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확진되어 방에서 격리를 한 지 벌써 11일에 접어들고 있다. 첫째 아이, 나, 둘째 아이 이렇게 순차적으로 병에 걸려들었고 그 순서를 꼬박 지켜내며 나아지는 중이다. 3평 남짓 방에서 어른 하나와 아이 둘이 할만한 일이 뭐가 그리 있을까. 밥 먹고 보드 게임하고 그림 그리고 책을 읽어도 시간이 남아돈다. 끝내 하루 중 몇 시간을애들한테티브이 틀어주고 나는 책을 읽으며 보낸다. 죄책감이 드는 시간 안에서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격리 기간 중 읽은 책이 참 흥미롭다는 거.
이슬아 작가님의 첫 번째 장편 소설 "가녀장의 시대"
소설에는 이슬아 작가님의 본인을 비롯하여 작가님의 엄마이자 출판사 직원 복희님, 아빠이자 딸의 출판사를 여러모로 돕는 웅이님이 등장인물로 나온다. 작가님의 진짜 삶에서 튀어나온 인물들이 허구의 이야기를 손에 잡히는 현실처럼 들려준다.
딸이 차린 출판사와 그 회사에 고용된 엄마와 아빠. 집이라는 사적인 공간과 회사라는 공적인 공간이 얼버무려지고, 부모와 자녀라는 수직적인 관계가 뒤집어지고 생계부양자라는 책임과 권위가 남성에게서 뜯겨져 나간다. 기존에 우리가 알던 질서가 뒤바뀐 모습이 낯설어서 굳이 웃기려고 하는 게 아닌 거 같은데 한 편의 시트콤을 보는 것처럼 폭소를 자아낸다. 예를 들면 출판사 대표의 모습으로 운전기사 노릇을 해주는 아빠에게 (법인?) 카드를 건넬 수 있는 딸의 카리스마, 집밥인지 회사 밥인지, 여하튼 슬아와 웅이의 식사를 담당하는 복희가 마음 놓고 친정집에 된장을 만들러 갈 수 있도록 비용도 시간도 후하게 지원하는 가녀장의 모습. 크으으으으, 너무 멋지다.
그리고 슬프다.
현실과 환상의 아슬아슬한 경계에 있지만 현실에 발디딘 이야기라서 내 마음을 후벼 파듯 너무 슬프다. 나는 가방끈이 길어도 졸업 후 취직에 실패했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글이라도 써보려고 발버둥 치는 지금은 아무런 경제적 기여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아이 둘을 키우는 가정집의 생계 부양자가 되기 위해서 책을 1년에 서너 권 출판하는 생산 속도를 갖추고 그 책들은 베스트셀러가 되어야 하고, 그 외에도 강연이라던지 정기 연재 칼럼을 쓰면서 바쁘게 바쁘게, 소설에 나오는 슬아보다 더 바삐 살아내야 한다. 책 한 권도 출판 못한 지금으로서는 가녀....아니 가모장의 꿈은 허무맹랑하게 느껴진다.
돈도 안 벌고 그저 아이 둘 뒤치다꺼리만으로도 이미 지쳐버리는데, 어떻게 슈퍼 히어로 같은 생계 부양자로 변신이 가능할까? 그래서일까, 할 수만 있다면 나는 '가장'이 되어보고 싶다. 그것도 '가장' 간절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