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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서련 Oct 13. 2024

배움은 나누려고 해

2024년 10월 - 선생(先生)

나를 찾아가는 단서, 세 번째는 배움의 나눔이다. 선생님으로 불릴 때도 있고, 그러지 않을 때도 있다. 선생님으로 불리지만 교회 영아부 교사처럼 돈을 받지 않을 때도 있고, 직업적인 일을 해서 월급을 받을 때도 있다. 모든 경험의 근간에 흐르는 공통점이라면 내가 가진 것을 - 때론 용기 내서 - 앞에 나가 나누어주고,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가닿는 순간에 내 마음에 몽글몽글한 기쁨이 솟아오르는 것이다.   




몇 번 언급되었다시피 작년 여름에 어릴 때 배워둔 발레를 다시 써먹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집 앞에 생긴 학원에서 파트타임 매니저로 일을 시작다가 어린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티칭 기회까지 생겼던 것이다. 꼬꼬마 댄서들을 가르치는 일은 일반 수업에 비해 정신이 쏙 빠지고 힘들기도 지만 꽤나 보람다. 무대에서 아름다운 춤을 추는, 자신의 춤에 온전히 집중하는 발레리나는 아니지만, 두 아이의 엄마를 거쳐온 내가 발레 선생님으로서 가질 수 있는 강점을 분명 알 수 있었다. 애를 안 키워봤으면 분리불안으로 울고불고 난리난 아이를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깜빡하고 아이의 슈즈나 무용복을 챙기지 않은 다둥이 엄마들에게 못마땅한 눈빛을 보냈을 수도 있을 테다;;;


하지만 1년이 지나고 안타깝게도 매니저 일을 그만두게 되티칭도 못하게 되었다. 


이대로 티칭 커리어도 끝나는 건가 싶을 때에 둘째가 어렸을 때 다녔던 학부모 참관 발레 수업이 떠올랐다. 그 수업은 내가 살던 시티에서 주관하는 수업으로 장소는 어린이 연극 센터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이루어졌었다. 나는 곧장 센터장에게 이메일과 레쥬메를 보냈다. 3주 넘게 답장이 없었는데 왜인지 모르게 오기가 생겨서 이메일과 레쥬메를 종이로 출력해서 센터까지 직접 방문을 하였다. 마침 그곳에 있던 교육 부서 센터장과 얼굴을 대면하여 레쥬메를 전달할 수 있었다.


수업이 진행되는 스튜디오. 유리창이 참 예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인터뷰가 진행되었고, 여기에서 뜻밖의 제안(이건 다른 글에서 더 자세히 다룰 예정 ^^;)이 먼저 이루어지고 댄스 클래스를 맡는 일은 미지수인 채로 헤어지게 되었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뒤, 가을학기에 일주일에 한 번 발레와 댄스 클래스도 가르칠 수 있는데 해볼 수 있겠냐는 제안을 받게 되었다. 야호~


나는 기쁜 마음으로 오퍼를 고 지난주였던 10월 첫째 주 목요일부터 가을학기 첫 수업을 하게 되었다. 30분이긴 하지만, 무려 5개의 클래스를 3시간에 걸쳐 진행한다. 발레뿐만 아니라, 일반 댄스까지 있어서 우아한 클래식 음악과 경쾌한 팝음악 두 가지를 - 이중인격자처럼 ㅋ -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수업을 한다. 지난 한 해 영유아 발레 2개, 총 1시간 30분 정도를 수업해 본 것이 좋은 준비가 되었던 거 같다. 점진적으로 업그레이드가 이루어져서 천만다행이지 처음부터 5개 했으면 기절했을지 모른다 ㅋㅋㅋㅋㅋ




지난주 첫 수업을 모두 마치고 운동소모임의 단톡방에 스튜디오의 창가를 찍어 인증샷으로 보냈다. 오늘부터 아이들 발레와 댄스를 가르치게 되었는데, 댄스 클래스를 운동 인증으로 대체하겠다는 이야기를 보냈다. 많은 분들이 수업을 하게 된 것을 축하해 주셨고, 단톡방에 계시는 한 분께서는 우리 모임에도 댄스클래스 한번 열어주심 안되냐는 이야기를 하셨다. 가볍게 던진 제안일지 모르지만 ㅋㅋㅋ <계획된 우연 이론>을 들었던 나는 그것을 덥석 잡았다. 해드릴 수 있다고 대답을 하고 댄스 클래스에 관심을 보여주신 서너 분과 함께 일사천리로 장소와 스케줄까지 확정 지었다.

배움을 나누는 순간, 내가 행복해 보이는 거 같다.

