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 놓인 삶을 걸어나갈 때, 특히 작가로서 글을 써나갈 때 이 글이 나에게 야곱의 돌베개가 되어주길 바란다. 하나님께서 내 삶에 함께 하신다는 확신을 잃지 않도록, 그 확신이 희미해지지 않기를 기도한다.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곳이 하나님의 집이요 하늘의 문이로다. - 창세기 28장 16 -17절
24년 전 겨울, 한국에서 손에 꼽히는 예중에 합격했다고 마음이 들떴다. 짜릿한 기쁨도 잠시, 그 곳은 나처럼 노력만으로 어떻게든 부딪혀보려는 사람은 살아남을 수 없는 무시무시한 정글이었다. 천재같은 재능을 갖추고 그 위에 피가 나도록 노력하는 친구들이 가득 모여 있었다 (나보다 한 학년 아래에서 세계3대 발레단의 주역 무용수가 2명이나 나왔으니, 내가 있던 시절이 참 어마어마했다.) 발레는 다른 어떤 예술보다 누가 잘하고 못하는게 극명하게 평가된다. 나는 단지 무대를 채우는 수 많은 엑스트라 중 한명이라는 사실을 3년간 내내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군계일학, 나와 함께 닭이 되어주는 친구들이 수두룩 하더래도 크게 위로가 되진 않았다. 발표회 때마다 무대 뒤쪽에서 병풍 노릇을 하면서 눈 앞에서 펼쳐지는 프리마돈나 친구의 춤을 눈으로 쫓았다. 아름다운 선율을 따라 움직이는 아름다운 춤을 보는데, 어린 소녀의 마음에는 잔인한 현실이 사각사각 새겨졌다. 안타깝게도 그것이 어른이 된 지금도 흉터로 남아있다.
한창 감수성 예민할 때, 사람이 이분법적으로 분류되는 아픈 경험을 해서 그런지 남들이 무언가를 잘 해내는 것을 보면 조급함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무대에서처럼 그들의 성공이 나의 실패를 목도하는 것처럼 느껴지곤 한다. 누군가는 우아한 학이고 누군가는 알을 낳는 닭이라면 누군가는 멋진 독수리, 누군가는 귀여운 참새를 맡아서 옹기종기 살아가는 것일텐데.......이 세상의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나 자신만의 특별함에 자부심을 가져하는데 어리석게도 에너지의 화살을 추잡한 자기 비하에 꽂아버린다. 이럴 때는 지인들의 조언도 잘 들리지 않아서 연결 고리를 끊을만한 강력한 무언가가 간절해진다.
지난 몇 달간, 코로나로 인해 나는 물리적인 공간에 갇혀있게 되었지만 같은 일상 가운데 또 다른 세계는 폭발적으로 팽창하게 되었다. 삶의 많은 부분을 온라인에 의지하게 되었다. 모니터를 바라보며 세상과 소통하는 시간의 양과 질이 엄청나게 변화했다. 때로는 눈이 피곤하고 많은 것을 제 시간에 따라잡지 못해서 머리가 멍해지지만, 좋은 점이라면 짧은 시간에 멋진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되었고 그리고 그들의 삶을 자주 접하게 되었다. 사람의 마음은 모두 비슷비슷한지, 많은 이들이 나처럼 이 멋진 사람들의 매력에 빠져 그들을 따르고 호감을 표했다. 그들을 보며 영감을 얻기도 했지만 내 특유의 조급함이 튀어오르기도 했다. 자가격리가 6개월이 넘어가는 지금, 조급함이 안에서 다스려지기 버거운지 점점 포화 상태로 갈 뻔 했는데 다행히 오늘 구멍이 하나 뻥 뚫렸다. 수면 위로 올라 물을 뿜는 고래처럼, 아니 아줌마 버전으로 맹렬하게 증기를 내뿜는 압력밥솥이 된 것처럼 조금 숨통이 틔였다.
나의 모든 호흡, 그리고 오늘의 호흡도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셨음을 잘 기억하자. 쉬이이이이이이익!!!!!!!!