이 굴러가는 상당 부분을 이해할 꺼라 믿어왔다. 그것이 얼마나 오만한 생각이었는지.


인터뷰를 하고, 수많은 논문을 읽어내 다른 이들의 경험을 내 것으로 가져오려고 했다. 근데 파내면 파낼수록 한계가 더욱 드러났다. 내게는 그들의 이야기에서 '부모 되기'의 경험을 꿰뚫어 볼 눈이 없었으니까. 뭐라도 낚아보려고 열심히 손발을 놀려대긴 했다. 끝내 거인의 어깨 위에 비듬 한 조각을 만들어냈다. 논문을 쓰고 무사히 대학원을 졸업했지만 손발을 놀리다 진이 다 빠져 학계에서 마음이 훌훌 떠나버리고 말았다. 그러는 사이 나는 아내가 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나의 가족을 꾸리게 되었다.  


그러다가 지난해 겨울 나의 지인이자 치과 주치의인 A에게서 자신의 어머니도 나와 같은 대학교 사회학과, 그것도 아주 초창기에 졸업하신 대 선배님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한국을 방문했던 A가 어머니가 나에게 전해주라는 책이 있다며 연락을 주었다. 까마득한 아래일지라도 후배라는 인연 하나만으로 얼굴도 본 적 없는 나를 챙겨주신 그 마음이 참 감사했다. 그래서 비록 날라리 사회학도일지라도 판도라의 상자 같은 그 책을 받아 읽게 되었다. 한국 가족사회학의 선구자이신 '(고)이효재' 선생님의 추모집이었는데, 그 안에는 선생님의 학문적 업적뿐만 아니라 그분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의 연구, 가족 사회학 논문들이 함께 수록되어 있었다. 여전히 기교를 부린듯한 학술적 문장들에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날 것 같지만 대학원 당시에 흐리멍덩한 이론들이 좀 더 손에 단단하게 잡히는 이야기들로 다가온 것이 흥미로웠다. 졸업하고 참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아하! 모먼트가 왔다.



2017년 Leland Stanford Junior University 방문 시 모습

책 속에서 다시 만나 반가웠던 사회학 이론가는 바로 '앨리 러셀 혹실드(Arlie Russell Hochschild)'이었다. 혹실드는 '감정 노동'을 최초로 개념화하여 육체 노동자와 정신 노동자로 나뉜 이분법적 산업 구조 인식을 벗어나는 데 기여한 여성 사회학자이다. 감정이 사회적으로 소비되는 과정에 얽혀있는 젠더적 속성을 분석하여 역사적으로 남성이 우세했던 '일'이라는 공적 영역, 뿐만 아니라 '가족'이라는 사적 영역에까지 노동의 의미를 확장시켜주기도 하였다. 몇 년 전 유튜브에 #WorldToughestJob(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라는 태그와 함께 유행했던 영상이 있는데, 어떤 직업인지 공개하지 않은 채 해야 하는 일들을 담당 업무처럼 사무적으로 설명하면서 당신은 이 포지션에 지원할 수 있겠냐고 묻는 가상 인터뷰였다. 실제로 아내로서 엄마로서 가족에서 행하는 일들은 바깥일에 견주어질만큼 엄청난 노동력과 기술을 요구하지 않는가? 요리, 청소, 빨래에 영 재주가 없는 나는 업무에 적응하기까지 정말 육체적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는데, 여기서 튀어나오는 불안과 짜증은 결혼을 선택한 여자라면 해서는 안 되는 선택지처럼 여겨져서 더욱 힘들었었다.  


수많은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주어진 기대를 부응하고자 할 때, 어떤 감정을 어떻게 표출해야 하는지 마저 요구받는다. 항공기 승무원이라면 짜증을 드러내지 말고 친절해야 한다던지,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면 헌신적이고 자애로운 모습을 잃지 않아야 한다던지. 혹실드는 이런 미칠듯한 상황을 빠져나갈 수 없는 여성들이 각자의 생존 전략으로서, 사회적 기대와 실제 자아의 분리, 일종의 자아 분열을 통해 자기를 지켜내고자 애쓰는 처절한 모습을 관찰하고 기록했다. 그녀의 통찰이 담긴 책, <감정 노동: 노동은 우리의 감정을 어떻게 상품으로 만드는가 (원제는 The Managed Heart: Commercialization of Human Feeling인데, 한국 번역본 표지에는 Emotional Labor라고 나왔다)(1983)>을 읽으면 같은 여성으로서 공감이 되면서도 한편으론 마음을 칼로 푹 찌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아마도 혹실드가 여성들의 경험을 글로 옮겨 적은 지 40년, 거의 반세기가 가까운 시간이 지났더래도 여성을 향한 노동 환경에 그럴듯한 변화는 없기 때문이다. 


찾아보니 혹실드의 한국어 저서는 모두 동일 출판사인 이매진에서 나왔네요 :)


비교적 최근의 저작인 <가족은 잘 지내나요? (So How's the Family?:and other essays)(2013)>는 노동으로서 감정을 낱낱이 파헤친 그녀의 시선을 가족에게로 더 가까이 옮겨왔다. 육아와 돌봄에 있어서 감정은 필수적이고, 이에 따라 가족이야말로 그 어느 영역보다 감정을 적극적으로 사고파는 시장이 되었다. 나도 그랬고, 당신도 그랬을 것이다. 아이를 낳고 비용을 계산하고 남편과 상의를 하여 이모님을 인터뷰하고 한동안 고용하기도 했고, 어떤 학교가 괜찮을지 이리저리 투어를 해보고 필요 서류를 준비해서 제출하고 일정 비용을 매달 지불하며 하루에 2번씩 아이를 차에서 내리고 올리는 일상을 수없이 반복한다. 이러한 일상은 둘째와 함께 나에겐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이제는 혹실드의 책에 나오는 복잡다단한 심경, 일을 하러 가기 위해 아이가 아프더래도 어린이집에 떼어놓고 나오는 누군가의 감정, 미국에서 일하는 이주 노동자이자 아이의 엄마인 누군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부족하지만. 


'감정'이란 녀석은 눈앞에 턱 하니 보이지도 않고 심지어 본인조차 자신의 감정 상태가 어떤 건지 파악이 안 될 때도 더러 있기에 부조리한 상황이 부조리한 줄 모른 채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마냥 시간을 흘려보낼 때가 많다. 내가 몸담고 있는 작은 사회, 가족 안에서 노동을 좀 더 정의롭게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본다. 그래야 다음 세대가 꾸리는 가족의 모습은 조금 더 달라질텐데......으, 쉽지 않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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