잡을 수 있는 바 Barre가 있고 평평한 바닥이 있었다면 좋겠지만, 그런 것들이 갖춰지지 않으면 뭐 어떠랴. 발레를 배워보고 싶은 마음을 가진 성인 여성 4분 (+ 아기 손님)을 모시고 동네 공원에 모여서 내가 알고 있는 발레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나눠드렸다. 예전에 선천적으로 타고난 사람은 가르치는 일이 힘들다는 것 들었었다. 본인은 그냥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걸, 이걸 어떻게 해야 한다고 설명하는 게 힘든 부분일 테다. 그런 면에서 발레리나로서 선천적인 재능이 많이 부족했던 나는 좋은 선생님이 될 자질을 갖춘 것일지도 모르겠다.


블루투스 스피커를 들고 가서 좋아하는 피아니스트의 발레 음악을 틀었다. 발레는 역시 음악이 7할이니까! 평소에 발레 하는 사람들을 보았을 때 서 있는 자세와 포스가 일반 사람들과 다르다고 느꼈을 텐데, 그런 자세가 나올 수 있는 지점들을 - 아이들 수업에서 하듯이 ㅋ - 쉽게 설명하며 상체 관련 운동을 했다. 토슈즈를 준비해 가서 사람들이 만져보게 하고 이렇게 망치처럼 딱딱한 신발을 신고도 멋진 춤을 추기 위해서는 발에 있는 소근육을 엄청나게 발달시켜줘야 한다는 점을 알려드리고, 발 운동도 했다. 바닥이 매끈하지 않아서 탄듀 한번 하고 데가제까지 진행하기가 힘들었지만 내가 알고 있는 용어가 불어로 무슨 뜻인지, 어렸을 눈으로 보고 무작정 따라 할 때는 몰랐지만 나이 들어서 인스타나 유튜브를 보면서 발레 움직임이 돌아가는 메커니즘을 깨닫고 나도 너무 흥미롭게 알게 된 부분들을 몽땅 나눠드렸다. 수업을 마친 뒤에는 (준비해 갔던 카스테라 빵을 나눠먹고 ㅋ) 단톡으로 발레 관련 유튜버 사이트들을 추천해 드리며 마무리했다. 


말씀이 마음에 심어지는 순간(이라고 믿는다 ㅋㅋㅋ 맞지, 얘들아?)

자청님의 책 "역행자"를 보면 초보가 왕초보를 가르치는 것은 가능하다고 했는데 그 사실에 나도 동의한다. 비단 발레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배운 것이 비록 전문가 수준이 아닐지라도 나눌 수 있다면 나누고 베풀어가는 게 내 삶의 가치관, 더 나아가 크리스천으로 살아가는 방향에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의도한 영향력으로 인해 사람들에게서 기쁜 웃음, 때로는 진지한 눈빛을 마주하는 게 좋다. 


기쁜 웃음과 진지한 눈빛의 참맛을 알게 된 건 아마도 교회 영아부 교사를 할 때이다. 만 1세부터 3세까지 아이들을 맡아주는 부서인데 설명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아기들이 대다수이기에 성경을 가르치기 위해서 참여 연극처럼 준비를 하는 편이다. 아이들은 기도하는 모세 앞으로 갈라진 홍해를 따라 걸어가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되고, 야곱이 돌베개를 베고 잠이 들어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을 때는 누워서 잠을 청한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날에 대해 배울 때는 당나귀 라이드(마침 장난감을 가지고 계신 집이 계셨음 ㅋ할렐루야!)를 타고 야자수 이파리를 들고 환영하는 인파 속을 지나가게 하였다. 아이들이 말은 못 하지만, 이렇게 활동을 하고 나면 표정에서 진실한 대답을 듣곤 한다. 말씀의 씨앗이 내 마음에 심겼노라고.  


다음 주 금요일에는 테이크 루트 주최로 아마존에서 독립 출판했던 경험나눠드리려고 한다. 부담 없이 오시라고 참가비가 없는 무료 워크숍으로 해달라고 부탁드렸다. 아마존에서 2권의 책을 출판하면서 경험한 전체적인 과정을 알려드리면서, 워크숍에 오시는 분들은 내가 겪은 삽질 하지 마시라고 실수담을 잔뜩 풀어내고 올 예정이다. ㅋ 선생님이 가지는 책임에만 집중해 버리면 그 자리가 너무 무겁게 느껴질 수 있지만, 나는 가볍게 내가 했던 소소한 경험과 배움을 퍼다 나르려고 한다. 나는 그저 먼저 태어난, 혹은 먼저 경험해 본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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