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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환상의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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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서련 Aug 28. 2020

격리의 시대, 얽힘을 갈망하다

어떤 이의 연애담

그 해는 새로운 시대의 서막이 되었다. 무증상자를 포함하여 전세계 인구 2/3가 감염되면서 집단 면역이 형성되고 믿을만한 백신이 개발되어 사람들은 마침내 지긋지긋한 전염병으로부터 무사히 벗어났다고 안심했다. 하지만, 숨돌릴 틈도 없이 지구에는 또 다른 바이러스가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웠다. 잦은 주기로 찾아오는 강력한 바이러스 덕분에 예방 목적의 전국민 자택격리가 일상이 된지 어느덧 100년이 흘러버렸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인간이 태어나서 많은 시간을 쏟아붓는 사회적 공간들이 대대적으로 탈바꿈했다. 학교는 100% 온라인으로 진행되어 수십명의 아이들이 부대끼며 서로 웃고 떠들던 교실, 수백명의 전교생이 모여 뙤약볕 아래서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을 듣던 운동장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직장 또한 거의 모든 직업군에서 재택근무 및 자동화 기계를 도입하여 나날이 높아지는 인류의 비대면 요구를 충족시켰다. 집은 거리에 구애받지 않고 구성원간의 면대면 상호작용이 허용되는 유일한 물리적 공간으로 남게되었다. 쉬지 않고 돌아가는 24시간 체제 안에서 사람들은 입고, 먹고, 자고, 공부하고, 일도 했다.


한 평생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두 사람이 하나의 살림을 꾸린다는 것은 이미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는 것인데, 격리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결혼에 따르는 부담이 한층 더 무거워졌다. 소개부터 데이트까지 어딘가 2% 부족한 온라인 연애를 하면서 정신적으로 - 그리고 바이러스 감염위험이 적은 - 신체적으로도 믿을만한 파트너를 찾아야만했다. 모든 기능이 집약된 가정 공동체에 올인하는 도박이 바로 이 시대의 결혼이다. 이에 따라 연애의 기간은 아주아주 짧거나 혹은 아주아주 길어졌다. 철수는 후자에 속했는데, 온라인으로 27살에 처음 만난 동갑내기 애인 영희는 어느새 37살이 되어있었다.  


사람 관계에 깊이 시달리지 않아서 격리의 시대가 맘 편하고 좋다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었다. 하지만, 철수를 포함하여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이 나와 타인이 같은 공간에 얽혀야만 느낄 수 있었던 것들은 갈망했다. 그들은 격리의 시대 이전의 일상을 경험해보진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그것들이 그리웠다. 몇일 전, 철수는 자기 앞에 놓여있는 3D 초대형 전신 모니터를 보면서 영희의 미묘한 표정 변화를 유심히 지켜봤다. 왜? 내 얼굴에 뭐 묻었어? 분위기를 바꾸려고 명랑하게 질문을 던지는 영희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울려퍼진다. 하지만, 영상표시장치로부터는 그녀의 느린 호흡도, 따스한 체온도, 부드러운 살결도 느낄 수 없었다. 




이 시대의 과학 기술은 격리로 인해 멀어진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며 발전해왔다. 상대방과 본인의 DNA 신체 정보를 가상 공간 내에서 접촉시켜 버츄얼 컨택트를 생성시키고 이것을 현실에서 동기화시키기 위한 노력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처럼 검지손가락 끝과 끝이 맞닿을 수 있었을 때 사람들은 기쁨으로 환호했다. 손끝에서 손가락 한마디로. 한마디에서 세마디 온전한 손가락 하나로. 이제는 손과 손을 잡을 수 있을 정도로 기술이 발전했다. 영희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그날, 철수는 버츄얼 컨택트 회사를 알아보고 충동적으로 예약을 잡아버렸다. 손이라도 좋아. 그녀를 향한 사무치는 마음,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타인의 몸에 얽히고 싶은 절실한 욕망이 철수의 손을 움직였다. 그리고 지금 철수와 영희는 각자의 공간에서 모니터를 바라보고 대기 중이다. 원격조종 시스템이 분주하게 움직이다가 마침내 두 사람에게 동시에 질문을 던진다.


버츄얼 컨택트 동기화 실행하시겠습니까?  


"예"를 누르고 철수는 자신의 오른손에 온 감각에 집중했다. 손바닥을 살포시 맞대며 서로의 체온을 나누었다. 오래된 연인의 손인데 심장이 터질듯이 쿵쾅거려 몸 밖으로 소리가 새어나오는 것 같아 민망했다. 영희도 조금 긴장한 듯 미세하게 손이 떨리는 것 같아 위안을 삼았다. 시간이 조금 흘러 긴장이 누그러지자, 이번에는 다섯 손가락을 엇갈려서 그녀의 다섯 손가락에 깍지를 꼈다. 그리고 천천히 깍지를 풀어내려 그녀의 손바닥 주름을 손가락으로 찬찬히 흝었다. 시각을 잃은 사람이 점자를 읽어가듯. 이 손금은 우리에게 어떤 미래를 예언하고 있을까. 간지러운지 움찔거리는 그녀의 손이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놓치고 싶지 않아 꽉 움켜잡았더니, 영희도 기분이 좋은지 나를 보고 웃어준다. 아, 오랫동안 잊고 있었구나. 살과 살이 맞닿아있는 것이 얼마나 황홀한지. 비용이 부담스럽긴 했지만, 하길 참 잘했다. 기분이 좋아져서 주책맞게 입꼬리가 계속 실룩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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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logue

A: 서비스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이번주 버츄얼 컨택트를 최초로 이용한 신규 고객들에게서 공간 좌표 오류가 확인되었습니다. 공간 좌표 오류시, 지정된 사용자가 아닌 다른 사용자의 신체 정보가 접속될 확률이 높게 나타났는데요. 기자 회견을 열어서 사과문 발표하도록 할까요? 

B: 영향을 받은 사용자의 규모가 어느 정도 되지?

A: 전체 이용 고객의 0.000001%에 해당되는 케이스입니다.  

B: 흠........사람들 좋은 기분 망치지 말고 이번에는 그냥 덮고 넘어가도록 하지. 


커버이미지: https://www.instiz.net/pt/430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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