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서련 Nov 03. 2024

퍼즐 메이커: 작은 조각에서 큰 그림까지

10월 - 하나님

나는 모태 신앙이 아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20년 넘게 한국에서 살았었는데, 그때 나는 내가 착하게 - 큰 문제 일으키지 않고 - 잘 살고 있다고 착각했다. 통일교 중학교, 불교 고등학교를 지나 기독교 가치관의 대학교로 진학했다. 대학교 캠퍼스의 강의실 여기저기 이동할 때마다 나에게 전도하려고 다가오는 사람이 꽤 있었다. 그 사람들이 뿌린 씨앗은 내 마음 밭에 닿지 못하고 길가에 떨어져 버렸다. '나는 잘 살고 있는데 왜 나를 '죄인'이라고 기분 나쁘게 하는 거야?'라고 생각의 새가 씨앗을 물더니 멀리 날아가버리곤 했다. 


이전 글에서 나는 피드백을 받으면 적극 수용하는 일류 모범생이 아니라, 내 고집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삼류 모범생이라는 단서를 잡았다. 그러다 보니 도보로 2-3개월 걸린다는 이집트~가나안 거리를 40년에 걸쳐 들어가는 이스라엘 사람을 딱 닮아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딱 맞는 방법으로 만나주신다는데 한국에 있다가는 내가 영영 주님을 모르고 살 것 같으니 나에게 맞는 극약 처방을 해주셨다. 미국으로, 깡시골로, 아무도 없는 곳으로! 그래서 만나고 말았다.


뒤돌아 보니 가랑비에 옷이 젖어가 듯이 하나님을 만났다. 기적같이 하나님을 만나 눈물을 펑펑 쏟는 간증은 아니지만 그건 내 성격 탓도 있으리라. 나는 공대생처럼 아주 이성적인 성격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예술가처럼 감수성이 풍부한 것도 아니다. 둘 중 하나를 꼽자면 감수성이 메마른 무미건조한 편인데, 덕분에 삶의 우여곡절들을 다소 덤덤히 넘어가는 좋은 점도 있다. 극적인 경험이 없지만 언제부터인가 사람들과 말씀을 나누다 보면 당시에는 잘 몰랐는데 지나고 보니 '하나님이 관여하셨구나........' 깨닫는 지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만드신 작은 퍼즐 조각을 수집하고 연결시키는 재미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단서련의 단서 수집에 부제를 붙인다면, 나를 만드신 하나님의 '퍼즐 조각 맞추기'다. 작은 조각만 봐서는 어떤 그림이 완성될지 모르지만, 조각이 모두 모여 큰 그림을 이루리라는 사실을 믿고 있다. 모든 퍼즐이 그렇듯이.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실상이라는 게 이런 말인가 싶다. 내 앞에 놓인 것이 메이커가 만든 작은 퍼즐 조각임을 알아챌 때, 그것과 주변의 조각의 요철이 딱 맞아떨어질 때, 연결된 그림이 지금은 결코 알 수 없는 큰 그림을 살짝 엿보게 해 줄 때 느껴지는 쏠쏠한 재미가 있다.  


소소한 일상 가운데 잔잔하게 스며드는 하나님의 향기도 좋지만, 종종 구약에 나오는 하나님도 경험하고 싶다. 이름을 부르고 대화를 하고 약속을 눈 앞에 보여주시는 하나님. 더 직접적이고 날 것(?) 그대로인 하나님도 알고 싶었다. 구약의 하나님과 나의 하나님은 동일한 분이라고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일까, 지난 화요일 신랑과 다투는 일이 있었고 어찌 됐든 일상이 굴러가야 하니까 서로 화해를 했다. 급한 불은 껐지만, 마음에 난 상처는 작은 불씨로 남아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사탄이 상념의 바람을 아주 조금, 후~후~ 불어넣으면 불씨로부터 뜨거운 불이 타오르는 걸 반복했다. 가슴에 무겁고 뜨거운 것에 눌린 채 아이들 방에서 잠이 들었다. 


나는 한번 잠이 들면 아주 깊이 드는 편인데 그날은 새벽에 불현듯 정신이 들었다. 여전히 눈을 감고 자는 듯이 보였지만 아무런 이유 없이 갑자기 잠에서 깨버린 것이다 (애들이 옆에서 깨우지 않는 이상, 이런 일이 별로 없다 -,.-;;;) 그로부터 10초 정도 지났을까, 아이들 방문을 열리더니 신랑이 걸어 들어와 내 머리에 두어 번 손을 얹으며 기도를 했다. 들리지는 않았지만, 하나님께 회개하면서 나에게 남아있을 상처를 보듬어 달라고 부탁하는 기도로 느껴졌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이 순간을 놓치지 않기를 바라며 나를 깨우셨던 게 아닐까? 그러다가 내가 지금 하나님을 만난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밤하늘의 셀 수 없이 많은 별을 보며 약속을 주시고, 고난 가운데서도 붙잡을 수 있는 꿈을 보여주시고, 잠자리에 들려는 아이의 이름을 사랑스럽게 부르셨던 하나님 말이다. 짧았지만 명료했던 그 생각에 사로잡혔다가 다시 잠을 청했다. 작은 불씨도 남지 않도록 물을 쏟아 꺼트려서인지, 가슴에 무겁고 뜨거운 것이 사라진 채 깊이 잠이 들었다. 




그 일이 있은 후 하나님과의 만남(?)을 까먹고 싶지 않아서 글로 기록하기로 했다. 며칠에 걸쳐 초안을 써가고 있었는데 어제는 마침 일본어 성경 공부가 있었고, 이런 부분이 눈에 띄었다. 


‭‭에베소서‬ ‭2‬:‭20‬-‭22‬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21.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일본에서 살다오셨던 자매님이 '서로 연결된다 組み合わされる(くみあわされる)'라는 동사를 설명하는데, 이건 레고나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걸 생각해보라고 한다. 자매님은 모르셨겠지만, 하나님은 내 브런치 서랍장에 어떤 글이 있는지 아신다는 듯 둘만이 눈치챌 수 있는 이런 재미를 스윽 보내주셨다. 비밀 연애라도 하듯이 나는 그걸 놓치지 않고 알아챌 수 있었고, 그 의도하신대로 행복의 웃음이 피식 나오고 단어도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어떤 그림이 완성될지는 모르지만 그동안 맞춰진 조각을 들여다보며 확신해본다. 이 퍼즐을 만드신 이는 작은 조각이 어떻게 연결되야 하는지 아시고 큰 그림까지 이미 다 완성해놓았다는 사실을.  

이전 06화 삼류 모범생과 골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