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 골프
나는 어릴 때부터 팔 (+손목) 힘이 부실했다. 초등학교에 있던 철봉은 쉬는 시간의 꽃이었는데, 그중에서도 구름다리를 한 칸, 두 칸씩 슉슉 넘어가는 친구들을 보면 너무 부러웠다. 대부분 여학생들도 10미터는 가뿐히 넘겼던 공 던지기 체력장도 마찬가지다. 내가 온 힘을 다해 던졌더니 나온 결과 '7미터', 뒤에서 구경하던 아이들이 빵 터졌고 성격 좋은(?) 나는 걸어 돌아오며 나 자신을 향해 함께 깔깔거리며 웃었다. 부끄럽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하면서, 진짜 웃기기도 했던 그 순간의 묘한 감정은 지금도 선명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즈음부터 본격적으로 배운 발레는 튼튼보다는, 나풀거리는 종이 인형 팔에 가까워서 별 다른 문제 없이 초등 고학년과 중학생 시절이 지나갔다. 고등학교 때 구기 종목할 때마다 좀 껄끄러웠지만 그 3년을 보내고 나니 나의 삶에서 온 힘을 다해 공을 던지는 기회는 거의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다만 30대가 되어 아이들을 낳고, 힙시트를 의지하여 아이를 안아 올리느라 팔힘이 살짝은 좋아졌으리라. 근데, 늘어난 팔뚝살을 보면 힘이 더 좋아져야 할 거 같은데 팔 굽혀 펴기 서너 개도 여전히 버거운 요즘이다. 손목은 여전히 얇은 편에 속해서 팔뚝에서 손목으로 가는 길이 거의 역삼각형 느낌이다 ㅋ
이런 팔을 가지고, 지난달부터 던가 간간히 -- 일주일에 한 번 그마저도 시간을 못 내면 2주에 한번 -- 골프를 배우기 시작했다. 슝슝 날아다니는 구기 종목엔 젬병이지만, 이건 그래도 한 자리에 가만히 머물러 기다려주는 착한 공을 쳐내는 작업이니까 조금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여행을 다니다 보면 호텔 리조트에 골프 코스가 딸려있을 때가 많은데, 나이 든 사람들도 칠 수 있는 걸 보면 나의 노년까지, 그리고 우리 아이들까지 배워두면 온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건강한 인생 스포츠가 될 수 있으려나 했다.
신랑은 6개월 전 즈음부터 시작해서 이제 막 초보 딱지를 뗀 듯하고, 첫째 아이는 우리가 사는 지역의 비영리 단체에서 운영하는 저렴한 가격의 레슨을 9월부터 시작했다. 즉, 신랑은 초보, 나와 첫째는 왕초보 상태이다. 골프장에서 아이를 픽업해 오는 건 주로 신랑이 하는데, 아직까지 아이가 골프를 하고 싶어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아이의 마음을 충분히 알 것 같다. 나는 일반적인 초보들이 시작한다는 7번 아이언도 너무 무겁고 골프채와 함께 내 몸이 휘청거리는 느낌이다. 쳐낸답시고 했는데, 내 발과 공을 같은 프레임에 넣을 수 있는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거리만큼 나갔다 ㅋㅋㅋㅋㅋ 엊그제에는 너무 의욕적으로 쳐내려다가 순간적이지만 왼쪽 어깨가 빠져나갔다가 다시 제자리로 들어오는 듯한, 생각만 해도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ㅜㅠ
고지식한 모범생, 딸만 둘인 집의 막내딸, 가방끈 긴 대학원생으로 살아온 인생 3박자가 합쳐져 나는 다른 사람의 피드백이 나와 충돌할 때 그걸 내 것으로 순순히 받아들이는 걸, 아니 적어도 받아들이는 척 연기하는 걸 너무 못한다. 단서련의 단서 수집, 나는 내가 무언가를 잘 못 한다는 걸 인정하기 싫고 그래서 그런 소리 들을 일을 최대한 피하고 싶다. 피드백을 곧바로 반영하여 효율적으로 성적을 올리는 일류 모범생은 아니고 고집불통 삼류 모범생이라고 해야겠다. 못한다고 해서 내팽개치는 건 아니다. 필요하다면 죽도록 연습해서 적정 수준으로 넘어가는 게 나의 성정이다. 나이가 들고 나에게 주어진 개인시간도 많지 않으니 잔소리를 안 들으려고 죽도록 연습하기보다 그때 그때 들려오는 피드백을 흘려듣다가 꼭 필요한 것만 주어 담는 게 지혜일지 모르겠다. (주님~)
여하튼, 며칠 전 골프 연습을 하러 나갔을 때 왕초보인 나에게 자신이 겪었던 이런저런 경험을 나누면서 열심으로 이것저것 조언해 주는 신랑이 못 미더워졌다. 내 마음 안에서는 왜 내게 연습할 시간을 충분히 주지 않는 거야.... 라며 마음이 굳게 닫혀갔다. 친절한 말로 설명하려던 신랑도 두터워지는 내 얼굴 방패를 보며 점점 뾰족해지기 시작했다. 안 봐도 뻔한 결과지만 우리는 서로를 겨누는 창과 방패가 되어버렸다.
종소리를 들으면 침을 흘리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골프 연습장을 보면 다퉜을 때 느꼈던 원망과 혐오의 침을 나도 모르게 줄줄 흘릴 듯하다. '아오, 이거 그냥 때려치우고 말지.......'라는 마음도 있지만 앞으로 무언가를 새롭게 배워나갈 일이 태산처럼 많은 우리 아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본보기가 되는, 포기하지 않는 어른이 되고자, 나는 종소리가 배고픈 배를 채울 수 있는 먹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붙잡으려고 한다. 골프는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는 운동이 아니라는 걸 믿고, 혼자서 개인 연습을 해야겠다는 결심이 생겼다. 운전에서도 그랬듯, 일단 스스로 왕초보 딱지를 떼는 작업이 필요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